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계에서 전통적인 자동차 세그먼트의 경계가 사라진 지 오래다. 기존의 틀에 박힌 자동차 대신 두 가지 이상의 세그먼트를 결합한 ‘크로스오버(Crossover)’ 자동차가 주목을 받고 있다. 크로스오버 자동차를 특정 세그먼트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지만, 현재 쿠페와 세단이 결합한 ‘4도어 쿠페’, SUV에 쿠페 스타일이 더해진 ‘쿠페형 SUV’, 왜건·SUV의 장점을 섞은 ‘크로스컨트리 왜건’, 왜건·해치백·쿠페의 스타일이 뒤섞인 ‘슈팅브레이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새로운 자동차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는 크로스오버 자동차의 특징과 종류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주>

 

[IT조선 김준혁] 자동차 세그먼트 중 실용성이 가장 뛰어난 왜건에 SUV의 주행 능력을 더한 자동차를 ‘크로스컨트리(CrossCountry)’라 한다. ‘국토를 횡단한다’는 뜻을 가진 영문명에서 알 수 있듯이 크로스컨트리는 온로드 지향적인 기존 왜건과 달리 SUV처럼 거친 노면 또한 질주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 크로스오버 자동차다.


최초의 크로스컨트리 모델은 볼보 V70 XC

다른 크로스오버 자동차들이 그러하듯 크로스컨트리라는 명칭은 누군가에 의해 정확하게 명시된 것이 아닌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의해 만들어진 이름이다. 때문에 크로스컨트리는 ‘왜건형 SUV’, 또는 단순히 ‘CUV(Crossover Utility Vehicle)’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기도 하며, 자동차 브랜드와 시장에 따라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

이름이 불분명 한 것만큼이나 크로스컨트리 세그먼트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고, 크로스컨트리 등장한 시기 또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99년 등장한 최초의 크로스컨트리 모델 볼보 V70 XC(사진=볼보자동차)
1999년 등장한 최초의 크로스컨트리 모델 볼보 V70 XC(사진=볼보자동차)

 

 

아마도 자동차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크로스컨트리 모델은 볼보가 지난 1997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선보인 ‘V70 XC’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볼보가 V70 XC를 출시하게 된 배경에는 안전한 자동차를 잘 만드는 것만큼이나 전통적으로 완성도 높은 왜건을 만들어왔던 역사적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특히 1980년대 등장한 왜건 모델 '740 왜건'은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시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며 볼보 왜건의 완성도와 인기를 전세계적으로 증명해줬다.

 

V70 XC는 2세대부터는 XC70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됐다.(사진=볼보자동차)
V70 XC는 2세대부터는 XC70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됐다.(사진=볼보자동차)

 

V70 XC는 이런 볼보의 왜건 만들기 노하우가 반영된 왜건 모델 'V70'을 기본으로 개발됐다. 안정성은 물론 넓은 실내 공간과 적재 공간을 자랑했던 V70에서 지상고를 높이고 4륜구동 시스템을 결합한 V70 XC는 커다란 SUV가 부담스러웠던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며 유럽뿐만 아니라 북미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이후 V70 XC는 2세대 모델부터는 V70의 파생형 모델에서 벗어나 'XC70'이라는 독자적인 라인업으로 판매가 됐다. XC70은 현재 국내 시장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실용성과 편안함을 갖춘 것이 크로스컨트리의 매력

볼보 V70 XC와 같은 크로스컨트리가 시장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실용성을 가장 큰 장점으로 내세우는 왜건의 특징을 유지한 채 어떤 길도 갈 수 있는 SUV의 장점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데 있다. 국내에서는 왜건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기 때문에 왜건의 실용성을 알기가 힘들지만, 가구나 가전제품을 직접 자신의 자동차로 운반하거나 한번에 많은 양의 장을 보는 일이 많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커다란 적재 공간을 갖고 있는 왜건의 인기가 상상을 초월한다.

