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대비 성능을 뜻하는 ‘가성비’는 상품 구입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특히 가격과 성능 정보가 상세히 공개된 PC 시장은 더욱 심하다. 그런 PC 시장에 소비전력 대비 성능을 뜻하는 ‘전성비’가 주목받고 있다. ‘전성비’가 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지 그 원인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IT조선 최용석] PC에서 가장 고성능의 부품을 꼽는다면 누구나 CPU를 먼저 꼽는다. ‘PC의 두뇌’라 불리며 각종 연산과 처리, 명령어들을 기가헤르즈(GHz) 단위의 고속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래픽카드의 핵심인 GPU도 마찬가지다. 고성능 GPU는 어지간한 데스크톱 CPU보다도 많은 트랜지스터가 집적되고, 작동 속도도 더 빠르다.

 

물론 이들 CPU와 GPU들은 고성능을 발휘하는 만큼 무지막지한 전력을 소비한다. 풀 로드(최대 부하)시 CPU와 GPU가 소비하는 전력이 100W를 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으며, 하이엔드 GPU의 경우는 아예 100W 이상의 전력을 소비하기도 한다. 두 부품이 PC 전체에서 소비하는 전력이 최소 절반 이상에 달하는 셈이다.

 

▲ 차세대 CPU와 GPU에 지금보다 더 나은 '전성비'가 본격 요구되기 시작했다.

 

CPU와 GPU가 PC의 다른 부품에 비해 유난히 소비전력이 높은 이유는 처음부터 전력 효율보다는 성능향상을 우선해서 개발된 영향이 크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효율’보다는 ‘성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속도로 발달한 하드웨어로 인한 ‘과잉 성능’ 문제와 사회적,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에너지 절약 추세, 모바일을 중심으로 바뀐 IT시장의 흐름 등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지면서 성능만 우선하던 CPU와 GPU도 본격적인 ‘다이어트’, 즉 소비전력 절감을 통한 ‘전성비 향상’에 나서기 시작했다.

 

 

모바일 시장에서 요구하는 차세대 CPU의 ‘전력 효율’

 

사실 CPU 분야는 일찍부터 소비전력 대비 성능, 즉 ‘전성비’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대두되기 이전부터 들고 다니는 PC인 노트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외에서는 전원이 한정된 용량의 배터리뿐이기에 당연히 저전력 고효율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CPU의 개발에는 성능 향상이 우선되고, 소비전력 절감은 그 다음이었다. 먼저 새로운 아키텍처를 적용한 데스크톱용 고성능 CPU가 먼저 나오고, 성능이나 스펙을 조금 낮추거나 제조 공정을 개선해 소비전력을 줄인 모바일 CPU가 나오는게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혜성처럼 등장해 IT업계의 주도권을 휘어잡은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그러한 전략을 다시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인텔과 AMD가 성능 향상을 우선하는 동안 ARM을 중심으로 하는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는 성능보다 전력 효율을 우선하면서 스마트폰과 태블릿용 프로세서 시장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인텔과 AMD도 뒤늦게나마 저전력 고효율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에 다시금 뛰어들었지만, 이미 최적화될 대로 최적화된 ARM 기반 AP의 ‘전성비’를 단시간에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인텔의 5세대 기반 '코어 M'프로세서의 향상된 기능. 소비전력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것에서 차세대 CPU의 개발 방향을 미리 가늠할 수 있다.(자료=인텔)

 

물론 작동 방식과 구조가 전혀 다른 CPU와 AP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수 년에 걸쳐 인텔과 AMD가 꾸준히 ‘저전력 프로세서’를 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제로 채택한 태블릿은 극히 드물다.

 

이는 그간의 인텔과 AMD의 저전력 프로세서들이 ‘기준 미달’이었음을 반증한다. 스마트폰의 경우는 아예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인텔의 경우 2013년 말 선보인 ‘베이트레일’ 기반 아톰 프로세서와 이를 채택한 윈도 태블릿에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모습을 보여줬다. 베이트레일에 이르러서야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한 태블릿이 기존 ARM기반 AP를 사용한 태블릿에 근접한 효율을 보여주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현재 인텔의 경우 현재 4세대인 ‘하스웰’의 후속작인 5세대 ‘브로드웰’의 등장이 예고되어 있다. 아직 그 실체가 정확히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성능 향상보다는 ‘효율’향상에 더욱 주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인텔에 따르면 5세대 기반의 노트북이나 태블릿용 ‘코어 M’ 프로세서는 기존 대비 성능은 약간 향상되면서 소비전력은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히 일반 PC용 브로드웰 역시 성능향상보다는 전력 효율 개선에 더욱 비중을 둘 것이 예상된다.

