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스포츠의 ‘꽃’ 프로농구가 생긴지도 올해로 15주년을 맞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5년 동안 프로농구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1997년 첫 출범부터 현재까지 있었던 재미있는 프로농구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한다.

1997년 프로농구 출범

<▲ 서장훈은 청주SK에 입단해 서울삼성->전주KCC->인천전자랜드를 거쳐 지금은 창원LG소속이다>

소위 잘 나가던 농구대잔치를 접고 프로를 선언한 이유 중 하나는 서장훈(207cm) 때문이다. 당시 농구대잔치는 드래프트가 아닌 자유계약제였다. 다시 말해 서장훈과 계약만 성사된다면 그 어떤 팀도 자유롭게 데려갈 수 있는 있었다. 이미 연세대 시절 잘나가는 실업팀조차 정상적인 수비로 막을 수 없었던 서장훈의 졸업은 많은 실업팀으로 하여금 과열 경쟁을 유도했다. 서장훈만 손에 넣으면 무조건 우승이라는 공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서장훈 모셔오기는 과열 되었고 결국 외국인선수 제도를 두는 방식의 프로화를 추진하게 되었다.

 

98-99시즌: 첫 해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는 현주엽

 

<▲ 현주엽과 서장훈>

농구 대잔치 시절 서장훈을 끊임없이 괴롭힌 상대는 다름아닌 휘문고 1년 후배 현주엽(195cm)이었다. 현주엽은 서장훈을 넘어서기 위해 연세대가 아닌 고려대로 진학할 정도로 대단한 승부사 기질이 있는 선수였다. 기량 역시 출중했다. 195cm의 비교적 단신이지만 힘과 운동능력이 좋아 한국의 ‘찰스 바클리’로 불렸다. 현주엽은 프로 무대의 첫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당시 안준호 감독이 이끌던 청주SK에 뽑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SK는 잠시 미국 농구 유학을 다녀온 서장훈과 이미 계약을 마친 상태였고, 둘은 원치 않게 같은 팀이 되었다.

당시 안준호 감독은 이 둘 영입에 성공하고서 우승에 대한 강력한 확신을 가졌었지만 19승26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서장훈과 현주엽은 데뷔 첫해 서로 좋은 기록을 남겼지만 시너지효과는 발휘하지 못한 채 신기성(당시 나래 블루버드)에게 신인상을 내주며 데뷔 첫해를 보냈다.

 

99-00시즌: 현주엽 보낸 청주SK 우승하다

 

<▲ 구세주 조상현은 현주엽과 트레이드된 첫 해 바로 우승을 차지했다>

최고의 포스트진을 구축하고도 8위에 머문 청주SK가 꺼내든 칼은 트레이드였다. 서장훈과 현주엽 중 한 명을 고민하던 청주SK는 결국 현주엽을 트레이드 카드로 내놓았다. 결국 현주엽은 광주 골드뱅크의 대형 신인 조상현(187cm)과 트레이드 됐다. 일명 크리스마스 트레이드(1999년 12월24일)라 불리는 이 트레이드는 양팀 모두에게 이득이었다. 골밑 장악이 필요한 광주 골드뱅크는 현주엽이 필요했고 확실한 슈터가 필요한 청주SK는 조상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청주SK의 조상현 영입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조상현은 서장훈과 재키 존스 그리고 리그 최고의 수비수 로데릭 하니발과 함께 데뷔 첫 해 우승을 이끌어 냈다. 반면 현주엽이 이끄는 광주 골드뱅크는 에릭 이버츠와 현주엽 라인이 선전하긴 했으나 아쉽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00-01시즌: '콧구멍 파워' 아티머스 맥클레리 상륙

 

