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은 생물학과 의학 분야 최대의 발견으로 꼽히는 DNA 이중나선 구조가 발견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DNA는 195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구조를 드러낼 정도로 작은 물질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신비할 정도로 정교한 구조가 있다. DNA 발견은 전통적인 생물학을 분자생물학으로 완전히 바꿨을 뿐 아니라, 생물을 유전자 중심으로 바라보게 하는 관점의 전환을 일으켰다. 이제 질병과 생김새, 성격과 심리 등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을 유전자와 연관지어 설명하려는 시도가 낯설지 않다. 이런 경향은 인간이 지닌 유전체 전체를 해독하려 한 인간게놈프로젝트로 정점에 달했다.

 

60주년이 된 DNA는 이제 더 이상 세포 안에 있는 유전물질로 머물지 않는다. 세포 밖으로 나와 질병을 진단하거나 생체 재료를 만들 뿐만 아니라 컴퓨터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DNA 활용 기술 가운데 가장 낯선 것은 바로 DNA로 생체 컴퓨터를 만드는 ‘DNA 컴퓨팅’기술이다. DNA의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 등 네 개의 염기 서열을 신호로, 염기끼리 달라붙는 결합 반응을 이용해 연산을 하는 것이다. 1g 안에 10²¹개의 염기가 들어 있는 만큼 저장할 수 있는 정보량도 엄청나다. 특히 사람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과 비슷하게 여러 문제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병렬연산’을 한다.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언어나 시각정보 처리 등 지금의 컴퓨터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풀 수 있을 것”이라며 “최근 주목받고 있는 양자컴퓨터에 비해서도 기술적으로 쉽다”고 말했다.

 

DNA 컴퓨터는 최근 나노바이오 기술과 접목돼 응용되기도 한다. DNA는 화학적으로 안정된 나노 구조이며(DNA 분자의 폭은 3.4nm) 염기끼리 상보적으로 결합하는 특성이 있어, DNA 서열을 잘 설계하면 복잡한 나노 구조를 만들기 쉽다. 대표적인 예가 펑인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팀의 연구다. 2011년 5월 네이처에 실린 논문은 자기조립만으로 재미있는 그림과 구조물(튜브 등)을 선보였다. 특히 완전히 합성으로만 만든 염기 42개짜리 인공 DNA 가닥을 이용하고, 접착시킬 수 있는 다른 물질을 전혀 쓰지 않은 채 DNA의 상보성에만 의지해 만들었다. 비유하자면 못을 쓰지 않고 나무를 끼워 맞추는 나무 건축물 같다.

 

펑인 교수팀은 한 단계 더 나아가 2012년 11월 사이언스에 아예 3차원 블록 형태의 구조물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만든 DNA 나노 구조는 질병치료를 위한 단백질이나 약물을 담아 전달하는 구조물로 사용될 수 있다. DNA는 또한 전기전도성이 있는데, 이를 이용해 아주 작은 나노 전선을 만드는 연구 사례도 있다. 컴퓨터 회로를 구성할 수도 있다. 이지훈 서울대 바이오지능연구실 박사과정 연구원은 “나노 와이어 구조를 만들면 실리콘보다 작은 구조의 전자 소자로 직접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성질을 갖는 물질 개발에도 DNA가 쓰인다. 이종범 서울시립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2013년 1월 출판된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DNA 메타 하이드로겔’이란 물질에 대한 논문을 실었다. 이 물질은 DNA의 염기가 갖고 있는 저절로 결합하는 특성을 활용했다. 솜뭉치처럼 일정한 모양 없이 흐물흐물하지만 물속에 넣으면 미리 만들어둔 모양을 회복한다. 겔은 담는 용기에 따라 형태가 변하는 물질이다. 하지만 DNA 메타 하이드로겔은 물을 제거하면 물먹은 솜처럼 흐물흐물해지고, 다시 물을 부으면 형태를 회복한다. 또한 다공성 물질이라 안에 넉넉한 공간이 있어 세포를 키울 수 있다.

 

이 교수는 “생체 조직을 만드는 데 쓸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캡슐처럼 안에 약물을 넣어서 몸 안에 넣을 수 있다. 몸 안에서 DNA를 분해시키면 자연스럽게 약물이 나온다. 염증 치료에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DNA 정보를 상품의 바코드처럼 활용해 즉석에서 생물 종을 찾는 ‘DNA 바코드’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병원균 진단에 유용할 것으로 보이는 이 기술은 바코드만 있으면 수만 가지 상품이 섞여 있어도 종류별로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수천 종의 병원균을 한 번에 진단할 수 있다. 때문에 침이나 피 한 방울만 있어도 중복 감염된 병까지 한 번에 진단할 수 있게 해준다.

 

새로운 물질을 화학적으로 합성해 인공 DNA를 만들기도 한다. 필립 홀리거 영국 MRC분자생물학연구소 교수는 핵산의 분자를 바꾸거나 구조를 변형해 DNA 대신 쓸 수 있는 새로운 DNA 분자를 만들었다. ‘XNA’라고 이름 붙인 이 인공 DNA는 체내에서 쉽게 분해되지 않기 때문에 병을 진단하거나 약물을 전달하는 데 재료로 쓸 수 있다.

 

조병관 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과학자들은 최근 DNA로 새로운 정보를 표현하기 위해 염기서열 합성 외에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DNA는 더 이상 생체 내에서 원래 주어진 역할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제 DNA 연구는 제 2막으로 들어섰다. 새로운 DNA, 즉 ‘네오 DNA’ 시대다. 네오 DNA 시대를 이끄는 과학자들은 DNA를 세포 밖으로 꺼내 전혀 새로운 용도로 활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글 : 윤신영 과학칼럼니스트

 

[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http://scent.nds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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