 

크로스컨트리의 장점은 왜건과 동일한 넓은 적재 공간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사진=볼보자동차)
크로스컨트리의 장점은 왜건과 동일한 넓은 적재 공간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사진=볼보자동차)

 

물론 크로스컨트리가 장점으로 내세우는 실용성이라는 기준만을 놓고 봤을 때는 더 큰 차체를 갖고 있는 SUV가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서는 SUV 대신 크로스컨트리를 선택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 소비자들이 크로스컨트리를 선택하는 이유로는 SUV보다 편안한 승차감을 갖고 있으며, 차체 크기가 작아 운전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가격적인 부분으로 접근했을 때도 비슷한 적재공간을 갖고 있는 SUV보다 크로스컨트리가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이처럼 SUV보다 승차감이 좋고, 운전하기도 편하면서 가격까지 저렴한 크로스컨트리는 SUV 고유의 장점인 오프로드 주행 능력까지 갖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으며, 200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크로스컨트리를 강화시키고 있는 볼보

최초의 크로스컨트리 모델이라 할 수 있는 볼보 V70 XC의 후속 모델인 XC70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왜건의 색을 점차 지우고, SUV적인 특징을 부각시켰다. 특히 XC70은 정통 SUV 못지않은 강력한 오프로드 주행 성능을 자랑하며 대표적인 크로스컨트리 모델로 자리매김 했고, 볼보의 SUV 라인업인 ‘XC’ 시리즈가 탄생할 수 있었던 초석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V40이 갖고 있는 세련된 디자인에 SUV 특징을 조합시킨 V40 크로스컨트리(사진=볼보자동차)
V40이 갖고 있는 세련된 디자인에 SUV 특징을 조합시킨 V40 크로스컨트리(사진=볼보자동차)

 

한동안 XC70 하나만으로 크로스컨트리의 명맥을 유지해온 볼보는 2013년 약 15년 만에 새로운 크로스컨트리 모델인 'V40 크로스컨트리'를 선보였다. V40 크로스컨트리는 V70 XC가 왜건을 베이스로 개발된 것과 달리 해치백 모델 'V40'의 크로스컨트리 버전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V40 크로스컨트리가 해치백에서 파생된 모델인 만큼 XC70 수준의 넓은 적재공간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매력적인 디자인과 주행성능, 콤팩트 크로스오버 SUV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 덕분에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볼보의 최신 크로스컨트리, V60 크로스컨트리는 강력한 오프로드 성능을 자랑한다.(사진=볼보자동차)
볼보의 최신 크로스컨트리, V60 크로스컨트리는 강력한 오프로드 성능을 자랑한다.(사진=볼보자동차)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볼보는 V70 XC이후 처음으로 선보인 왜건 기반의 크로스컨트리 모델 'V60 크로스컨트리'를 지난해 LA오토쇼에서 공개했다. 스타일리시한 신세대 볼보 디자인에 왜건 특유의 실용성을 갖춘 V60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V60 크로스컨트리는 아직 정식 판매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XC70 또는 V40 크로스컨트리 만큼이나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프리머엄 크로스컨트리 아우디 올로드콰트로

왜건이 미국과 유럽 자동차 시장에서 고른 인기를 얻으면서 이들 국가에 소재를 두고 있는 여러 자동차 브랜드들이 다양한 왜건을 만들고 있는 것과 달리 크로스컨트리는 현재 유럽 자동차 브랜드에 의해서만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크로스컨트리의 종류는 다른 크로스오버 자동차인 4도어 쿠페나 쿠페형 SUV만큼 다양하지는 못하다.

