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마이클 필립스는 30년간 음성인식 기술 개발의 외길을 걸었던 인물이다.

 

2006년 `빌링고'라는 회사를 설립하자 애플과 구글 등 굴지인 IT(정보기술) 업체들이 잇따라 파트너십을 제의하고 나선 것은 필립스의 기술력이 얼마나 독보적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2008년 덩치가 훨씬 큰 `뉘앙스'라는 업체로부터 "회사를 팔지 않으면 특허 침해로 고소하겠다"고 통보를 받게 된다.

 

필립스는 자신을 상대로 제기된 6건의 소송 중 1차 소송에서 이겼지만 변호사 비용으로 300억 달러를 쏟아붓고 애플 등과의 협력관계도 끊기다 보니 극심한 경영난에 봉착했고 결국 뉘앙스에 회사를 넘겼다.

 

애플이 지난해 모든 아이폰에 음성인식 기능인 `시리'(Siri)를 탑재한다는 발표에 억장이 무너졌다는 그는 "송사에 휘말리지만 않았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시간) 이런 사연을 전하면서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인 특허가 남발되는 소송 때문에 오히려 기술 혁신을 방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20년간 디지털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소프트웨어 특허가 `파괴적인 무기'로 악용되면서 새 아이디어 시장이 크게 오염되는 부작용을 동반했다고 지적한다.

 

빌링고는 그런 와중에 희생된 소규모 벤처 기업에 불과하지만 애플과 삼성전자 등의 사례에서 보듯 최근에는 초대형 기술업체 간의 특허전쟁도 잇따르는 상황이다.

 

스탠퍼드대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스마트폰 업계가 특허분쟁에 사용한 비용만 무려 2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화성 탐사선을 8차례나 쏘아 올릴 수 있는 돈이다.

 

지난해에는 애플과 구글이 특허 소송이나 매입에 투자한 돈이 처음으로 연구개발(R&D) 예산을 초과했다.

 

물론 특허는 지적재산권 보호에 필수적인 장치다. 창의적인 생산물이 쏟아지는 기술업계에서 특허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신상품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의 특허제도가 기계산업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것이어서 오늘날의 디지털 시장에 적용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신약제조법 등에서와 달리 소프트웨어 특허는 구체적인 창조물이 아닌 `개념'에 대한 특허를 인정하는 경향이 강하고 당국도 모호한 알고리즘이나 비즈니스 기법 등의 특허권을 부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구체적인 계산법이나 소프트웨어의 작동 방식 등을 따져보지도 않고 온라인 가격을 산정하는 소프트웨어에 특허를 인정하는 식이다.

 

그렇다 보니 일부 특허는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외견상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타인의 생산물들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소유권을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해당 특허가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제품을 만들었다가 소송을 당하는 회사가 적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경우 소송 비용은 가격 등의 형태로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현행 특허 규정을 만드는데 참여했던 리처드 포스너 연방 항소법원 판사는 "특허권을 부여하는 기준이 너무 느슨하다 보니 특허 분쟁에서 심각한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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