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조선 박상훈] 우리나라 고용시장에서 여성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육아나 출산 등의 이유로 30대에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이후 40대에 다시 돌아오지만, 상대적으로 임시직이나 일용직 중심으로 복귀하기 때문이다. 특히 남성 대비 경제활동 참가율을 보면 학력이 높을수록 남성과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도 특징이다. 그렇다면 ICT 산업으로 범위를 좁혀보면 어떨까.

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펴낸 'ICT 산업 내에서 성별 임금 격차 분석' 자료를 보면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여기서 ICT 산업은 ICT 기기, ICT 서비스, 소프트웨어(SW)와 정보서비스업 등을 포함한다.

ICT 산업 내 학력별 성별 여성 비중 (2013년 기준, 그림=노동부)
ICT 산업 내 학력별 성별 여성 비중 (2013년 기준, 그림=노동부)
먼저 ICT 산업 내 여성 고용 비중을 보면 전반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기준 전산업의 여성 고용 비중이 42.3%인데 반해, SW 개발 및 공급업 23.1%, 통신서비스 25.4% 등 주요 ICT 산업 영역에서 모두 평균 이하였다. 임금 노동자 중 임시직 비중이 매우 높아 고용 안정성이 낮았다. 출판, 영상, 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을 기준으로 대졸 이상 학력 비중이 62.1%로 전 산업 평균 38.1%보다 월등히 높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ICT 분야에서의 남녀 임금 격차다. 모든 산업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더 임금이 높았지만, ICT 산업은 특히 그 격차가 심했다. 자료를 보면 비 ICT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은 남성 임금의 72% 수준을 받는데, ICT 산업에서는 여성의 임금이 남성의 65%밖에 안됐다.

단순직, 경력 단절, 그리고 유리 천장

그렇다면 이러한 임금 격차의 이유는 무엇일까. 보고서는 무엇보다 '단순직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여성 노동자가 제품 생산설비 등 주로 ICT 기기 사업에 종사하고 있고, 전문직 종사자가 적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경력단절이다. 임금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보면 ICT 산업 여성노동자의 임금 증가에 근속연수가 미치는 영향이 비 ICT 산업 대비 더 높았다. 즉 같은 임금을 받기까지 더 오랜 기간이 걸리고 경력이 한번 단절되면 임금 수준을 회복하기 더 어렵다는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사실상 '차별'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생산성과 경력, 교육수준 등으로 설명되지 않는 임금 격차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서는 국내 ICT 산업에서 이 부분이 상당히 큰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임금 수준을 10분위로 나눠 남녀 간 임금 차이를 분석해 보면 5분위에서 남녀 간 임금 차이가 가장 컸다. 그러나 5분위에서 생산성과 경력, 교육수준 등으로 설명되지 않는 임금 격차가 오히려 가장 낮았고 이후 소득이 올라갈수록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더 커졌다.

ICT 산업과 타 산업 간의 성별 임금 격차 비교 (그림=정보통신정책연구원)
ICT 산업과 타 산업 간의 성별 임금 격차 비교 (그림=정보통신정책연구원)
즉, 임금이 올라갈수록 남녀 간 임금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점점 희박해진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이를 사실상 '남녀차별'이라고 봤다. 우리나라 ICT 산업에서 여성 노동자에게 '유리 천장', 즉 기업이나 조직 내에서 더 진급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상한선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하는 것도 이러한 근거에서 출발한다.

보고서는 이런 분석 결과를 근거로 몇 가지 정책 제안을 내놨다. ICT 산업은 여성 전문직 종사자 비중이 타산업 대비 낮고, 빠른 기술 진화로 인해 경력단절 여성이 해당 분야로 다시 복귀하기가 어려우므로, 여성이 진출 가능한 직종을 발굴, 개발하고 경력 멘토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업 내 남녀고용 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강화할 것도 주문했다.

이경선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남녀를 불문하고 고급 인재가 부족한 분야에서 우수 인재의 유입이 저하되고 경력 단절, 노동시장 이탈을 유발하는 환경이 있다면 이는 막대한 국가적 손실"이라며 "기업 내 남녀 고용 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고 가사,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nanugi@chosunbiz.com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