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조선 박상훈] 지난 3월 소프트웨어(SW)정책연구소의 출범은 여러가지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SW 업계를 둘러싼 묵은 숙제를 풀 출발점이자, 특히 사회 각 분야로 SW의 가치를 확산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상징적인 조치였다.

 

실제로 이후 정부는 범정부 'SW중심사회' 실천 전략을 내놨고, 대통령은 조달청장에게 임명장을 주며 SW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등 가시적인 변화도 감지됐다.

 

IT조선은 설립 6개월을 맞은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의 김진형 소장을 만나 ‘SW중심사회’의 중요성과 SW 관련 주요 현안, 연구소의 운영 현황과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SW중심사회’라는 용어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한 김 소장은 SW중심사회로의 전환은 국가의 생존을 위해 필수이고, 창조경제는 정치적 구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소장 (사진=위클리공감)

 

특히 김 소장은 지금 시점에서 SW중심사회로의 전환이 매우 시급하다는 점을 ‘전쟁’에 비유했다. 그는 공공영역에서 SW를 무상으로 만들어 배포해 민간 시장을 파괴하는 것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이제는 ‘전쟁하듯’ 구태와의 결별에 나서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또한, SW 부문의 경우 정부 R&D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R&D 결과물은 창업이어야 하고 사람에 대한 투자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김 소장은 기업부터 SW 친화적인 문화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조차도 구먹구구식으로 엔지니어를 평가한다며 조직 관리 측면에서 우리 기업이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연구소 운영 관련해서는 장기적으로는 국내 SW 정책연구의 허브로 키우고, 연구원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김 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Q. 요즘 가장 주목받는 용어 중 하나인 ‘SW중심사회’를 만든 장본인이다. 어떤 의미를 담고 싶었나?

 

'SW중심사회’는 SW를 사회 전반적인 측면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동안 SW하면 산업적인 이슈로만 해석했다. SW하면 산업이라는 단어가 꼭 붙어 다녔다. 문제는 SW 산업 관련된 많은 정책과 대안이 나왔지만 제대로 된 것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SW 산업'하면 크지도 않은 산업 규모에 맨날 시끄러운 분야라고 하고, 담당 공무원은 2~3년 하고 나면 ‘시원하다’ 하면서 다른 데로 갔다.

 

하지만 외국은 어떤가. 우리가 이러는 사이 외국은 자동차, 전자 등 거의 모든 산업이 다 SW를 기반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차이를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SW중심사회’라고 지었다. ‘SW사회'라고 했는데 영문으로 하니 'Software Society'가 됐고 이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니 ‘SW학회'가 되더라(웃음). 지금 생각하면 고민한 만큼 의미를 잘 담은 용어인 것 같다.

 

Q. SW중심사회 아젠다를 중심으로 범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정책도 나왔다. 이전 정부와 비교했을 때 실제로 SW 분야에 대한 의지가 달라졌다고 느끼나?

 

단적인 사례가 있다. 대통령이 지난달 신임 조달청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공공기관이 SW 제대로 구매하도록 신경 쓰세요”라고 했다. 임명하는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 정도면 정부 전체적으로 상당한 압박이 될 수 있다. 그만큼 SW에 대한 분위기가 바뀐 것으로 본다. 실제로 이후에 청와대 등에서 다양한 제도 개선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 무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SW에 관한 주무부처가 정통부, 지경부, 미래부로 바뀌는 과정에서 권한과 예산이 줄고 정책 의지가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각 부처 담당자가 의지를 갖고 하면 '최저가 입찰’ 같은 문제 많은 방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수의계약도 가능하지만 안하고, 못하는 것이다. 지금도 1년에 한번씩 무슨 SW 대책이라고 이름 붙여 내놓지만 많은 부분 소용없는 짓이다. SW는 결국 범부처 이슈다. 국무총리 산하 등 정책 실행력을 담보할 수 있는 곳에서 관심을 두고 챙겨야 한다.

 

Q. ‘SW중심사회'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지금 이 시점에서 SW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SW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잘 모른다. 알고리듬을 프로그램 언어로 구현한 것이 프로그램이고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합친 것이 SW라는 것은 기계적인 정의다. SW는 지식을 창출하고 상황을 인식하고 과학적인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기계 사용의 편의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즉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이 SW인 셈이다. 이처럼 SW가 광범위하게 사용돼 삶의 질이 향상되고 SW가 개인과 기업, 국가의 경쟁력이 되는 사회가 바로 ‘SW중심사회'다.