<▲ 아티머스 맥클레리는 서울삼성에 입단해 놀라운 득점력을 보여주며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2000년 초반만 해도 개인기가 뛰어난 외국인 선수보다는 맥도웰처럼 힘으로 골밑을 지배하는 외국인 선수가 대세였다. 우승을 하려면 맥도웰과의 몸빵(?)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수원 삼성 김동광 감독이 그의 대항마로 데려온 특급 외국인 선수가 ‘아티머스 맥클래리’다. 194cm의 비교적 작은 신장이지만 이미 필리핀 리그에서 득점상을 받은 경력이 있는 엄청난 득점력의 소유자였다. 맥도웰과의 힘 승부에서 이겨서였을까? 삼성은 맥클래리와 함께 우승했다. 물론 당시 ‘람보 슈터’ 문경은과 리그 최고의 ‘날쌘돌이’ 주희정과 강혁 그리고 전체1순위 신인 이규섭이 함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01-02시즌: '슈퍼루키'김승현의 등장 그리고 문경은의 트레이드

 

<▲ 오리온스와의 이면계약 파문으로 김승현은 현재 소속 구단이 없는 상태>

01-02시즌은 김승현(178cm)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 시즌이다. 32연패 끝에 외국인 선수도 도망친 꼴찌 동양 오리온스를 단숨에 우승(정규리그36승18패)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프로 역사상 처음으로 신인왕과 리그 MVP를 동시에 차지했다. 김승현은 첫 경기부터 달랐다. 애당초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송영진에 가려 큰 빛을 보지 못했지만 단 한 경기로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알렸다. KBL데뷔전 15점 10어시스트, 두 번째 경기에서도 19점 1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2001년 6월21일 시즌 전 삼성은 문경은(190cm)을 보내고 우지원(191cm)을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이 트레이드가 삼성에 손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런데 삼성은 왜 트레이드를 단행했을까? 표면적 이유는 우지원의 수비능력이 문경은보다 낫다고 평가되어서지만 실제로는 삼성이 수원에서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빠져나갈 인기를 의식해서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문경은은 인천SK 빅스에서 자기 몫을 다했고 우지원은 유난히 골밑 공격과 높이를 중시하는 김동광 감독의 눈치를 살피느라 정신 없었다. 하지만 삼성이 얻은 것 하나는 우지원 때문에 성공적인 연고지 이전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02-03시즌: 중앙대 최대어 김주성 원주TG삼보 입단

 

<▲ 김주성은 현 KBL최고 연봉자로 데뷔 후 지금까지 꾸준히 원주동부에서 뛰어온 프렌차이즈 스타다>

2002년 1월29일 원주TG의 전창진 감독과 허재 플레잉 코치는 다른 감독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바로 서장훈 이후 최고의 선수라 평가 받는 중앙대 김주성(205cm)을 원주TG가 뽑아서다. 2001년 김승현의 효과를 직접 본 감독들은 루키 이펙트(Rookie Effect)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기에 김주성의 가치는 극에 달았다. 결국 원주 TG는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달리던 허재와 김주성 ‘우승 청부사’ 데이비드 잭슨(191cm)에 힘입어 동양 오리온스를 꺽고 우승을 차지했다.

 

03-04시즌: 이상민 찰스 민렌드를 만나다

 

<▲ 찰스 민렌드는 약사 출신이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로 뛰어난 두뇌플레이가 강점이었다>

당시 현역 최고의 포인트가드 이상민(183cm)은 총3번의 우승을 했다. 맥도웰(191cm)과 호흡을 맞추어 97-98, 98-99시즌 우승을 했고 마지막 한 번은 바로 찰스 민렌드를 만나서였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전체1순위로 KCC에 입단한 민렌드는 이상민과 찰떡 궁합을 과시하며 최고의 가드와 확실한 용병은 우승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04-05시즌: '단선생' 단테 존스 KBL을 지배하다

 

