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조선 박상훈] 글로벌 IT 기업들이 초대형 분사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 불리기에 나서던 최근 몇 년 간의 흐름과 배치되는 것으로, '선택과 집중'을 위한 구조조정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시만텍은 사이버 보안 제품과 스토리지 관리 소프트웨어(SW) 두 분야로 나눠 내년까지 기업을 분리한 후 새로 설립하는 두 회사를 상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5년 135억 달러에 스토리지 관리 SW 업체인 베리타스를 인수했던 시만텍은 보안과 스토리지 분야에서 시너지를 낸다는 구상이었지만, 결국 시장 변화와 고객의 요구사항에 집중한다는 명분으로 다시 기업을 쪼개기로 했다.

 

이에 앞서 이달 초에는 HP가 PC와 프린터 등 일반소비자 제품 부문과 서버, 네트워크, 서비스 등이 포함된 기업서비스 부문으로 회사를 분할한다고 밝혔다. HP는 2002년 250억 달러에 컴팩을 인수한 후 PC 사업을 확장해 이 분야에서 1~2위를 유지해왔지만, 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 시장이 급성장하고 PC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분사를 결정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 올해 발표된 주요 IT 업체 분사 현황 (표=정보통신산업진흥원)

 

이밖에 지난 2월에 파나소닉이 가전 등 4개 회사로 분사한다고 밝힌 것을 비롯해 7월엔 소니의 TV 사업부문 분사, 9월엔 이베이의 페이팔 분사, 필립스의 조명사업 분사 등 올해만 6건의 초대형 기업 분사 발표가 있었다. GE가 캐피탈 부분의 분사를 추진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와 당분간 IT 업계의 분사 흐름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와 같은 기업 쪼개기 흐름은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로 시장을 장악하려던 주요 IT 기업의 성장전략이 사실상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시만텍의 베리타스 인수, HP의 컴팩 인수에는 우리 돈으로 15~27조 원이 소요됐지만, 두 조직의 시너지를 창출하고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이들 업체의 분사를 구조조정 측면에서 해석하는 전문가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 경제상황을 고려하면 공격적인 인수합병에서 분사를 통한 '기업 쪼개기’ 움직임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현재까지 분사를 발표한 업체들은 빠르게 성장 중인 사업 부문과 안정적으로 현금을 창출하는 전통적인 사업 부문을 분리해 각자 생존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발굴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핵심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글로벌 기업의 사업구조 전환, 분사 등을 참고해 국내 기업도 다양한 혁신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nanugi@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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