 

SW는 이미 모든 산업의 기반 기술이다. 네이버에서 볼 수 있듯 작은 아이디어를 큰 사업으로 바꾸고, 창업 기업을 대기업으로 성장시킨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가치'다. 효율적인 사회, 안전한 사회, 투명한 사회, 소통하는 사회를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투명한 사회라면, '거짓말하지 맙시다’라며 거리 캠페인 해봐야 소용없다. 이를 지원하는 SW 시스템이 해법이다.

 

과거에 금융 실명제 할 때 반대가 엄청났다. 우리나라는 컴퓨터 실력이 없어 은행 전산화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해냈고 사회 전반적으로 투명해졌다. 이처럼 정부는 제 할 일 잘하려면 SW에 투자해야 한다. 아니 투자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SW산업 역시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SW 학과로 인재가 몰리고 청년 실업 문제도 해소된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바로 창조경제다. 창조경제는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이거 안하면 죽는다고 봐야 한다.

 

Q. SW중심사회로 전환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정부가 더 적극적인 SW 소비자가 돼야 한다는 주장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SW 활용도는 선진국의 1/3 수준이다. 자동차를 비롯한 모든 산업 등에 더 SW 접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더 많은 SW와 더 많은 SW 엔지니어 육성에 투자해야 한다. 지금 정부가 4대강 바닥 청소할 때인가. 그건 세상을 잘못 본 것이다. 지저분하면 청소 할 수 있지만 그건 잘 살 때 하면 된다. 지금은 정부가 SW에 직접 투자하든 열심히 사주든, 어떤 형태로든 많이 써야 할 시점이다.

 

SW 교육과 SW 연구개발(R&D) 지원 방향도 바꿔야 한다. 교육의 중심은 직접 체험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임진왜란이 몇년도에 발생했는지 뭐가 중요한가. 이런 지식은 인터넷 뒤지면 다 나온다. 중요한 것은 '정보과학적 사고(computational thinking)'를 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복잡한 문제를 작은 문제로 나눠 단계적으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다. 이미 영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다 하는데 우리만 못할 이유 없다.

 

R&D 관련해서 SW는 사실 R&D가 큰 역할을 못한다. 일부 공무원은 출연연에서 SW 잘 만들어 중소기업에 이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전제 자체가 틀린 것이다. 선진국은 R&D 자금 지원하면 일정 기간 이후 창업해야 한다. MP3 특허가 이렇게 개발됐다. R&D의 최종 결과물은 창업이어야 한다. 사람에 대한 투자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자금만 받고 출연연 밖으로 안 나온다.

 

Q. 사실 이런 문제는 창업과 SW에 대한 문화적인 차이도 있다. 해외 창업 생태계를 국내에 그대로 이식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SW 친화적인 문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구글의 경우 관리자가 팀원에게 지금 뭘 하는지, 출근은 잘 하는지 등을 체크하지 않는다.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이지 적어내고 이를 얼마나 완수했는지 스스로 평가한다. 상명하달이 아니라 잘 준비된 도구를 깔아놓고 자유롭게 조합해 보면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한다. 소스코드 다 모아 놓고 공유해 재사용하도록 한다. 정말 창의적인 기업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다른 부서가 작성한 소스 코드라도 보려면 당장 간첩 소리 듣는다. 삼성 같은 기업도 엔지니어의 업무 내용을 다 파악하지 못하고 평가가 진행된다. 당연히 제대로 못하니 '결석 몇 번 했어’ 식의 평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구글 같은 기업에서 일하는 제자에게 IT 기술 외에 조직 관리 기술도 유심히 보고 배우라고 충고한다. 앞으로 우리나라에 더 필요한 기술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국내 SW 기업이 마이다스아이티다. 무스펙, 무상호평가, 무징벌, 무정년에 자동 진급, 종신고용 등 파격적으로 기업을 운영한다. 건설 소프트웨어라는 좁은 분야긴 하지만 세계 1위다. 지금은 글로벌 경쟁이 점점 심화되고 있어 경쟁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내부에서는 경쟁 대신 협동으로 이 글로벌 경쟁을 이겨낼 수 있다고 본다.