<▲ 단선생, 단사마, 단테신드롬 2005년 프로농구는 단테 존스의 해였다>

앨런 아이버슨, 코비 브라이언트, 데릭 피셔 이들의 공통점은 1996년 NBA 신인드래프트 동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 명이 더 있다. 바로 KBL리그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 단테 존스(199cm)다. 그가 오자마자 하위권이었던 안양SBS는 15연승을 질주했고, 팬들은 열광했다. 그가 쏘는 페이드에웨이 슛은 깨끗하게 림을 통과했고 현란한 패스로 상대를 유린했다. 실력뿐 아니라 매너 역시 NBA급이었다. 팬들에게 ‘리마리오 춤’을 춰주고 일일이 악수해주는 등 팬들을 위한 마음이 대단했다. 결국 그의 모습에 반해 안양시는 그에게 명예시민의 자격을 부여해줬다. 05-06, 06-07시즌의 그는 아쉽게도 영향력이 떨어졌지만 04-05시즌의 단테 존스는 ’단테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다.

 

05-06시즌: 최초의 전승 우승 신화 삼성 썬더스

 

<▲ 네이트존슨과 올루미데 오예데지는 역대 최고의 외국인 듀오로 불릴만 하다>

KBL 15년 동안 챔피언 결정전에서 4전 전승으로 우승한 유일한 팀은 서울 삼성이다. 서장훈을 영입한 삼성의 고민은 빠른 속공농구를 즐기는 주희정(182cm)과 느림보 센터 서장훈의 궁합이었다. 결국 삼성은 서장훈 위주로 팀을 리빌딩하기로 결심하고 주희정과 안양SBS의 이정석(183cm) 트레이드에 동의했다. 주희정이 문제였을까? 물론 당시 삼성의 BEST5가 역대 최고조합이지만 삼성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전승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삼성의 BEST5는 이정석(183cm)-강혁(188cm)-네이트 존슨(200cm)-서장훈(207cm)- 올루미데 오예데지(202cm)로 역대 최강의 높이를 자랑했다.

 

06-07시즌: 양동근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다

 

<▲양동근은 새로운 포인트가드의 길을 제시해줬다>

대한민국의 공격형 포인트가드 1세대의 주인공은 바로 양동근(180cm)이다. 그간 한국에서 포인트가드란 경기조율이 주 임무였는데 양동근은 패스보다는 공격적인 농구로 팀을 우승시켰다. 물론 우승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크리스 윌리엄스(194cm)가 있어서다. 당시 울산 모비스는 ‘크리스 울리엄스’와 양동근 조합으로 굉장히 이색적인 농구를 했다. 윌리엄스가 패스를 찔러주고 포인트가드인 양동근이 골밑에서 포스트업을 하는 토탈 농구를 보여줬다. 그 동안 겪어보지 못한 공격적인 양동근에 타 팀의 포인트 가드들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워낙에 체력이 좋아 강력히 힘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비록 패스능력은 다소 떨어진다고 하나 뛰어난 공격력과 수비력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양동근식 농구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린 것이다.

 

07-08시즌: '영원한오빠' 이상민 삼성으로 이적

 

<▲ 이상민 삼성 입단 모습>

이상민이 현대에 입단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아는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이상민의 열렬한 팬이었다. 농구대잔치 시절 이상민은 현대의 선수가 되어야 한다며 꼭 영입하라고 특명을 내렸다. 그런 그가 삼성으로 이적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서장훈은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이상민과 함께하고 싶어 전주KCC로 이적했다. 하지만 FA규정상 해당 포지션에서 5위 안에 드는 선수에 한하여 보상선수와 연봉100%를 보상하는 규정이 있어 KCC는 삼성에 지정 선수3명을 제외한 한 명을 주어야 했다. 삼성은 KCC의 보호선수 서장훈 임재현 추승균을 제외한 한 명을 영입할 수 있는 셈. 삼성은 주저 없이 이상민을 택했고 이 둘은 다시 한번 갈라졌다. 당시 KCC는 프랜차이즈 스타 이상민을 보호 선수로 지정하지 않아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이상민과 뛰고 싶어 적은 연봉에 KCC에 입단한 서장훈도 이 둘의 만남에 흥분했던 팬들도 모두 한 순간에 바보로 만들었다.

