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조선 차주경] 영화감독 태훈은 통역사 미정과 함께 일본 농촌 고조 시에 들른다. 이들은 영화를 찍기 위해 고조 시를 이곳저곳 탐방하며 주민들과 옛날 이야기를 나눈다. 고조 시는 예전에는 임업으로 부흥했지만, 젊은이들이 떠난 후 점차 쇠락해가고 있다.

태훈과 미정은 주민들의 화려했던 옛 기억를 듣고, 적막한 가운데에서도 여유있는 고조 시의 풍경을 눈과 마음에 새긴다. 잠자리에 든 태훈은 고조 시 주민의 첫사랑 꿈을 꾼다. 잠에서 깬 태훈의 눈 앞에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한편, 삶에 지쳐 일본 고조 시로 여행을 온 혜정. 그녀는 이 곳에서 감을 키우는 청년 유스케를 우연히 만난다. 유스케의 호의가 사뭇 부담스럽던 혜정이지만, 다음 날에도 그녀는 유스케와 고조 시를 거닌다. 서로의 꿈과 소소한 일상을 나누던 혜정과 유스케. 어느 사이엔가 해는 지고,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혜정에게 유스케는 마음을 고백한다.

그날 밤, 고조 시의 여름 밤 하늘에는 불꽃이 수놓아진다. 혜정과 유스케는 함께, 하지만 또 따로 볼꽃놀이를 올려다보며 감상에 빠진다.

한여름의 판타지아 (사진=배급사 인디스토리)
한여름의 판타지아 (사진=배급사 인디스토리)

공간을 공유하는 두 개의 시나리오가 만난 이 영화는 롱 테이크로 촬영돼 장면이 길게 이어진다. 이는 관객들이 극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해 주는 장치다. 이어지는 이들의 수더분한 대화를 듣다 보면, 마치 나 자신이 이들의 뒷자리에서 이들의 대화를 엿듣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이들의 감정 하나하나를 온전히 느낄 수 있고, 영화라는 특성에 힘입어 이들의 몸짓까지 훔쳐볼 수 있다. 그렇기에 유스케와 혜정의 망설임과 아쉬움은 더욱 농밀하게 느껴진다. 풋풋함과 설렘, 아련함과 공감은 이 영화를 이루는 정서다.

낮선 곳에서는 무엇이든 새롭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말은 띄엄띄엄 통하지만, 그럼에도 부담없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반응해주던 유스케에게 혜정이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각박한 삶을 떠나 여행차 도착한 고조 시의 여름. 혜정에게는 고조 시가 판타지아다.

조용한 도시의 일상 속에 다가온 혜정에게 유스케가 반하는 것도 그러하다. 불과 이틀 만에 사랑에 빠지는 데 이유나 조건따위 필요할 리 없다.

찌는 듯한 더위가 조금은 가신 한여름 밤, 화려한 불꽃과 매캐한 연기를 남기며 저물어가는 불꽃놀이. 그처럼 아름답고 그처럼 순식간에 사라져가는 게 애틋한 연애감정이다. 불꽃처럼 격렬하고 꽃처럼 아름답다. 미처 다 피어나지 못 할 만큼 미성숙하고 이내 사그라드는 게 연애감정이다.

내년 여름에도 이 곳에서, 발길 닿는 그 어느 곳에서든지 불꽃놀이처럼 판타지아는 펼쳐질 게다.

이 영화는 여름에 보기 딱 좋은, 맑은 느낌의 연애 드라마다.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게끔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상영관이 많지 않다는 게 아쉽게 느껴진다.

별점 : ★★★★ 8/10

차주경 기자 reinerr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