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를 구성하는 주요 부품들은 어느덧 가격대비 성능보다 소비전력 대비 성능을 추구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즉 ‘전성비’가 새로운 가치 평가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성비’가 새롭게 떠오르게 된 배경과 업계의 움직임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IT조선 최용석] 최근 PC 하드웨어의 발전 방향이 ‘가성비’에서 ‘전성비’ 중심으로 바뀌면서 고 있다. 무조건 고성능을 추구하기보다는 지금의 성능을 최대한 유지한 채로 소비전력만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는 노트북과 같은 모바일 기기의 사용시간을 크게 늘리고,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절약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PC의 핵심부품이라 할 수 있는 CPU와 그래픽카드(GPU)를 보면 그러한 움직임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CPU와 GPU가 전성비 향상에 눈을 돌리기 한참 전부터 소비전력 절감에 적극적인 분야가 있었다. 운영체제가 설치되어 PC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고, 각종 문서 자료와 사진, 영상같은 개인 데이터를 저장하는 HDD(하드디스크 드라이브)와 SSD(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 즉 ‘스토리지(Storage)’ 분야다.

 

 

시장에서 먼저 ‘저전력’을 요구한 HDD 분야

 

시대적인 흐름에 맞춰 전력 효율을 추구하게 된 CPU와 GPU와 달리 대표적인 2차 저장장치인 HDD는 시장에서 먼저 전력 효율 향상을 요구한 경우다. 특히 개인용 PC 시장이 아닌 기업 중심의 엔터프라이즈 시장에서 더욱 강하게 요구해온 사항이다.

 

이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IT산업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생성 및 저장되는 각종 데이터도 덩달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이를 수용하기 위한 스토리지 시스템의 수요 역시 급증하면서 발생하게 된 현상이다.

 

보통 개인용 PC에 들어가는 스토리지 장치의 개수는 최소 1대에서 3~4대 정도에 불과하다. 전문적으로 사진 또는 영상 작업을 하지 않는 이상 10대를 넘는 경우가 드문 편이다.

 

▲ 구글의 데이터 센터 내부. 대기업의 데이터센터 정도되면 사용되는 HDD의 수는 엄청나다.(사진=구글 공식 블로그 유튜브 영상)

 

그러나 기업 시장은 다르다. 기업용 스토리지 솔루션에는 하나의 시스템에 최소 8대에서 수십 대의 스토리지가 동시에 들어간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다루는 데이터의 용량이 늘어날수록 스토리지 솔루션을 수십~수백대 단위로 운영하게 되고, 여기에 들어가는 스토리지의 수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때문에 1:1로 비교하면 CPU나 GPU가 같은 시간 더 많은 전력을 소비하지만, 1대 다수가 되면서 스토리지가 소비하는 전력은 그야말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으로 늘어난다. 전통적인 저장장치인 HDD는 PC 부품 중에서 전력 소비량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부품이다.

 

스토리지의 소비전력이 늘어날수록 기업 입장에서는 데이터센터 운영비가 늘어나게 된다. 기업의 매출이 아무리 늘어도 운영유지 비용이 그만큼 늘어나면 실적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에너지 소비만 급증하는 꼴이다.

 

자연스레 기업 시장에서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 스토리지 장치를 요구하게 되고, 제조사는 ‘최대의 고객’들을 위해 이에 부응하는 제품을 만들게 됐다. 즉 스토리지 장치의 개발 역사는 에너지 효율 향상의 역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HDD의 전력효율 향상을 위한 제조사의 다양한 노력

 

현재 HDD는 단일 드라이브 기준으로 6TB(테라바이트) 용량까지 저장할 수 있는 제품이 상용화된 상태다. 초창기 HDD가 거대한 크기에 고작 수 MB(메가바이트)의 용량만 제공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용량 증가인 셈이다.

 

HDD의 개발 역사를 살펴보면 ‘용량’의 증가는 언제나 가장 중요한 핵심 이슈다. 이는 단순히 저장 가능 데이터의 양이 늘어나는데 그치지 않는다. 용량의 증가는 가장 효율적인 전력효율 향상 방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500GB HDD 2대를 쓰던 것을 1TB HDD 1대로 교체한 경우, 총 저장 용량은 같지만 HDD의 수가 절반으로 줄면서 이론적인 소비전력 역시 절반으로 줄어든다. 아무리 HDD 자체의 성능을 개선한다 하더라도 이보다 효율적인 소비전력 절감은 불가능하다. 당대 최대 용량의 HDD의 등장이 업계의 이슈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 HDD의 용량 증가는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 절감 수단이다.(사진=다나와)

 

HDD의 용량 증가 방법은 크게 2가지로 좁혀진다. 단순하지만 가장 확실한 디스크(플래터)의 수를 늘리는 방법과, 기록 밀도를 높여 단일 디스크에 더 많은 용량을 저장하는 것이다. HDD 업계에서는 이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한다. 우선 전자의 방법을 사용하다가 기술이 확보되면 후자의 방법으로 선회하는 식이며 이는 매번 반복되고 있다.

