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로 생겼으니 자출족 될꺼예요”

 

지난 해 5월부터 마포구 한 동네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멀쩡하던 도로를 다시 파기에는 좀 이른감이 없지 않나 싶어 안전모를 쓴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자전거 도로’를 짓는단다. 자전거 도로 공사는 비단 마포구 한 동네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정부의 녹색성장 바람을 타고 시작된 자전거 열풍은 서울과 각 지방 곳곳에서 ‘자전거 도로’를 탄생케 했다.

 

자전거 도로가 곳곳에서 생겨나니 ‘자출족이 되겠노라’고 결심하는 직장인들도 증가했다. 헬멧 등의 보호장비부터 자전거 의류까지. 자전거 관련 업계는 때 아닌 호황을 맞아 함박 웃음을 지었다. 그것뿐인가. 정책 발표 후 국내 한 자전거 업체 주식은 순식간에 4배 이상 오르며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 2009년 9월 서울 차 없는 날

자전거 동호인들이 자전거를 이용해 출근하는 모습

 

정부는 ‘전국 자전거 길을 만들면 외국인 관광객 유치 등 새로운 시장이 생길 것이다’, ‘자전거 산업이 커지면서 자전거 관련 제조업, 서비스업이 탄력을 받을 것이다’ 등의 자전거 정책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표명했으며 이와 같은 내용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물론 정책의 배경에는 ‘4대강 살리기’라는 더욱 원대하고 거대한 정부 정책이 숨겨져 있었으나 그것과는 별도로 ‘도심 속 자전거 도로’는 기존 자출족들에게 혹은 자출족을 꿈꾸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 동안 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자전거 출퇴근을 포기했던 수많은 직장인들은 이제야 비로소 ‘자전거로 시작하는 건강한 하루’를 꿈꿨다. 자동차에 방해 받지 않고 걸어가는 행인에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온 것이다. 뭐,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전거 도로가 훌륭하게 제 의무를 수행했을 때의 일이다.

 

자전거 도로 ‘아니죠’ 자동차 주차장 ‘맞습니다’

 

그런데 공사를 끝낸 자전거 도로와의 첫 조우는 꽤 (라고 하기에는 부족할만큼) 실망스러웠다. 매끈하게 다져진 길들은 수많은 자동차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길게 주차되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들은 여전히 인도 혹은 위험한 차도를 이용했다. 인도와 자전거 도로와의 경계선도 모호하고 그렇다고 차도와 완벽하게 분리되어 안전한 공간도 아니었다. 그저 답답하게 세워둔 차량들 사이로 곡예를 부리듯 등교하는 학생들이 안타까워 보일 뿐이었다.

 

▲ 2009년 4월 방송된 KBS 소비자 고발 '자전거 도로'편
(출처 : KBS)

 

현재 서울시내 자전거 도로는 총 728km로 이중 전용도로는 123km에 불과하다.(7월 자료 기준) 게다가 한강변과 여의도 등을 제외한 일반 전용도로는 50km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전거 관련 교통사고도 급증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자전거 교통사고가 2006년 7922건, 2007년 8721건에 이어 2008년 1만 848건으로 2년 사이 3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모든 현상은 비단 자전거 도로가 ‘형편 없기 때문에’ 발생한 일일까. 섣부르게 단정 짓기에는 이르다. 실제로 자전거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창원시를 비롯한 자전거 도로를 설치한 몇몇 지역은 훌륭하고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기도 하다. 앞서 말한 안전에 ‘미숙한’ 자전거 도로도 적응 훈련을 거치고 나면 개선되고 또 개선되어 이상적인 자전거 도로로 거듭날 수 있을 여지는 충분하다.

 

자전거는 장난감이다? 자전거 안전교육은 어디에…

 

사실 정부의 ‘자전거 정책’은 시설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 바로 안전교육이다. ‘두발 자전거, 그냥 타면 됐지. 안전교육은 왜?’ 라고 쉽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아니 오산을 넘어 섬뜩하기까지 한 발상이다. 자전거 관련 표지판과 자전거 도로에 새겨진 안전 기호, 그리고 제일 중요한 ‘자전거 안전장비 착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사용하는 사람들 중 과연 몇이나 될까.
 