 

 

‘성능 일변도’에서 ‘전성비’까지 챙기게 된 차세대 GPU

 

CPU와 달리 GPU 시장은 오로지 ‘성능 향상’ 일직선을 달려왔다. 이는 내장그래픽의 등장으로 그래픽카드가 ‘선택 옵션’이 된데다, 게임과 같이 그래픽카드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성능만 따지지 효율은 뒷전으로 미루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즉 ‘필요한 사람만 찾는’ 상황이 되면서 그래픽카드용 GPU를 개발하는 AMD와 엔비디아는 신제품 개발에서 아낌없이 성능 향상에만 ‘올인’할 수 있었다. 훨씬 한정된 시장에서 상대방을 넘어서려면 우수한 성능과 적절한 가격, 즉 ‘가성비’만 높이는 것만 필요했으며, 소비전력 개선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엔비디아가 선보인 ‘지포스 900시리즈’는 제조사와 상관없이 향후 등장할 차세대 GPU들의 향방이 크게 달라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 엔비디아가 발표한 지포스 900 시리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성능'보다 엄청나게 향상된 '전성비'다. (사진=엔비디아)

 

지난 9월 출시된 엔비디아의 2세대 ‘맥스웰(Maxwell)’ 아키텍처기반 지포스 GTX 970과 GTX 980은 실체가 드러남과 동시에 업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기존 세대의 가장 최상급 GPU에 비해 더 나은 성능을 제공하면서도 소비전력은 오히려 거의 절반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고성능=높은 소비전력’이라는 그래픽카드 업계의 고정관념을 통렬히 깨부수는 일대 사건이나 다름없었다.

 

엔비디아 맥스웰 아키텍처의 뛰어난 전성비는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노렸다고 보긴 어렵다. 전력을 많이 소비하지만 실제 활용 빈도는 낮은 고급 연산 처리 기능을 줄이거나 빼고, 주로 쓰는 부분은 더욱 강화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소비전력까지 덩달아 줄어들게 됐을 뿐이다. 즉 평소처럼 가성비를 높이는 과정에서 전성비까지 덩달아 높아진게 시너지효과를 낸 것이다.

 

게다가 예전부터 엔비디아의 GPU는 성능은 우수한 반면 평균적인 소비전력 또한 높은 것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 엔비디아 제품답지 않게 ‘전성비’까지 뛰어난 점은 자연스레 지포스 900시리즈의 핵심 마케팅요소로 자리매김했고, 업계와 소비자들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는 자연스레 후속으로 나오는 제품들에게도 영항을 끼칠 것이다. 이후 나올 GPU는 이제 ‘가성비’뿐만 아니라 ‘전성비’까지 지포스 900시리즈와 같거나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하는 일종의 ‘숙제’를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PC 시장도 기존의 데스크톱이 아니라 노트북이 중심이 된지 오래다. 특히 데스크톱 못지않은 고성능 게임 환경을 제공하는 ‘게이밍 노트북’ 시장이 갈수록 커지면서 GPU를 개발하는 AMD와 엔비디아의 ‘전성비’에 대한 고민과 연구 개발이 더욱 요구되는 상황이다.

 

먹는 것(소비전력)을 줄여서 군살을 빼고 신체 기능(성능)을 높인다는 것에서 최신 CPU와 GPU가 전성비를 높이려는 일련의 과정은 사람의 ‘다이어트’와 닮은 점이 많다.

 

사람의 적절한 다이어트가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것처럼 CPU와 GPU의 전성비 향상도 인류 사회와 산업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CPU와 GPU 기술은 개인용 PC뿐만이 아니라 IT 기반 전체를 지탱하는 근간 기술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CPU와 GPU는 기업 환경에서 쓰이는 다양한 시스템에도 들어간다. 이들의 전성비가 좋아지면 기업 입장에서는 유지비가 줄어들어 이익은 늘게 되며, 범 세계적으로 보면 에너지를 절약하고 자원을 아끼는 결과가 된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CPU와 GPU의 ‘다이어트’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최용석 기자 rpc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