 

Q. 공공 발주제도 개선은 새로운 방안이 발표될 때마다 논란의 중심이 되곤 했다. 최근엔 공공기관이 SW를 개발할 때 민간 시장과의 충돌 여부를 미리 심의하는 조직을 만드는 안이 추진되고 있는데 일부 부처의 반대가 있다고 알고 있다.

 

공공에서 SW를 만들어 무료로 뿌려 민간 기업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다. 혁명적 발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관련 심의위원회를 만드는 것을 제안했는데 부처의 반대가 상당했다. 하지만 이 사안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국립대학, 심사평가원, 식약청, 교육청, 도로공사 등 무료로 SW 만들어 민간 기업 힘들게 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 이제는 예전에 있었던 ‘**와의 전쟁’처럼 전쟁이라고 한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대통령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규정이 시행령이어서 정부 부처, 특히 지방정부는 하나도 지키지 않으니 기관 평가에 이 부분을 반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SW 개발해서 무상으로 나눠주는 기관 혼 좀 내주자는 취지다. “잘 알았습니다”하시더라. 위원회를 구성하는 안은 이렇게 나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부 기관이 말을 듣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이제는 전쟁하듯 하지 않으면 안될 시점이라는 점이다.

 

Q. SW정책연구소 발족한 지 6개월 정도 지났다. 조직 구성은 어느 정도 마무리 됐나?

 

지난 6개월간 14명 정도 채용했다. 70%는 엔지니어, 30%는 인문사회학 전공자로 채우려고 했다. 인문학 쪽은 거의 목표를 채웠는데 엔지니어 쪽은 못뽑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인재는 삼성전자나 네이버, 다음에서도 원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고 엔지니어로 잘나가는 사람에게 '커리어 바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라’고 마냥 권할 수도 없다.

 

지금은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하지만 여기서 5~6년 연구원으로 일하면 사회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좋은 기업에서 데려가거나 정부에서 개방직 생기면 옮겨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개방직 끝나고 다시 연구소로 돌아올 수도 있게해 전체 SW 정책 인력 풀을 넓힐 필요가 있다. 정부 출연연은 결국 고급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다. 대학(원)은 박사과정이라고 해도 초급인재 양성이고, 연구소는 고급인재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만들어주는 곳이다.

 

Q. 이제 출범 1년 차여서 연구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거나 정책 개발을 위한 예산 확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내년 예산으로 100억 원 가량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기대만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사실 연구소 운영에는 큰 돈이 필요하지 않다. 그래도 욕심을 부리자면 SW정책연구소를 국내 SW정책의 허브로 키우고 싶다. 내부의 연구원 몇명으로 얼마나 많은 연구를 할 수 있겠나. 연구원 밖에서도 SW 정책 연구할 수 있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대 법대와 공대 컴퓨터 공학과에 게임 규제에 대한 연구를 의뢰하는 식이다. 그 결과를 연구소에서 같이 토론하고 사회 이슈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존에 일부 공공기관이 사업으로 이런 연구를 발주했지만 굉장히 단편적이고 연구성과가 쌓이지 않았다. 우리가 허브 역할을 하고 대학에 SW 정책에 대해 고민하는 그룹을 여기저기 만들면, 그 경험을 한 학생이 대학 졸업후 SW정책연구소에 올 수도 있다. 연구원에 박사 학위 과정을 지원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연구소와 연구원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정도의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Q. 8월말 정년 카이스트하고 명예교수로 추대됐다. 이제 학교 현장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게 될텐데 느낌이 어떤가?

 

사실 덤덤하다. 지난 12월말부터 여기에 와 있었고 퇴임식 했다고 해도 변화는 없다. 그래도 카이스트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다. 밖에서 보니 그동안 못봤던 것이 보인다. 예를 들어 카이스트가 SW중심사회, 창조경제에서 요구하는 것을 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고전적인 연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연구가 더 날렵하고 현장 중심으로 가야 한다. 후배들의 숙제다.

 

임기가 3년이어서 이제 2년 반 남았다. 그 이후에 뭘 할지는 아직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에 오는 SW정책연구소장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같이 토론하는 것도 좋겠다. 한때는 지금 생각하는 SW 관련 아이디어를 국회에 들어가 실현하고 싶었다. 결국 잘 안됐지만 다행히 SW정책연구소장 자리는 당시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의 상당 부분을 할 수 있다. 지금은 연구소를 잘 운영해 국내 SW정책 연구의 허브로 키우는 것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박상훈 기자 nanugi@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