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1999년, 「버추어파이터」의 아버지 스즈키유에 의해 선보인 전설의 걸작 「쉔무」를 기억하는가. 스즈키유는 「쉔무」를 통해 게임 그 이상의 세계를 구현하려 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 플레이어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현실을 비디오게임 안에서 창조하려 했던 것. 하지만 그의 게임의 패러다임을 뒤바꾸려 한 자신만만한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만다. 너무 앞서갔던 탓도 있고, 기존의 게임의 문법에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탓도 있다. 결국 세상일이라는 게, 그리 만만하지 않은 법이다.

 

하지만 「쉔무」의 정신은 살아남았다. 10년이 흐른 지금, 스즈키유가 꿈꿨던 오픈월드 게임은 이제는 하나의 게임 장르로 활짝 꽃을 피웠다. 「GTA」, 「세인츠로우」 등의 수많은 오픈월드를 표방한 게임 시리즈들이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반면, 「쉔무」를 제작한 스즈키유와 개발사 세가는 안타깝게도 「쉔무」의 실패 이후로 이런저런 부침을 겪었다. 그리고 수많은 팬들의 바람에도 불구, 「쉔무」의 신작의 소식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여전히 「쉔무」의 올드팬들은 신작 소식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GTA」류의 여타 오픈월드 게임들은 그들의 목마름을 충족시키기에는 무언가 이질적이니까.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만한 것은 「쉔무」의 명맥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쉔무」만의 느낌, 「쉔무」만의 색깔, 여타 오픈월드 류와는 다른 독특한 맛과 향기를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는 게임이 분명 존재하고 있다. 세가는 결코 「쉔무」의 정신을 잊지 않은 것이다. 바로 일본의 뒷골목과 야쿠자의 세계를 그린 걸출한 게임, 「쉔무」가 낳은 정통 후계자라는 칭호가 전혀 아깝지 않은 게임, 바로 「용과 같이」 시리즈다.


 

2005년 처음 팬들 앞에 선을 보인 「용과 같이」 시리즈는 현재까지 외전을 포함해 여섯 편의 작품들을 대중 앞에 선을 보였다. 하나 같이 독창적인 재미와 완성도를 갖춘 수작들이다. 그 중 가장 최근 출시한 작품이 바로 지금부터 다루고자 하는 「흑표 용과 같이 신장」 (이하 「흑표」)이다.

 

시리즈 최초로 PSP라는 휴대용 기기로 등장한 「흑표」, 그렇기에 시리즈 특유의 완성도에 조금이나마 모자람이 있지 않을까 우려가 되는 것 또한 일견 사실이다. 과연 「용과 같이」 시리즈의 명성에 걸맞는 단단한 완성도를 가진 작품일지, 아니면 그저 그런 실망투성이의 성의 없는 휴대용 이식작일지 궁금하지 않은가? 자, 지금부터 「흑표」의 면면을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휴대용의 한계를 뛰어넘은 듯한 화려한 외관

 

휴대용으로 넘어와서도 역시 「용과 같이」 시리즈답다. 실제의 가부키쵸(게임 내의 카무로쵸)를 고스란히 재현한 월드맵의 퀄리티는 플랫폼의 한계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이미 수준급이다. 지역 곳곳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들 역시 기존의 전작들 못지 않게 풍성하다. 물론 거치형 콘솔에서 맛 볼 수 있었던 수준 높은 규모와 비쥬얼에는 당연히 미치지 못하지만 플레이어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한 훌륭한 품질이다.

 

특히 캐릭터들의 질감은 발군이다. 대전격투 게임에서나 만나볼 수 있던 큼직큼직하면서도 디테일이 섬세하게 표현된 인물묘사는 일견 기기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굉장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휴대용 게임이라는 제한 때문인 듯, 「흑표」에는 고화질의 영상도 실시간CG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러프스케치의 삽화들을 이어 붙인 듯한 독특한 형태의 이벤트 무비가 있다. 휴대용 플랫폼의 여러모로 부족한 성능 탓에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고육지책이었겠지만, 이벤트씬의 완성도는 꽤 훌륭한 편이다. 마치 개성 넘치는 코믹스를 감상하는 기분이랄까. 또한 중간중간 소소하게 삽입된 약간의 애니메이션적인 연출도 상당히 역동적이다.

 

이러한 코믹스와 애니메이션이 적절히 조합된 독특한 이벤트 연출은 아무래도 게임 내의 캐릭터와 이벤트 상에서의 캐릭터 디자인 간의 갭이 클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자칫하면 실제 게임진행과 이벤트가 서로 겉도는, 플레이어의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당혹스러운 상황이 발생할 여지가 많다. 하지만 「흑표」에서는 이러한 겉도는 느낌을 받기가 매우 힘들다. 아무래도 이벤트와 실제 게임진행의 적절한 분량배분이 주효한 탓인 듯 하다.

