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버지드’를 모토로 내걸고 체질 개선에 집중하고 있는 HP의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최근 발표된 HP의 회계연도 3분기(5~7월) 실적을 보면 HP가 당분간은 성장통을 겪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HP는 해당 분기에 사상 최대 규모인 89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맥 휘트먼 CEO 취임 1 년. 아직은 기존에 악화된 실적을 개선해나가는 초기 단계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일각에서는 HP의 비즈니스 전략이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HP를 소프트웨어 중심 업체로 변모시키고자 했던 레오 아포테커 전 CEO가 임기 1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자 결국 HP는 다시 하드웨어에 집중한다는 가장 손쉬운 정답지를 택했다. 지난 1년을 말 그대로 ‘잃어버린 1년’으로 만들어버린 것.

 

물론 하드웨어는 HP의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다. 여기에는 PC, 프린터 등의 컨수머 영역에서부터 데이터센터를 구성하는 엔터프라이즈 영역까지 모두 포함된다. 이러한 인프라 비즈니스가 HP 전체 매출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결국 HP의 사상 최대 적자는 하드웨어 부문에서의 부진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모바일 열풍은 HP의 PC와 노트북 매출을 각각 10%, 13%나 깎아냈고 프린터 역시 3% 하락했다. 서버, 스토리지 역시 유닉스 시장의 축소에 따라 매출이 4%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소프트웨어만큼은 전년 대비 18% 성장을 거뒀다. 그럼에도 소프트웨어 부문에서의 약진이 HP의 전반적인 부진을 만회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도 그럴 것이 HP 전체 매출액에서 소프트웨어 비즈니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3%에 불과하기 때문. IBM의 소프트웨어 매출이 전체 매출의 약 37%를 책임지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결국 HP는 철저히 하드웨어 업체라는 결론에 닿는다.

 

▲HP의 2012년 회계연도 3분기(5~7월) 실적(자료: HP)

 

실제로 지난 5월 중국에서 열린 HP 글로벌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맥 휘트먼 CEO는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도 물론 중요하지만 HP의 핵심 사업은 여전히 PC, 프린터, 서버, 스토리지”라는 언급으로 HP의 노선을 분명히 한 바 있다.

 

물론 HP가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HP는 웹 OS, 보안, 자동화, DW, 검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계를 선도해온 업체들을 꾸준히 인수하며 소프트웨어 역량을 갖춰왔다. 특히 지난해 인수가 성사된 버티카와 오토노미의 경우 ‘빅 딜’로 불리며 업계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HP는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에서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 DB와 WAS 관련 제품군을 확보하고 있지 않아 독립적인 소프트웨어 매출은 미비한 상태다. 현재 HP의 소프트웨어 포트폴리오에서는 애플리케이션 성능 관리(APM) 및 애플리케이션 수명주기 관리(ALM) 제품군이 가장 큰 매출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에 HP는 자사의 하드웨어를 차별화하는 요소로서의 소프트웨어를 제시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른바 ‘컨버지드 인프라스트럭처’ 전략이 그것으로 하드웨어의 역량을 강화시켜주는 소프트웨어를 얹어 데이터센터의 복잡성을 해결하는 손쉬운 솔루션과 포트폴리오를 제공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

 

컨버지드 전략은 어플라이언스로 대변되는 최근의 통합 트렌드와도 일치한다는 점에서 HP로서는 시기적절한 대응을 취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를 위한 소프트웨어 기술력 확보를 인수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구조는 HP가 해결해야 할 숙제임은 분명하다.

 

장민하 한국HP 엔터프라이즈 그룹 소프트웨어 사업부 상무는 “아직은 HP의 소프트웨어 그룹이 타 벤더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인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내부 조직을 개편하고 EDS 그룹, 오토노미 그룹 등을 새로 신설해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라며 “최근 IT 트렌드의 변화로 인해 소프트웨어 시장에도 기존과는 다른 판도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를 잘 이해하고 대응한다면 소프트웨어 비즈니스가 HP의 캐시카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균 기자 yesn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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