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조선 김준혁] 자동차의 모델 체인지 주기는 보통 6년 내외로 알려져 있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쫓아가고, 날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많은 자동차 업체들이 바쁘게 신차를 내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볼보의 중형 SUV 'XC90'은 최근 자동차 트렌드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XC90이 데뷔한 시기가 지난 2012년 북미국제모터쇼였으니 어느덧 10년이 넘는 세월을 특별한 변화없이 버텨온 셈이다.

 

데뷔 당시 XC90은 기존 볼보의 딱딱한 디자인에서 탈피한 부드러운 디자인과 경쟁력 있는 파워트레인, 넓은 실내 공간 등으로 인해 호평을 받으며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물론 이러한 인기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라인업이 다양하지 않던 볼보의 버팀목이 돼 줬다.

 

▲ 2002년 데뷔해 어느새 12년의 세월이 지난 볼보 XC90

  

2002년 데뷔할 당시만큼의 신선함이나 경쟁력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XC90은 볼보의 패밀리카 만들기 노하우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만큼 여전한 매력을 자랑하고 있다.

 

올해 말 등장할 예정인 2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곧 은퇴를 하게 될 XC90 D5를 경기도 용인과 파주 일대에서 만나봤다.

 

▲ 중형급 SUV의 크기를 갖고 있지만 실제보다 커보이는 XC90의 디자인

 

XC90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차체가 크고, 그만큼 실내가 넓다는 느낌이다. 사실 XC90의 차체는 중형 SUV로 분류되고 있는 만큼 그렇게 큰 편은 아니다. 전체 길이와 좌우넓이가 각각 정확하게 4.8m와 1.9m인 XC90은 BMW X5와 거의 유사한 크기를 갖고 있다.

 

▲윈드실드를 최대한 앞쪽으로 위치시켜 실내 공간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XC90

 

이런 XC90이 실제보다 커 보이는 이유는 본넷 쪽으로 바짝 붙어있는 윈드실드와 높은 지상고, 차체에 비해 면적이 넓은 그린하우스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XC90은 전체적으로 껑충 뛰어오른 모습을 갖게 됐고, 낮은 무게중심을 갖고 있는 최신 SUV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XC90의 이런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 굴곡진 헤드램프와 안개등 자리에 위치한 LED 주간주행등

 

▲ 19인 실버 브라이트 알로이 휠과 255mm 피렐리 타이어가 장착됐다.

 

XC90의 전체적인 디자인은 S60이나 V40, XC60 등과 같은 최신 볼보 모델의 디자인과 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곧 세련미가 떨어진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굴곡진 형태의 헤드램프와 두 단계로 나눠진 라디에이터 그릴, 세로 길게 디자인된 테일램프가 XC90의 디자인 특징이라 할 수 있지만, XC60만큼의 매력을 느끼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 시승차는 앞, 뒤 범퍼에 더해진 알루미늄 가드와 듀얼 머플러, 트레일러를 끌 수 있는 견인바가 추가됐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시승한 D5의 모델은 알루미늄 재질의 프론트 범퍼 바와 R디자인 리어 범퍼, LED 주간주행등, 19인치 알로이 휠 등이 더해져 디자인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다.

 

▲볼보 XC 시리즈의 공통된 특징인 세로형태의 긴 테일램프는 XC90에서 시작됐다.

 

▲위, 아래로 나눠서 열리는 트렁크 게이트는 편의성과 활용도가 높다.

 

외부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느껴졌지만, 실내에서는 세월의 흔적을 찾기 힘들만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물론 볼보의 최신 실내 디자인이 적용되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사용하기 편하고 마치 오랜 시간을 함께한 자동차와 같은 익숙함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

 

▲ 심플하면서도 사용성 높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 적용된 XC90의 실내

 

▲ 센터페시아의 버튼은 크기가 작고 숫자가 많아 사용하기 불편하다.

 

여기에 미니밴 수준의 넓은 실내 공간과 제대로 된 7개의 시트, 다양한 공간 활용성은 XC90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볼보의 시트는 자타공인 최고의 편안함을 자랑하는데, 시승차에는 고급 세단에서나 봤음직한 갈색 계통의 체스트넛 가죽 시트가 적용돼 화려함도 갖추고 있다.

 

▲ 앞, 뒤로 슬라이딩 되고 등받이 각도 조절이 가능한 2열 시트

 

▲ 승하차가 비교적 편한 3열 시트는 성인의 경우 단시간 탑승을 추천한다.

 

이러한 시트는 1열뿐만 아니라 2열, 3열에서도 큰 만족감을 준다. 2열 시트는 4:2:4로 폴딩 돼 활용성이 높고, 각각의 시트는 앞뒤 슬라이빙 뿐만 아니라 각도도 조절할 수 있다. 3열 시트는 성인이 앉기에 다소 비좁을 수 있지만 2열 시트를 조금만 앞으로 밀 경우, 짧은 거리 이동 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 C필러 안쪽에 위치한 오디오 컨트롤 버튼

 

▲ 3열 시트만 접었을 때도 적재공간이 충분하지만 더 넓은 공간을 원할 경우, 2열 시트를 접으면 된다. 

