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 보험사 등 국내 금융회사들이 핀테크 관련 기업을 인수하는 길이 열릴 것으로 예상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핀테크 산업은 각 국가의 경제 성장률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속에서도 30% 이상 고성장을 지속하며 차기 블루오션 영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반해 그 동안 국내 금융회사들은 화려한 외면의 핀테크 산업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현실이다. 각종 금융규제로 인해 시너지를 낼 영역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파격적인 규제개혁 의지를 표명하면서 핀테크 산업을 바라보는 국내 금융회사들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편집자주>

 

지난 3일 개최된 범금융 대토론회 모습 (사진=금융위원회)
지난 3일 개최된 범금융 대토론회 모습 (사진=금융위원회)
 

[IT조선 김남규] 시중은행과 보험사를 포함한 국내 금융회사들이 핀테크 관련 기업을 인수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핀테크 시장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달 초 진행한 범금융 대토론회에서 건의한 내용 중  ‘금융회사의 핀테크 기업 보유 지분 확대’ 등을 포함한 건의안 47건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선 금융위는 오는 3월 중으로 핀테크 산업에 대한 금융회사의 투자를 가로막는 ‘금산분리법’을 검토한 후, 금융회사가 출자·지배할 수 있는 핀테크 기업 범위에 대한 유권해석을 확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산분리법이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상호간의 지분 소유를 금하는 것으로, 현재 금융지주회사는 금융업이나 보험업 혹은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회사의 주식을 제외한 국내 회사의 주식을 취득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금융위 측은 금융회사들이 금융업과 관련이 없는 IT기업에 대한 출자가 아니라면 지분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인데, 금융회사가 일정비율 이상의 다른 회사 주식을 보유하려고 할 때 금감위 승인을 얻으면 가능하다는 금산분리법 조항을 검토하고 나선 것이다.

또한, 금융위 측은 한 발 더 나아가 중장기적으로는 금융회사가 핀테크 기업에 출자한 후, 이를 사후 승인·보고하는 절차로 변경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사실상 핀테크 산업에 대한 금융회사의 적극적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강력한 규제를 두 걸음 뒤로 물린 셈이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과 보험사 등 국내 금융회사들의 핀테크 관련 기업 인수가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돼, 핀테크 산업에 대한 금융회사의 투자 활성화 기대가 커지고 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과 보험사 등 국내 금융회사들의 핀테크 관련 기업 인수가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돼, 핀테크 산업에 대한 금융회사의 투자 활성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서비스 고민 없는 핀테크 ‘사상누각’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대한 핀테크 업계의 입장은 기대반 우려반이다. 앞으로 시장이 더 나은 방향으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관련 산업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이를 기반으로 제공되는 새로운 서비스 창출이 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애플의 전자지갑 서비스 ‘애플페이’는 출시 두 달 만에 미국 신용카드 결제 시장의 90%를 흡수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성공했고 TD뱅크, 커머스뱅크 등 10여개 은행이 애플페이 서비스 지원에 나서는 등 시장 선점을 위해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2014년 9월 뉴욕증시에 250억 달러 규모로 기업공개를 실시한 알리바바의 알리페이 서비스 역시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일일 거래량 8000만 건을 돌파했다. 특히 알리바바는 모바일 결제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애플과 잠재적인 파트너십을 맺는 등 저변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같은 기간 국내 핀테크 시장은 정부 주도로 육성된 태생적 한계로 인해 ‘천송이 코드’로 대표되는 지급결제 시장에 국한된 모습을 보였다. 실제 국내 핀테크 산업은 시장 개척을 전면에 내세운 이동통신사와 신용카드사, 그리고 VAN사를 주축으로 결제 수수료 시장을 두고 벌이는 제로섬 경쟁 구도를 벗어나지 못했던 게 현실이다.

또한, 현재 금융감독원에 전자금융업자로 등록된 68개 기업 역시 네이버, 다음 카카오, LG U+, LG CNS, SK커뮤니케이션즈와 같은 대기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사실상 국내 금융회사의 투자가 이뤄진다 해도 원활한 자금흐름 생태계를 이끌어 낼 기업이 극히 제한적이다.

무엇보다 각 시중은행들이 ‘기술금융’ 꼼수 영업을 통해 보여준 사례처럼, 금융당국 주도로 진행한 규제완화에 얼마나 호응할 지 여부도 미지수다. 핀테크 기반의 다양한 서비스가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의 규제완화가 결국 소수 기업의 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다.

 

배수진 친 핀테크 육성, 선택 아닌 필수

금융규제 규제완화를 둘러싼 효율성 논란을 떠나 핀테크 산업 육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이 분명하다. 또한 ‘그림의 떡’에 불과했던 핀테크 산업에 대한 금융회사의 투자가 개방된다는 기대감만으로도 벌써부터 시장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아직 금융회사가 출자 가능한 핀테크 기업에 대한 범위가 명확히 확정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결과를 예단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정부, 금융회사, 금융소비자, 새로운 진입희망 기업들이 참여하는 논의의 장이 마련됐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업 혁신을 위한 금융규제 개혁은 모호한 개념에 근거한 성급한 주장보다는 조금 느리더라도 차분하고 치밀한 분석과 논의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금융규제 개혁을 논의할 때는 금융업 혁신을 주도하는 비즈니스 역시 금융업의 또 다른 형태라는 사실이 전재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남규 기자 ngk@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