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스피커 산업은 ‘유럽’이 독점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에는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오디오 기업들이 존재하며, 해마다 수천 종의 신제품을 만들어낸다. 그런 영국에서도 B&W, 쿼드(QUAD), KEF, 와피데일, 탄노이, 모니터오디오 등의 브랜드를 거느린 영국과 다인오디오, 달리(DALI), 뱅앤올룹슨(B&O), 가무트(GamuT), 스캔다이나 등이 있는 덴마크가 단연 대표적인 오디오 강국일 것이다.

 

하지만 영국 바다 건너, 그리고 덴만크와 국경을 맞댄 독일은 전통적으로 기계공업의 강국이다. 그리고 독일에는 독일의 스피커 자존심인 ‘엘락(ELAC)’이 존재한다. 엘락의 영업과 마케팅을 총괄하는 올리버 존(Oliver John) 이사가 한국을 방문해 엘락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10대부터 엘락에서 일해 영업·마케팅 이사가 된 올리버 존

▲ 10대 시절부터 엘락에서 일해 엘락의 이사 자리까지 오른 올리버 존

 

고급 수입 오디오 판매점이 즐비한 용산 전자랜드 2층에서 올리버 존을 만날 수 있었다. 엘락은 용산 전자랜드 내 여러 숍에 전시된 자사 제품들을 봤기 때문인지 흐믓한 미소를 띄었다. 실제로 그는 독일의 유명한 하이엔드 오디오 제조업체 버메스터(Burmester)의 초고가 스피커를 가리키며 “이 제품에 사용된 트위터가 바로 엘락의 JET 트위터입니다”고 자랑했다.  

 

올해로 42세가 되었다는 올리버 존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엘락의 열성적인 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리버의 아버지가 엘락의 전무로 근무했던 탓에 올리버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엘락 제품을 듣고 자랄 수 있었다. 올리버는 10대였던 1980년대부터 방학 때마다 엘락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1997년에 엘락에 입사해 지금에 이른 것이었다.

 

“현재 엘락의 사장이 아버지인데 연세가 많아 아마도 제가 다음 운영자가 돼 엘락을 이끌 것 같습니다.”

 

엘락의 대표가 되기에는 나이가 적은 듯했으나 올리버의 얘기를 듣고 나니 수긍이 갔다. 올리버와 엘락의 인연은 어느덧 30년 가까이 됐으니까.

 

마침 한국에서 엘락 제품의 수입원이 바뀌자 올리버는 시장 조사차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은 하이파이 수요가 적지 않은 나라인데, 엘락의 인기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불경기다 보니 유럽도 많은 나라들이 경기가 안 좋은데 그나마 독일만 괜찮은 상태예요. 아시아 시장을 놓고 보면 아직 일본은 시장 상황이 괜찮고 중국과 대만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이파이뿐만 아니라 홈씨어터 시장도 나쁘다 보니 저희로서도 걱정이 안 될 수 없죠. 한국 시장이 상당히 침체돼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글로벌 마케팅 정책 통일

 

올리버는 한국 시장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특히 유럽보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아시아 시장에 관심이 많았다. 게다가 한국의 공식 수입업체가 올해부터 사운드솔루션으로 변경돼 한국과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엘락은 지금까지 각 나라마다 수입원이 엘락 로고나 광고 시안을 자체 제작해왔어요. 그런데 작년부터 글로벌 마케팅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어느 나라에서든 동일한 로고와 광고를 사용하도록 마케팅을 진행하기 시작했죠. 사운드솔루션과도 작년부터 바뀐 엘락 마케팅 가이드라인에 대해 설명하고 상호간 협력이 잘 이뤄지도록 해야 하기에 서둘러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올리버의 얘기를 듣고 현재 한국 시장에서는 사운드바가 이슈가 되고 있다고 얘기했다. 아직까지 엘락은 사운드바 스피커 시스템을 만든 적이 없어 그에 대한 대응은 안 하는지 내심 궁금했었다.