 

08-09시즌: '공룡센터' 하승진 국내프로농구 진출

 

<▲ 하승진은 NBA 전체 47순위로 포틀랜드에 지명되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NBA리거 하승진(221cm)이 국내 유턴을 선언한 후, 어느 팀이 하승진을 지명할 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정말 허재 감독의 코는 ‘복코’였을까? 운 좋게도 전주KCC가 하승진을 뽑았고 김주성에 이어 하승진 마저 뽑은 허재 감독은 최고의 운빨(?)감독이 되었다. 작년 이상민과 뛰기 위해 KCC에 입단한 서장훈과 공룡 하승진을 동시에 데리고 있는 KCC는 단숨에 경계대상 1호가 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둘의 만남은 삐걱거렸다. 마치 예전 서장훈과 현주엽처럼 말이다. 결국 서장훈은 KCC에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KCC는 신인 드래프트 전체4순위로 전자랜드에 입단한 강병현과 트레이드했다. 부푼 꿈을 안고 KCC에 입단한지 딱 1년만이다.

 

09-10시즌: 귀화혼혈 선수들이 KBL에 몰려오다

 

<▲ 농구계의 '꽃간지'로 유명한 이승준은 말끔한 외모와 팬서비스로 KBL 스타가 되었다>

‘하프 코리안’이라 불리는 귀화혼혈에게도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KBL에서 정식으로 귀화혼혈을 뽑는 드래프트를 처음으로 개최했다. 귀화혼혈 선수들은 경력이 어마어마해 즉시 전력감으로 충분해 화제였다. 허재 감독은 귀화혼혈 드래프트에서도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해 ‘드래프트의 진정한 승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기자와 전태풍>

그는 미국 청소년대표를 지낸 특급 가드 전태풍(178cm)을 선발했다. 그 후 이승준(서울삼성) 문태영(창원LG)가 연이어 선발되었다. 이 중 단연 돋보였던 선수는 문태영(194cm)이었다. 문태영은 데뷔하자마자 센세이션한 활약을 보였고 약체로 분류되었던 LG를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았다.

 

10-11시즌: 문태종 한국 무대 진출

 

<▲동생 문태영과 형 문태종의 모습>

앞서 말한 문태영의 친형인 문태종(195cm)은 KBL진출 전에는 ‘제로드 스티븐슨’이라는 이름으로 유럽무대에서 뛰었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명문리그에서 ‘정상급 슈터’로 활약했다. 물론 전성기가 조금 지난 나이이지만 문태종이 어머니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이슈였다. 결국 문태종은 전자랜드가 1순위 지명권을 얻어 지명했고 문태종 이외에는 아무도 지명되지가 않아 2011년 귀화혼혈 드래프트는 문태종을 위한, 문태종에 의한 드래프트가 되었다.

 

11-12시즌: 외국인 선수 1명만!

 

<▲ 서울삼성의 피터 존 라모스는 222cm로 KBL 최장신 선수다>

올 시즌 프로농구는 국제대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외국인선수를 2명에서 1명으로 줄였다. 한자리라도 국내선수들이 뛸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서다. 2명의 외국인 선수가 보여주던 화려한 플레이를 기대하는 팬들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자유계약제로 외국인선수제도가 바뀌어 NBA급 선수가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고 올 시즌처럼 처음부터 피 튀기는 시즌도 없었으니까.

대한민국 프로농구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5년간 겨울스포츠의 ‘꽃’으로 자리잡으며 팬들을 위해 운영되어 왔듯, 앞으로의 15년도 흥미진진한 경기로 추운 겨울 팬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해줬으면 한다.

IT조선 선우윤 기자 sunwo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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