 

▲ 자전거 도로의 다양한 지시 표지판

 

혹자는 ‘에이~동네 앞 슈퍼 가는데 헬멧은 좀 오버다” 라고 말하겠으나 그 ‘동네 앞 슈퍼’를 가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가 뇌사 상태에 빠진 여러 사람들의 뉴스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안전 교육 없이 아무나,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자전거이기 때문에 당연히 아무에게나, 누구에게나 자전거는 ‘쉽게’ 다가온다. 또한, 어린 아이들에게는 자전거란 그저 장난감이다. 이제 30-40대가 된 성인도 분명 어린 시절 ‘자전거는 장난감’이었기 때문에 커서도 하나의 교통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는 ‘자전거’가 가볍게 다가서기 마련인 것이다.

 

누구를 탓해야 할까. 개인의 무신경함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정책의 무지함을 탓해야 할까. 자전거 타기를 국가정책으로 정한 이상 이는 후자 쪽이다. 아무리 자전거 도로와 자전거 거치대 등 자전거 관련 시설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안전 의식’이 부족하다면 무면허 운전자가 자동차 운전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하물며 관련 시설의 안전함이 명백히 보장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자전거 정책…이제는 그만!

 

정부는 지난 12월 말 자전거 교통사고를 줄이고 안전한 자전거 운행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몇 가지 대책을 마련했다.

 

그 첫 번째 대책으로 자전거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자전거 안전 인프라 구축, 두 번째는 14세 미만 어린이가 자전거를 탑승할 경우 안전모 착용을 의무화하고 자전거 이용자의 음주운전을 금지한다.마지막으로 자동차 운전자가 자전거를 배려할 수 있도록 운전면허 응시자를 대상으로 자전거 관련교육을 실시하고 운전면허 시험 시 자전거 안전 관련 내용을 출제한다는 방침이다.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이번에도 역시(정부가 자전거 정책을 발표했을 때처럼) 걱정부터 앞선다. 자전거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에 대한 고민은 자전거 도로를 짓기 훨씬 전부터 나왔어야 하는 안건이며 자전거도로가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가는 이 시점에서는 어느 정도 체계적인 인프라는 기본적으로 구축되어 있어야만 한다.

 

또한, 헬멧 착용을 14세 미만으로 한정지은 이유는 무엇일까. 15세부터는 어느 정도 안전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그에 대한 기준이 불투명하다. 헬멧은 자전거를 타는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한 안전장비이다. 빼놓아서도 안되고 잊어서는 안될 목숨을 책임지는 가장 중요한 장비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자동차 운전자의 교육에 자전거 교육이 포함되는 것은 좋으나 정작 중요한 자전거 운전자에게 자전거 안전 교육을 시행한다는 부분은 찾아볼 수 없다.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다.

 

덧붙여 가장 시급한 자전거 관련 법 제정 역시 여전히 미비하다. 현재 자전거는 도로교통법 제2조 16항에 ‘차마(’라는 용어에 포함, 보행자 보호와 도로 통행, 차선준수, 끼어들기 금지 등 자동차와 같은 수준의 법 적용을 받고 있다. 이는 자전거 운전자는 물론 보행자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는 아주 위험한 부분이다.

 

올바른 자전거 문화…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새해 아침, 택시를 타고 어딘가로 향해 가는데 앞에 있는 자전거로 인해 속도가 늦춰진 기사 아저씨께서 한마디 하신다.

 

“뭐 하러 자전거를 끌고 나와서!!!”

 

역정 아닌 역정을 내신 택시 기사 아저씨께 웃으면서 자전거 도로가 없어서 그런다고 했더니 그냥 걸어 다니면 될 것이지 뭔 놈의 차도에 자전거가 나다니냐고 이번에는 상대를 바꾸어 화를 내신다. 이번에도 그저 웃고 말았지만 가슴 속 한 켠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태산이다.

 

자전거 타기는 여러모로 좋은 점이 가득이다. 생활의 가장 필요한 부분인 건강과 절약을 보장한다. 나아가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도 그 취지 면에서는 상당히 유익하다. 물론, 환경과 연결되어 있는 것만큼 비용 대비 효율성에 대해 정확히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기업은 소극적이고 국민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정부의 노고도 결코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가적 정책이니만큼 좀 더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국민의 입장에 서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국민들이 집과 직장, 학교를 바르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보여주기 위한 정책’이 아닌 미래 동력으로 잘 성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으로 거듭나야 한다.

 

큰 트럭이 쌩쌩 지나가는데도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는 세발 자전거를 탄 어린 아이의 뒷모습이 간담을 서늘케 하는 일이 다시는 없길 바라며 2010년 현 정부의 지혜롭고 효율적인 자전거 정책을 다시 한번 기대해본다.

 

 IT조선 김보미 기자 poppoya4@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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