 

여기에 2, 3열 탑승객들을 위해 별도로 준비된 오디오 컨트롤 버튼과 심플한 공조장치 버튼은 XC90의 패밀리카 컨셉을 잘 보여준다.

 

▲ 우드가 적용된 스티어링 휠은 미끄러운 편, 하지만 조작감은 부드럽다.

 

▲ 의외로 빠른 반응속도를 보여준 기어트로닉 6단 자동변속기 

 

이러한 XC90의 패밀리카 컨셉은 주행 특성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이는 곧 섀시가 승차감 위주로 세팅돼 있고, 누구나 운전하기 편한 부드러운 스티어링 휠과 변속기, 액셀 페달 반응을 가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 아날로그 손목 시계 타입의 계기판은 무난한 시인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XC90의 부드러움은 유럽차 특유의 단단함에 기반을 둔 부드러움이고, 이 때문에 승차감과 퍼포먼스 사이에서 절묘한 타협을 이루고 있다. 꽤 높은 지상고와 큰 키 등으로 인해 무게중심이 높은 편이지만 미끄럼 방지 시스템(DSTC), 전복 복원 제어 장치(RSC) 등과 같은 전자장비의 도움과 기본기가 탄탄한 서스펜션, 전륜구동 기반의 4륜구동 시스템 덕분에 급한 코너에서도 쉽게 불안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 탄탄한 섀시와 여러 전자 장비의 도움으로 안정적인 주행감각을 보여주는 XC90

 

XC90의 부드러운 세팅은 엔진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200마력의 최고출력과 42.8kg.m의 최대토크를 발생시키는 직렬 5기통 디젤 엔진은 폭발적인 가속력 대신 꾸준하게 힘을 이끌어 내 2.1톤이 넘는 차체를 여유있게 움직인다.

 

▲ D5 엔진은 소음과 진동이 생각보다 크고, 부드러운 반응을 보여준다.

 

D5 디젤 엔진은 초반 응답성이 늦고 터보 랙으로 인해 큰 운전재미를 느끼기 힘들지만 속도가 60km/h를 넘어가고, 엔진 회전수가 2000rpm을 넘어서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해 150km/h까지는 큰 무리없이 가속이 이어지게 된다. 고속영역에서도 4륜구동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접지력 덕분에 안정감이 뛰어난 편이다.

 

하지만 공회전 뿐만 아니라 주행 중에도 끊임없이 들려오는 디젤 엔진 특유의 소음은 패밀리카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 XC90은 부드러움과 단단함을 적절히 섞어 승차감과 주행성능을 두루 만족시킨다.

 

▲ 두툼한 피렐리 타이어는 XC90의 주행성능 향상에 큰 도움을 준다.

 

XC90 D5 구동계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아쉬움이라면 역시 연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다소 오래된 구동계를 사용하는 탓에 11.5km/l의 공인 복합연비를 갖고 있는데, 230km를 주행하면서 얻은 평균연비는 9.7km/l로 공인 연비보다 조금 부족한 모습을 보여줬다.

 

공인연비와 실연비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은 반길 일이지만, 드라이브-파워트레인을 갖춘 최신 볼보 모델의 경우 연비가 비약적으로 향상됐기 때문에 현세대 XC90의 연비에 대한 아쉬움이 클 수 밖에 없고, 향후 2세대에서의 연비 향상을 기대해본다.

 

▲ 사각지대 경보장치을 위해 사이드미러 하단에 장착된 카메라 센서

 

▲ 유아나 어린이 탑승자를 위해 2열 시트 중간에 부스터 쿠션을 갖추고 있다.

 

한편, 안전한 자동차의 대명사 볼보의 SUV답게 XC90에는 다양한 안전 장비가 탑재돼 있다. 우선 사각지대 경보장치인 BLIS(1세대 카메라 버전)를 비롯해 앞서 언급한 다양한 주행 안전 장치, 측면 충돌 보호 시스템(SIPS), 전복 방지 시스템(ROPS), 보행자 보호 시스템 등이 적용돼 있다. 물론 시티 세이프티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선이탈 경고 장치 등과 같은 최신 장비가 적용되지는 않은 것은 아쉽지만 실내에 오르면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 검증된 안정성에 어울리는 탄탄한 디자인을 갖춘 XC90

 

최신 장비를 가득 채우고 화려한 디자인으로 무장한 SUV가 득세하는 상황에서 XC90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니밴 못지 않은 넓은 공간과 활용성, 여기에 4륜 구동 시스템의 안정성과 주행성능은 XC90을 캠핑카 또는 아웃도어용 자동차로 선택하기에 충분한 이유다. 여기에 가족의 안전까지 생각한다면 XC90의 선택 이유는 더욱 확고해질 것이다.

 

김준혁 기자 innova33@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