 

 

액티브 스피커 제작 위해 믿을 수 있는 파트너사 물색 중

 

“북미나 유럽도 사운드바의 수요가 늘고 있는 만큼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런데 엘락에서 만드는 제품들은 결코 저렴하지 않아요. 고객층이 프리미엄급 제품에 관심 있는 이들이다 보니 대중적인 시장인 사운드바를 주시하면서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고심하고 있습니다. 엘락은 이미 작으면서도 성능이 뛰어난 스피커를 많이 만들어왔습니다. 따라서 사운드바를 만들더라도 크지 않게 만들 계획입니다. 사실 사운드바가 그리 클 필요가 없거든요. 아직 출시 계획은 없지만 만약 엘락이 사운드바를 만든다면 기존 사운드바와는 확연히 차별되는 제품일 겁니다.”

 

올리버도 ‘시장이 요구하는 제품을 만든다’는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PC를 기반으로 한 PC-Fi가 인기를 얻자 앰프를 내장한 액티브 스피커도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PC-Fi뿐만 아니라 멀티미디어 환경에 적합한 제품을 만들려고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말 신뢰할 만한 협력업체를 찾는 데 있어요. 스피커에 관계된 것이라면 엘락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나 독자적인 기술이 상당해 자신 있는데 액티브 스피커는 전자 쪽과의 협업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현재도 믿을 만한 파트너사를 물색하고 있습니다.“

 

그는 엘락의 첫 액티브 스피커인 AM150이 엘락의 특징인 JET 트위터와 알루미늄 포일을 사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첫 액티브 스피커이기에 테스트 성격이 짙었다고 말했다.

 

“AM150은 컨슈머용 제품이 아닌 PA 스피커입니다. 아무래도 처음 시도한 액티브 스피커이다 보니 엘락 스타일과 다르게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이제 AM150의 판매를 중단할 예정입니다. 대신 기존 엘락의 특징인 JET 트위터나 알루미늄 샌드위치 페이퍼 콘 등을 사용한 새로운 액티브 스피커 ‘AM180’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330 CE 버전 이후 지금까지 후속 모델에 대한 소식이 없는 엘락 스피커 330 시리즈에 대해 물어봤다. 풀 알루미늄 인클로저에 독특한 모양의 하이엔드 북쉘프인 330은 초기 모델부터 꾸준히 개선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2009년 크리스털 베이스 드라이버를 사용한 330 CE 버전 이후 지금까지 후속 모델에 대한 소식이 없었다.

▲ 엘락의 하이엔드 북쉘프 스피커 330 CE와 올리버 존 이사

 

“어느 회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엘락도 새로운 기술이 개발될 때마다 그것에 맞춰 새로운 제품을 출시해왔습니다. 얼마 전에도 새로운 드라이버 유닛과 5세대 JET 트위터를 개발해 400 시리즈에 사용했으니 아마도 조만간 이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신형 CL330이 출시되지 않을까요?”

 

새로운 유닛을 장착한 신형 제품들이 잇달아 출시될 것 같은 기대감을 준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엘락의 높은 품질에 비해 인지도가 많이 부족한 상태다.

 

“한국 시장에서 B&W와 다인오디오가 매우 인기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엘락은 이들과의 경쟁을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로지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기술 개발에 더 관심이 있죠. 제품 성능에는 자신 있으니까 이제는 어떻게 해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엘락 제품의 장점을 알릴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끊임없는 기술 연마 위에 오픈 마인드로 그간의 생각과 마케팅을 변화시키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여러 제품들과의 경쟁을 크게 우려하지 않습니다.”

 

얘기를 나누는 동안 올리버는 시종일관 엘락의 기술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을 드러냈다. 10대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 온 브랜드인 만큼 그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을 듯하다. 머잖아 올리버가 엘락의 대표가 되어도 지금의 애정이 변치 않는다면 충분히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피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올리버 존 이사는 '일락'이라 발음했지만 국내에는 '엘락'으로 알려져 엘락으로 표기했다.

 

이상훈 기자 hifidelit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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