 

 

용과 같이 시리즈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는 탄탄한 구성

 

「흑표」는 정통 「용과 같이」 시리즈와는 다른, 독자적인 스토리라인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외전 형식의 게임이다. 게임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카무로쵸로 동일하지만 등장인물들은 정통 「용과 같이」 시리즈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흑표」만의 고유한 캐릭터들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게임의 진행양상은 정통 「용과 같이」 시리즈와 전혀 다를 바 없다. 「흑표」의 게임 구성은 대략 카무로쵸를 누비며 다양한 미니게임과 소소한 이벤트들을 즐기는 어드벤쳐 파트, 거리의 불량배들 또는 라이벌들과 대결을 펼치는 대전 파트, 그리고 메인스토리가 진행되는 이벤트 무비 파트로 나뉜다. 이는 전형적인 「용과 같이」 시리즈의 포맷 그대로다. 플랫폼의 한계를 비웃기라도 하듯, 「용과 같이」 시리즈 전통의 게임 구성과 다양한 미니게임 등의 풍성한 볼륨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역시 「용과 같이」 시리즈만의 맛이라면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성인 취향 가득한 수많은 컨텐츠들이 아닐까. 카지노의 게임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완성도다. 룸싸롱에서의 여종업원들과의 이벤트는 미연시 게임을 방불하게끔 하는 퀄리티다. 그 외의 아르바이트, 볼링 등등의 레저,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다양한 미니게임들 또한 게임의 볼륨을 풍성하게 해주는 알찬 요소들이다.

 

무엇보다도 돋보이는 것은 이 모든 요소들이 게임 속의 월드, 카무로쵸 안에서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가상의 세계에 마치 실제와도 같은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정도면 「흑표」야말로 휴대용 콘솔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오픈월드 게임이라 호언장담할만한 수준이다.

 

 

물론 거치형에 비해 여러 모로 다운그레이드된 듯한 면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벤트 무비의 간소화, 2D 이미지로 처리된 고정 앵글의 맵 화면, 거치형 콘솔 전용의 전작에 비해 단조로워 진 대전액션,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전체 게임 볼륨 등, 분명 모자란 부분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하지만 「흑표」는 휴대용 기기를 위한 게임이다. 휴대용으로 거치형 콘솔에 버금가는 퀄리티와 볼륨을 구현해 냈다는 것만으로도 세가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서브퀘스트들이 지나치게 소소하다는 점은 약간은 불만족스러운 요소다. 여타 오픈월드 게임들처럼 다양한 상황과 이벤트가 맞물리며 게임의 중심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이 아닌, 메인퀘스트를 따라 일직선으로 진행되는 게임 진행 과정 속에서 사소한 미션들이 곳곳에 뿌려져 있는 정도의 느낌이다.

 

결국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 게임의 내용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동종 장르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단조롭다는 느낌을 버리기 어렵다. 이는 뭐랄까, 섬세하게 구현해 놓은 오픈월드의 완성도가 조금은 낭비되고 있는 듯한 기분, 그저 일직선으로 진행되는 평범한 어드벤쳐 게임의 한계를 아직도 떨쳐내지 못한 듯한 느낌에 가깝다. 「쉔무」가 진정한 오픈월드 게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음에도, 아직 이러한 잔재가 여전하다는 점은 상당히 아쉬운 대목일 수 밖에 없다.

 

왠지 싱거운 메인 시나리오 또한 실망스러운 요소다. 뭔가 성인 취향의 어둡고 끈적끈적한 스토리텔링을 기대했다면 실망은 더욱 클 듯. 초반 잔뜩 분위기를 잡고 등장하던 주인공이 초반을 넘어가면서부터 갑자기 소년 만화주인공들이나 읊을 법한 천편일률적인 대사를 늘어놓기 시작하는데… 이에 피식 실소를 터뜨리고 만 이가 여기 글을 쓰고 있는 본인 뿐일까.

 

 

마치며

 

세가의 스즈키유가 야심차게 기획했던 오픈월드 게임의 맹아는 재미있게도 바다 건너 편의 북미에서 보다 활짝 꽃을 피웠다. 반면 세가는, 스즈키유는 「쉔무」의 몰락 뒤 끝없는 부진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이러한 부진의 시간들은 일본 게임업계의 침체의 시간들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용과 같이」 시리즈의 등장과 성공은 도전과 창의성을 잃어버린 채, 매너리즘 속에 매몰된 현재의 일본 게임업계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용과 같이」 시리즈 또한 북미의 오픈월드 게임들에 비하자면 여러 모로 모자라는 부분들이 큰 것 또한 일견 사실이다. 월드의 규모에서, 플레이어의 자유도에서, 화려한 비쥬얼에서, 일본의 대표적인 오픈월드 게임인 「용과 같이」 시리즈는 따라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

 

 

하지만 일본 특유의 촘촘한 스토리텔링과 강렬한 캐릭터성은 「용과 같이」가 여타 북미의 걸작 오픈월드 게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하는 숨은 원동력이다. 결국 「용과 같이」 시리즈는 일본 게임업계 특유의 강점과 제작자의 도전정신이 유기적으로 엮이면서 빚어낸, 미래의 일본 게임의 가능성의 표상이라 할만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작 「흑표」 또한 무게감이 상당한 작품이다. 이 정도의 오픈월드를 휴대용으로 빚어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박수 받아야 마땅한 수작이다. 즐겨보라. 게임 곳곳에 일본의 게임 장인의 고민들이 속속히 녹아 들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내용적인 완성도로, 기술적인 완성도로 결국은 끄집어 내는 데에 성공해냈다.

 

적어도 「용과 같이」 시리즈는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가고 있는 일본 게임업계의 현재와 같은 길을 걷고 있지 않고 있는 점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용과 같이」에는 도전이 있다.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있다. 북미의 오픈월드 게임과는 다른 형식의 문법으로 구축한 자신만의 영역이 있다.

 

그렇기에, 시리즈의 최신작 「흑표」가 등장한 지금 이 시점에서 「용과 같이」 시리즈가 어떠한 방식으로 자기진화를 거듭할 것인지 기대하는 바가 클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보다 멋진 시리즈의 후속작의 등장을 기다려 보도록 하자. 단언하건대, 헛된 기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IT조선 리뷰어/ 까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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