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힐링에 마침표를 찍다

 

인생은 의외로 깁니다. 긴 호흡이 필요합니다. 머리 중심의 짧은 호흡에만 익숙해서는 인생의 긴 여행길을 제대로 걸어가기 어렵습니다. 고난이나 상처는 나를 키우는 자양분입니다. 지워야 할 흔적이 아닙니다. 오늘의 상처를 오롯이 품어낸다면 내일 또 다시 태양이 떠올랐을 때 마음의 키는 훌쩍 더 자라 있을 것입니다.  

<유시찬 신부의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중에서>

 

대한민국에 힐링 열풍이 지속되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대한민국을 강타했을 땐 ‘청년들이 확실히 힘들구나’라고 생각했다. 이어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라는 도서가 나와 40대들의 마음을 흔들더니, 50대 이상을 위한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 라는 도서까지 보게 되었다. 과연 대한민국은 힐링 공화국일까?

 

물론 넘쳐나는 과잉 힐링의 원인은 그만큼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픈 세대’라는 규정시키기 때문에 청춘인 내가 아파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닐까? 스스로 아파서 힐링을 외치기보다는 힐링이 필요하다고 강요당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지인 중에 미술상담가가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요즘 들어 부쩍 찾아와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데, 대부분 답답한 현실을 털어놓고 위로받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때때로 인생이라는 긴 호흡에서 단기적인 좌절을 극복하지 못해 응급처치를 받길 원한다. 하지만 의외로 속 깊은 고민거리를 털어놓을 멘토, 아니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스승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다보니 전문상담사를 찾거나 급기야 점집까지 찾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상처를 누군가 치유해주기란 쉽지 않다. 비슷한 상황이나 경험을 했다고 해도 모두 동일한 상처의 깊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극복 방안 또한 천차만별이다.

 

본래 나는 성격이 강한 편이라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상처를 잘 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생의 돌부리에 걸려 나뒹굴었다. 일어나고 싶어도 여기저기 나 있는 상처로 인해 단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주저앉지도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내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없음이 아쉬웠다.

 

혼자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그린 그림은 불안한 심리적 형상이 그대로 나타났다. 그림을 봐주시는 화가 한 분이 한 권의 도서를 내게 선물해 주었다. 유시찬 보나벤투라 신부가 쓴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내 마음의 상처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강한 얼리어답터 기질 때문에 사람을 직접 만나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기계나 프로그램과 많은 시간을 보낸 지 몇 년, 그렇게 잃어버렸던 스승의 자리에 유시찬 신부가 들어와 있었다.

 

 

 

유시찬 신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파열되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저 토닥이는 위로가 아니라 퍼즐처럼 분산되어버린 나 자신을 스스로 짜맞출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두껍지 않은 책 한 권이 천근의 무게로, 타인이었던 저자가 스승으로 다가온 이 매력적인 도서. 삶의 언저리에 걸려 넘어진 사람들에게 내가 느낀 회복의 힐링을 전하고 싶다. <한경BP 이진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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