'세빗 유감'

독일 하노버에서 개최되는 '세빗 2007'이 모든 전시 일정을 끝마치고 지난 22일 폐막했다. 하지만 전시 기간 내내 부스를 돌아보면서 느낌점은 그동안 많은 이슈를 만들어 냈고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던 전시회라는 명성이 무색하다는 것이다. 아이템별로 점점 세분화, 전문화되어 가고 있는 최근 전시 트렌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미 가전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모바일 관련기기는 스페인의 3GSM에서 거의 모두 '특종'이라는 제목을 앞에달고 줄줄이 소개된 제품이다. 그런 제품을 다시 세빗에 출품했으니 참관객 입장에서 김이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규모면에서는 아직까지 최고다. 내년은 전시 기간도 대폭 축소될 예정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규모면에서 최고라는 타이틀로 명분을 지켜왔지만 이제 내년부터는 이런 수식어 조차도 붙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개최 결과만을 놓고 따져보면 명분허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총 6,153개 업체가 출품했고 77개국 48만명의 참관객이 세빗 전시장을 찾았다. 참관객 규모로 봤을 때 10%이상 증가한 수치다. 또한 BRICs의 하나인 러시아는 올해 세빗 공식 파트너 자격으로 참가해 170개 업체가 러시아 전용 전시장에 출품했다. 한국과 중국 역시 전용 홍보관에 부스를 잡고 자국 토종 제품임을 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자국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 분야와 충분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텔레매틱스&내비게이션' 분야를 새로 신설해 전시한 것도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하지만 그곳 분위기는 올해 6월에 열리는 대만 컴퓨텍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컴퓨텍스 전시장을 확대하고 이를 알리기 위해 세빗에서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는 상황. 물론 IT 관련 전시회에서 미국 컴덱스가 없어진 이후로 세빗 이후의 가장 큰 이슈는 컴퓨텍스임에 틀림 없다. 적어도 컴퓨텍스는 PC 관련 전시회라는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 세빗은 과거의 명성을 지키지 못할뿐더러 정체성을 상실한채 점점 쇠퇴해가고 상태. 후발 주자들이 점점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도 잠재적인 위험 요소다.

전시회 주최의 임무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판(版)을 벌이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기술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 이런 굵직한 규모의 전시회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점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들이 펼치는 '세빗 위기론'은 어찌보면 자명한 결과다.

전시회(展示會)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한 물건을 벌여 차려 놓고 일반에게 참고가 되게 하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특정한 물건을 차려 일반인에게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전시회로써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예전에 출시한 제품, 인터넷에서 본 제품, 이번 전시회에 또 출품한 제품 등 시쳇말로 '재탕, 삼탕'으로 잔뜩 늘여놓고 벌인 전시회는 길거리 좌판과 진배 없다.

PC와 가전 분야는 중국의 추격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세빗 전시회에서 만난 중국산 휴대폰은 이미 모토롤라, 소니-에릭슨, 노키아의 최신형 제품을 무서운 속도로 벤치마킹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국제 규모의 전시를 개최할 수 있는 충분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시장은 점점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런 흐름을 읽지 못한채 기존 명성에 허우적되다가는 금새 낙오하기 십상이다.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또 세빗을 방문할 수 있을까'라는 기우와 함께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음 참관때는 부디 최첨단 기술로 똘똘뭉친 기가막힌 신제품들이 쏟아져 나와 기자의 손발이 바쁘게, 그리고 독자들의 눈이 즐거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럼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Auf Wiedersehen(=Good Bye)"

 

세빗 이모저모

대학교 캠퍼스를 방불케 하는 전시장 규모.

2관 전경. 규모면에서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 못지 않다.

전시회장이 큰 만큼 곳곳에 참관객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두었다. 전시장 안에서 흡연이 가능한 것도 다소 생소한 풍경중 하나다.

개최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를 이용한 다양한 부스.

세빗 기간중 열린 '월드 사이버 게임 2007(WCG 2007) 유로 챔피언십. 세빗 전시회 만큼이나 관객 동원도가 높았다.

WCG 2007 경기장 한켠에는 컨셉트PC 컨테스트 수상작을 전시했다.

다양한 포터블 기기 전용 백.

어항속에 빠진 휴대폰 방수의 비밀은? 기자 역시 호기심(?)이 발동해 도우미에게 부탁. 방수 재료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철골 기초에 외형은 모두 나무를 써서 만든 옥외 부스. 세빗이 열리는 도이치메세의 규모를 가늠하게 하는 크기다.

다나와 정보팀 김재희 기자 wasabi@dana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