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조선 유진상] 정부가 주민등록번호 개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한 공청회가 입장차이만 확인한 채 마무리 됐다. 기존 번호를 유지하자는 의견이 대다수인 가운데 새 번호를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 맞서는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 29일 안전행정부와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공동으로 주민등록번호 개선 방안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29일 안전행정부는 한국지방행정연구원과 함께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주민등록번호 개선 방안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날 공청회에는 학계를 비롯해 시민단체, 금융계 등에서 다양한 인사가 참석했다.

 

주제발표에는 금창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맡았으며 김두호 우리은행 고객정보보호센터본부장, 김상겸 동국대학교 교수, 김종면 서울신문 수석논설위원, 오강탁 한국정보화진흥원 전자정부지원본부장,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사무국장, 유승화 아주대학교 교수, 정성화 국민건강보험공단 정보관리실장, 최영훈 광운대학교 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그 동안 주민등록 번호 개선과 관련해 신규 주민번호를 부여하는 방안과 발행번호를 도입하는 방안 등 다양한 방안이 제기된 바 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해외 사례를 검토하고 그간 제기된 대안들을 개인정보보호 및 실현 가능성의 관점에서 재검토하고 논의했다.

 

발표에 나선 금창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6가지 주민등록 번호 개편 대안을 연구결과로 발표했다. 그가 연구 결과로 제시한 방안은 ▲규칙적 신규 주민번호 개발 ▲생년월일만 표시하는 무작위 신규 주민번호 개발 ▲현 주민번호와 무작위 발행번호 혼합방안 ▲신규 주민번호에 무작위 발행번호 개발 ▲기존 주민번호 폐지 및 규칙성 발행번호 개발 ▲기존 주민번호 폐지 후 무작위 발행번호 등 6가지 방안을 연구 결과로 발표했다.

 

▲ 검토대안별 장단점 분석

 

금 위원은 “현행 주민등록번호의 개선은 기존의 문제를 해소하는 동시에 개편에 따른 비용 및 불편이 최소화되는 원칙에 기초할 필요가 있다”며 “주민등록번호의 개편 대안은 현행보다 개인정보의 보호가 한층 강화되는 목적을 실현하는 동시에 주민등록 번호의 개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의 최소화와 국민들의 이용에 따른 불편이 크지 않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민번호 개편해야

 

주민번호 체계 개편에 찬성하는 토론자들은 주민번호 유출에 따른 피해를 막고 앞으로 유출을 차단하기 위해 새 주민번호로 교체하거나 추가로 증 발행번호까지 부여하는 ‘이중 번호’ 체계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범용식별번호로 사용되는 주민등록 체계가 근본원인”이라며 “개인정보를 포함하지 않는 무작위 일련번호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주민번호는 행정업무로만 국한하고 다른 영역에선 영역별 식별번호를 사용해야 한다”며 “변경이 필요할 경우 허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종면 서울신문 수석 논설 위원은 “신규 주민번호로 교체하고 주민증 발행번호를 추가로 도입하는 게 불안감 해소에 가장 좋다”며 “하지만 막대한 비용과 불편이 예상되므로 현재 주민번호를 관리용으로 유지하고 일상에서는 증 발행번호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기존 번호는 유지하되 경우에 따라서는 변경을 허용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김상겸 동국대학교 교수는 “행정적 측면에서 주민번호의 존속 필요성은 있다”며 “다만 유출로 피해를 본 개인이나 위험이 있는 경우는 번호를 교체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효율성 및 개편비용 무시 못해…신중해야

 

하지만 주민등록번호의 효율성과 개편에 따른 막대한 비용과 불편, 기존 정보시스템과의 연계 등을 이유로 개편에 신중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노진호 우리에프아이에스(FIS) 전무는 "새로운 번호를 도입할 경우 우리 기관에만 300억원 이상이 필요할 것"이라며 "비용 측면에서 볼 때 기존 주민번호를 유지하고 사용 발행번호를 추가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오강탁 한국정보화진흥원 전자정부지원본부장은 "모든 행정정보는 주민번호를 중심으로 연계돼 있다"며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행정정보시스템 전환에 3000억∼4000억원이 든다"고 말했다.

 

정성화 건강보험공단 정보관리실장은 "아직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듯하다”며 “새 주민번호 도입은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확정된 바는 없다

 

한편, 정부에서는 여전히 기존 주민등록번호를 유지할 수도 있다는 방침이다. 즉, 오늘 공청회에서 소개된 6개의 법안에 현행유지라는 제 7의 방안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이번 공청회가 하나마나한 전시성 행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기수 안전행정부 자치제도기획관은 “오늘 제시된 6개 방안은 정부가 마련한 대안이 아니다”라며 “연구 용역일 뿐 이들 중 정부가 우선 순위를 둔 안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론수렴을 거쳐 정부 방침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진상 기자 jinsan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