 

2000년에 등장한 아우디 올로드 콰트로는 첨단 기능을 탑재하고 있었다.(사진=아우디)
2000년에 등장한 아우디 올로드 콰트로는 첨단 기능을 탑재하고 있었다.(사진=아우디)

 

이런 상황 속에서 꾸준히 크로스컨트리를 출시하고 있는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로는 아우디가 있다. 아우디 최초의 크로스컨트리 모델은 2000년에 등장한 왜건 모델 'A6 아반트(Avant)'를 기반으로 한 ‘올로드 콰트로(Allraod Quattro)’가 있다. 올로드 콰트로는 볼보 V70 XC이 먼저 연 크로스컨트리 시장에 한발 늦게 진입했지만, 아우디 특유의 유연한 디자인과 아우디가 자랑하는 4륜구동 시스템인 콰트로의 탑재, 여기에 지상고를 자유롭게 조절하는 첨단 에어 서스펜션을 적용하며 후발주자의 한계를 지워냈다.

 

아우디 올로드 콰트로는 현재 A6 올로드 콰트로 발전한 상태다.(사진=아우디)
아우디 올로드 콰트로는 현재 A6 올로드 콰트로 발전한 상태다.(사진=아우디)

 

올로드 콰트로의 베이스 모델인 A6 아반트가 중형 왜건에 해당하는 만큼 넉넉한 적재 공간을 갖는 것은 당연했고, 당시 A6에 적용됐던 고품질 실내와 편의기능이 고루 탑재되며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이후 올로드 콰트로는 2000년대 중반 국내 시장에 수입되기도 했지만, 수입차 시장의 규모가 크지 않았던 당시 국내 상황과 왜건에 대한 편견이 맞물리면서 성공적인 결과를 남기지 못했다.

 

A4 아반트를 기초로 만들어진 A4 올로드 콰트로(사진=아우디)
A4 아반트를 기초로 만들어진 A4 올로드 콰트로(사진=아우디)

 

올로트 콰트로는 2006년 등장한 2세대부터는 ‘A6 올로드 콰트로’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으며, 지난해 3세대 모델로까지 진화했다. 여기에 2010년에는 또 다른 크로스컨트리 모델인 ‘A4 올로드 콰트로’를 선보이며 올로드 콰트로 라인업을 꾸준히 성장시키고 있다.


크로스 폴로에서 시작해 파사트 올트랙으로 발전한 폭스바겐

아우디의 모기업인 폭스바겐은 2000년대 중반 '크로스 폴로(Cross Polo)'와 같은 해치백의 크로스컨트리 버전을 선보였으며, 2011년에는 '크로스 골프(Cross Golf)'와 '크로스 폴로', '크로스 투란(Cross Touran)' 등의 모델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들 모델은 왜건 기반의 크로스컨트리라기 보다는 MPV 성격이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파사트 바리안트의 넓은 공간과 4모션이 더해진 파사트 올트랙(사진=폭스바겐)
파사트 바리안트의 넓은 공간과 4모션이 더해진 파사트 올트랙(사진=폭스바겐)

 

이후 본격적인 왜건 형태의 크로스컨트리 모델은 2010년 등장한 7세대 '파사트 바리안트(Passat Variant)'를 베이스로한 '파사트 올트랙(Passat Alltrack)'을 들 수 있다. 파사트 올트랙의 특징은 앞서 등장한 볼보 V70 XC나 아우디 올로드 콰트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파사트의 왜건 버전인 파사트 바리안트의 디자인은 그대로 유지한 채 지상고를 높이고, 앞/뒤 범퍼와 사이드 스커트에 무광 블랙 플라스틱 패널을 더해 SUV의 이미지를 키운 것이 특징이다. 파사트 올트랙 이후 폭스바겐은 2014년 파리모터쇼에 7세대 '골프 바리안트'의 크로스컨트리 버전 '골프 올트랙'까지 공개하며 향후 크로스컨트리 세그먼트가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줬다.

