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조선 김남규] 기술신용평가사인 TCB(TechCredit Bureau) 역량 부족과 은행 내부 조직화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술금융에 대한 양적 경쟁이 지속되면 과거 ‘햇살론’과 같은 부실화 현상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박기홍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국내 기술금융의 문제점과 대응방안’이란 주제의 보고서를 통해 현 시장 상황에 대해 밝히고, 시중은행들도 내부 혹은 외부 조직화를 통해 정책 대응과 수익성 관리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기술금융 시장 현황을 살펴보면 2015년 5월말 기준으로 기술보증기금, 한국기업데이타, 나이스평가정보, 이크레더블 4개사가 TCB로 지정됐고, 이를 매개로 은행 중심의 중소 지원금융이 추진 중이다.

 

그래프=은행연합회
그래프=은행연합회

 

 

기술금융은 제품 양산과 시장 안착 등 기술 사업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불확실한 환경에 직면해 실패 확률이 높다. 그만큼 고위험-고수익 구조를 띄기 마련이다. 문제는 TCB의 역량이 미흡해 시장 신뢰가 낮고, 인프라도 미미해 양적경쟁 만이 지속되고 있다.

우선, 은행권의 기술금융 수요 증가에 비해 TCB의 평가체제 미비와 전문 인력 부족 등으로 평가보고서 발급기간이 지연되고 있다. 실제 기술평가 신청 이후 TCB 보고서 발급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지난해 말 16.8일에서 올해 초에는 평균 45.7일로 길어지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게다가 과도한 평가업무량으로 인해 동일한 기술에 대해서도 각 평가 기관마다 상이한 등급이 나오고 있으며, 심지어 해당 회사 사업보고서를 단순히 복사하는 수준의 보고서 오류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출처=은행연합회
출처=은행연합회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평가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양적경쟁을 부추기는 정책이 병행됨에 따라 은행 부실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가 은행 혁신성 평가 결과에 기술금융 실적을 반영하고, 이를 근거로 하위 은행에게는 패널티를 부여키로 함에 따라 원치 않는 양적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부작용을 우려해 혁신성 평가 안의 TECH 평가에서 양적지표 비중을 축소하고, 기존 거래기업에 대한 신규대출 증액분만 기술금액에 포함시킬 방침이다. 또한 은행의 리스크가 없는 기보 보증가액은 실적에서 제외하는 등 순수 기술금융 실적을 반영하려는 논의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술금융에 대한 인프라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실적 증대는 결국 위험부담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평가 순위별 인센티브 차별화를 확대한다면 실적 경쟁부담으로 이어져 은행권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출처=은행연합회
출처=은행연합회

 

 

게다가 TCB 역량 강화에 대한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기술평가를 TCB에 의존하고 있지만, 향후 은행이 조직력을 갖추게 될 경우 평가 수요가 감소하게 될 우려가 커 TCB 스스로가 현 구조를 의도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려 한다는 시각에서다.

이외에도 현 기술금융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은행 뿐 아니라 캐피탈, 보험, 증권 등 다양한 금융회사들을 참여시켜 모험자본시장 안에서 다양한 금융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벤처금융과 기술금융의 차별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이를 통합 관리해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박 연구위원은 “인프라 환경이 미비한 초기 기술금융시장에서 은행 간 실적경쟁을 지속하는 것은 금융회사의 위험 및 수익성 관리와 배치된다”며 “경쟁력 없는 기업으로 자금유입이 확대될 경우 기업 생태계 교란의 문제점이 확대될 가능성 상존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은행 내·외부의 인프라 정비를 위한 정책지원을 확대해 수익성과 리스크 관리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정책자금을 통해 초기 시장의 민간 위험을 낮추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남규 기자 ngk@chosunbiz.com

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