 

기술의 한계로 용량 증대에 한계에 도달하면 다른 방법으로 소비전력 절감을 모색한다. 대표적인 방법이 HDD 내부의 디스크(플래터)를 회전시키는 스핀들 모터의 회전속도를 줄이는 것이다. HDD에서 소비전력이 가장 높은 부품이 스핀들 모터임을 감안하면 가장 효과적인 소비전력 절감 방법인 셈이다.

 

모델명에 ‘그린(green)’이나 ‘에코(eco)’같은 이름을 붙은 HDD 제품들이 그러한 결과의 산물이다. 현재 일반적인 HDD의 스핀들 모터 회전속도는 7200rpm(분당회전수)로 거의 고정된 상태이며, 일부 고성능 시스템을 위한 제품은 10Krpm(1만rpm)에 이른다. 하지만 ‘그린’ 제품들은 보통 5400rpm 내외로 한 단계 낮은 속도로 작동한다.

 

스핀들 모터의 회전속도, 즉 디스크의 회전속도는 HDD의 성능과 비례한다. 하지만 회전속도를 줄여 약간의 성능을 희생한 대신 소비전력은 줄일 수 있다. 떨어지는 성능은 RAID(redundant array of inexpensive disk)와 같은 병렬화 기술로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기에 큰 단점이 되지는 못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기술과 수단이 HDD의 용량 및 성능 향상과 소비전력 절감을 위해 도입된다. 사실 이런 노력으로 HDD 한 대당 줄일 수 있는 소비전력은 고작 mW(밀리와트, 1/100와트) 단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더 소비전력을 줄이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대로 기업시장에서 사용되는 HDD의 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 그대로 조금씩 줄여서 얻게 되는 실질적인 절감 전력은 어마어마한 양이다.

 

 

SSD의 등장, 또 다른 에너지 절감 방향의 모색

 

고속으로 회전하든 자기(磁氣) 디스크(플래터)가 아닌 반도체 소자인 플래시 메모리를 저장장치로 삼는 SSD(Solid State Drive)의 등장은 스토리지 분야의 에너지 절감 노력에 새로운 국면을 가져왔다.

 

일단 SSD는 물리적인 구동부가 없이 순수히 전기 신호만으로 데이터를 쓰고 읽으며 검색하기 때문에 HDD에 비해 월등하게 빠른 검색속도와 데이터 전송속도를 자랑한다.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전력을 사용하는 ‘스핀들 모터’가 없어 평균 소비 소비전력이 HDD에 비해 낮다.

 

하지만 ‘용량’은 여전히 걸림돌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고용량’은 그 자체가 가장 효율적인 전력 절감 수단이다. 1TB 용량 구성을 위해 1TB HDD를 한 대 쓰는 경우와, 256GB SSD를 4대 쓰는 경우 후자의 소비 전력이 훨씬 높다. ‘성능’을 제외하고는 SSD의 장점을 살리기 어렵다.

 

실질적으로는 수 십년 동안 검증된 HDD의 신뢰성을 아직 따라잡지 못한 것이 SSD가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여전히 용량에 비해 비싼 가격도 걸림돌이다.

 

▲ 소비전력이 적은 SSD의 등장은 스토리지 분야의 전력 절감에 새로운 변수를 제공한다.

 

그래서 SSD를 중심으로 소비전력 절감은 다른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압도적인 성능으로 작업 시간을 단축시킴으로써 같은 시간 평균 소비전력을 줄이는 방법이다. 또 중간에 임시로 데이터가 머무르는 버퍼(buffer)나 캐시(cache)로 사용해 HDD의 사용 빈도를 줄여서 궁극적으로 시스템 퍼포먼스는 높이고 소비전력은 줄이는 방법도 있다.

 

실제로 일반 PC에서 SSD와 HDD를 같이 사용하는 경우, 주로 운영체제가 설치된 SSD만 쓰고 있을 때 HDD는 대기모드에 있다가 필요할 때만 돌기 시작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SSD는 이제 상용화된지 수 년 밖에 되지 않은, 추후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큰 저장장치다. HDD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할지언정, 기존 HDD의 단점을 보완하는 형태로 사용하면 성능 향상뿐만 아니라 소비전력 절감 모두에서 상당히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PC 시장에서 보면 스토리지의 전력효율 향상은 기업 시장에서의 요구로 얻게 된 혜택을 덤으로 얻게 된 셈이다. 누가 지적하지 않아도 전력 효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스토리지 분야의 에너지 절감 노력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저장장치’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스토리지 분야의 소비전력 절감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이다.

 

최용석 기자 rpc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