 

스코다 옥타비아 스카우트는 파사트 올트랙과 플랫폼을 공유하는 형제 모델이다.(사진=스코다)
스코다 옥타비아 스카우트는 파사트 올트랙과 플랫폼을 공유하는 형제 모델이다.(사진=스코다)

 

이밖에 현재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크로스컨트리 모델로는 아우디, 폭스바겐과 함께 폭스바겐 그룹에 속해 있는 스코다의 '옥타비아 스카우트(Octavia Scout)'가 있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자동차 브랜드인 스코다는 체코에 소재한 자동차 브랜드로, 모든 모델이 폭스바겐 그룹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다. 덕분에 옥타비아 스카우트 또한 폭스바겐 파사트, 골프 등에 적용된 MQB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으며, 직접적으로는 파사트 올트랙의 형제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독특한 컨셉을 갖고 있는 푸조와 스바루의 크로스컨트리

폭스바겐 그룹 외에는 푸조가 2011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508 SW'의 크로스컨트리 버전인 '508 RXH'을 선보인 바 있다. 푸조 508 RXH는 먼저 시장에 출시된 타 브랜드의 크로스컨트리와 한 가지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바로 2.0리터 디젤 엔진과 전기모터를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버전이라는 점인데, 디젤 엔진으로는 전륜을 구동시키고 전기모터는 후륜을 구동시켜 4륜구동 시스템을 완성시키는 독특한 컨셉을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강력한 주행 성능을 발휘하면서도 리터당 30km(유럽기준)가 넘는 고연비를 갖고 있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사용해 강력한 주행성능과 고연비를 달성한 푸조 508RXH(사진=푸조)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사용해 강력한 주행성능과 고연비를 달성한 푸조 508RXH(사진=푸조)

 

마지막으로 비유럽 브랜드로는 일본 스바루가 만든 '아웃백(Outback)'이 있다. 사실 스바루 아웃백은 최초의 크로스컨트리라는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모델이다. 그 이유는 스바루 아웃백의 역사가 1994년부터 시작됐기 때문인데, 안타깝게도 초대 아웃백은 세단인 2세대 '레거시(Legacy)'를 기반으로 한 일반적인 왜건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1998년 등장한 3세대 아웃백까지 이어지다가 2003년 등장한 4세대 아웃백부터 비로소 크로스컨트리 모델이 추가됐다. 이후 2009년 출시된 아웃백부터는 크로스컨트리 모델로만 판매가 됐으며, 이 때 모델은 한동안 국내 시장에서도 판매된 바 있다.

 

긴 역사를 가진 스바루 아웃백은 안타깝게도 최초의 크로스컨트리 타이틀을 놓쳤다.(사진=스바루)
긴 역사를 가진 스바루 아웃백은 안타깝게도 최초의 크로스컨트리 타이틀을 놓쳤다.(사진=스바루)

 

스바루 아웃백은 유럽산 크로스컨트리와 달리 무게 중심이 매우 낮은 수평대향 엔진과 좌우대칭형 시메트리컬 AWD 시스템을 장착해 뛰어난 오프로드 주행 성능을 자랑한다. 하지만, 썩 매력적이지 못한 디자인과 낮은 연료효율성 등으로 인해 글로벌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는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스바루 아웃백은 지난해 6세대까지 진화해 스바루 크로스컨트리 모델의 명맥을 잇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크로스컨트리의 성장 가능성은 미지수

크로스컨트리 세그먼트는 2000년대 초반 몇몇 모델에 의해 시장이 형성된 뒤 한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최근 들어 크로스오버 자동차 시장의 성장으로 재조명 받고 있다. 크로스컨트리 세그먼트가 다시금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초창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운전하기 편하면서도 넓은 적재 공간과 SUV에 버금가는 주행 성능을 갖고 있는 것이 크로스컨트리의 인기 비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크로스컨트리의 이런 특징이 국내에서도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자동차 소비자들의 왜건에 대한 무관심과 편견을 들 수 있다. ‘왜건은 화물차’라는 국내 소비자들의 인식이 없어지지 않는 한 아무리 멋진 디자인과 실용성, 강력한 주행 성능을 갖고 있는 크로스컨트리가 등장한다 하더라도 이들 모델을 국내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김준혁 기자 innova33@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