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조선 유진상] 한국후지쯔(대표 박제일)가 업무상 배임과 밀어주기 등 불공정거래로 구설수에 올랐다. 한국후지쯔는 지난해 국내 HPC 제조사인 코코링크로부터 고소를 당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위반, 업무상 배임 등으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코코링크(대표 이동학)는 지난해 7월 한국후지쯔와 고등과학원을 대상으로 서울 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연구기관인 고등과학원에서 진행한 ‘클러스터 시스템 구축 입찰과 관련해 한국후지쯔가 영업활동에 개입해 특정 채널사 밀어주기, 독점규제법 위반, 배임 등의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후지쯔는 고등과학원과 함께 짜고 '코코링크'를 사업에서 부당하게 배제시켰다는 게 코코링크의 주장이다. 

코코링크는 서울대학교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로, 슈퍼컴퓨팅 관련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업체다. GPU를 연산가속기 또는 주된 연산장치로 사용하는 컴퓨팅 시스템을 개발하는 동시에 CPU로 구성되는 클러스터 시스템 공급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동학 코코링크 대표는 “GPU 기반의 컴퓨팅 시스템 개발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후지쯔, HP, 델 등에서 생산한 CPU기반의 클러스터 시스템 공급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코링크가 한국후지쯔와 고등과학원을 고소한 이유는 뭘까.

고등과학원이 '안나푸르나2', '백두' 클러스터 시스템 구축 사업 입찰 공고를 낸 내용.
고등과학원이 '안나푸르나2', '백두' 클러스터 시스템 구축 사업 입찰 공고를 낸 내용.
사건은 지난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과학원은 2013년과 2014년 두 번에 걸쳐 클러스터 시스템 구축을 위해 조달청 나라장터에 입찰 공고를 냈다. 2013년에는 대용량 메모리 및 고성능 네트워크 기반의 대규모 멀티코어 클러스터 시스템을 구축하고 고성능/저비용 병렬 리눅스 클러스터 구축을 통한 기초과학 연구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안나푸르나2 클러스터 시스템 구축 사업(10억원 규모)'을 진행했다.
 
2014년에는 단백질구조예측학술대회(CASP)를 대비한 고성능 클러스터 계산 자원을 확보하고 단백질구조예측 시뮬레이션을 위한 고성능 멀티코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백두 클러스터 시스템 확장 구축사업(3억원 규모)'을 진행했다. 

2013년 1차 클러스터 시스템 구축 사업은 코코링크가 후지쯔의 시스템을 제안해 수주했다. 이후 2014년 2차 클러스터 시스템 확장 구축 사업이 진행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코코링크 측에 따르면, 2014년 5월 진행된 백두 클러스터 확장 구축 사업에 2억 8900만원으로 입찰해 낙찰을 받았다. 낙찰 후 견적을 발행했던 한국후지쯔의 총판 ‘A’에게 해당 물품을 공급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A 채널은 한국후지쯔로부터 물품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이에 코코링크가 한국후지쯔 측에 확인을 요청하자, 다른 채널 ‘B’가 영업보호 대상으로 등록이 돼 있어 물품을 공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한국후지쯔는 영업보호 대상인 B로부터 물품을 받으라고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B는 코코링크에게 3억 6100만원에 물품을 구매해야만 ‘공급사 정품 공급증명원’과 ‘기술지원 확약서’를 발급해 줄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는 낙찰 견적가에 비해 7200만원이나 더 비싼 금액이었다. 이에 대해 이동학 코코링크 대표는 “이는 노골적으로 계약의 체결을 포기하라는 요구였다”고 토로했다.

코코링크는 한국후지쯔와 고등과학원이 서로 합의해 한국후지쯔는 코코링크를 고등과학원과의 거래에서 완전 배제하고, 고등과학원의 입찰 담당자는 한국후지쯔가 특혜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이동학 코코링크 대표는 “고등과학원이 그 동안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으로 물품을 구매해 오던 게 안나푸르나 사업의 진행으로 문제점을 드러나게 됐다”며 “이로 인해 담당자가 곤란을 겪으면서 코코링크를 배제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후지쯔 측은 “코코링크는 백두 사업을 진행하며 한국후지쯔와 채널사들로부터 견적을 받은 바 없다”며 “이번 사안은 검찰로부터 지난 연말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고 현재는 공정위 조사만 진행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코코링크 측은 한국후지쯔의 입장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은 관할 경찰이 독단적으로 내린 판단일 뿐 사건은 현재 북부지검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백두 사업과 관련해 이미 2013년 12월 채널사 A를 통해 견적을 받았음에도 한국후지쯔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동학 코코링크 대표는 “이러한 불법적인 관행은 비단 고등과학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컴퓨팅 업계 저변에 깔려 있는 문제”라며 “불법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없이는 중소기업의 생존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유진상 기자 jinsan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