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미 레이건 행정부는 미국을 탄도미사일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스타워즈’로 불린 전략방어계획(SDI: Strategic Defense Initiative)에 착수했다. SDI는 상대와 똑같이 핵무기를 보유해 보복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공간에서 레이저나 입자빔 인위성과 같은 첨단 우주 장비를 배치해 소련의 미사일을 우주공간에서 격파한다는 계획이다.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러시아 및 중국 외에 북한, 이란, 시리아 등 새로운 위협이 계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은 사거리 2500km의 대포동 1호 미사일을 이미 실전 배치했고, 미국 알래스카 일부를 포함하는 사거리 6700km의 대포동 2호를 시험발사 했다. 또 미국본토 대부분을 사정권으로 하는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는 인공위성, X-밴드 레이더, 이지스함의 SPY 레이더 등으로 적의 미사일을 감지하고 지상요격 미사일, 이지스함의 미사일 방어체계, 항공기에 탑재한 고출력 레이저 등을 이용해 이를 제거한다.

적의 미사일이 발사된 후 빠른 시간 내에 이를 파악하고 대응해야만 성공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미국의 연구자들은 각 국가의 미사일에 관한 정보를 바탕으로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다양한 공격가능성에 대해 보다 빠르고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 시스템에는 지역적으로 분산된 레이더 및 인공위성 등의 감지장치, 컴퓨터 시스템, 데이터 베이스 등이 통합돼 활용된다. 자국 및 적국 미사일 제원을 바탕으로 그 궤도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여러 가지 불확실성도 고려되어야 하고, 사이버공격에 대한 방안도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되는 요격실험 등 물리적인 실험과 병행되는 것이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슈퍼컴을 활용함으로써 개발 기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컴퓨터로 보다 다양한 경우를 시험할 수 있어서 시스템의 성능개선에도 기여한다.

뿐만 아니라 슈퍼컴퓨터는 핵실험의 탐지에도 활용된다. 지난 2013년 2월 12일 북한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한미 당국은 이 지역에서 리히터 규모 4.9의 인공지진파를 감지했으며, 이를 분석해 핵실험을 확인하고 그 위력을 약 6~7키로 톤으로 추정했다.

이렇게 핵실험의 실시여부, 위치, 위력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핵실험금지조약(NTBT: Nuclear Test Ban Treaty)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초기에는 핵실험 여부 및 규모를 파악하는 데 초점을 두었지만 점차 그 정확한 위치의 파악이 강조되고 있다.

그 한가지 이유는 NTBT의 규정에 따라 핵실험이 의심되는 지역의 주변 1000㎢ 영역에 대해서만 방문조사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실험 의심 장소의 위치를 예측하는 정밀도가 이 보다 좁아야만 한다. 하지만 현재 기술은 이에 못 미치고 있다.

이에 미국의 연구자들은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핵실험 위치 예측의 정밀도를 대폭 개선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핵실험이 일어나면 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 Comprehensive Nuclear Test Ban Treaty Organization)가 운영하는 전 세계 300여 개의 관측소에서 지진파가 감지된다. 각 감지기에 기록되는 지진파의 시간을 이용하여 핵실험의 위치가 계산된다.

이를 위해서는 지구 내부에서 지진파의 전파속도를 알아야 한다. 현재는 1차원 움직임만 고려한 모형을 사용하고 있으나, 나머지 2개 차원이 지각 및 상부 맨틀 부분에서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정확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3개 차원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핵실험의 위치 예측: SALSA3D 프로그램은 지진파의 3차원 운동을 모두 고려하여 예측 정확도를 대폭 개선하였다 (출처: 미국 샌디아 국립연구소)
핵실험의 위치 예측: SALSA3D 프로그램은 지진파의 3차원 운동을 모두 고려하여 예측 정확도를 대폭 개선하였다 (출처: 미국 샌디아 국립연구소)

이들은 지구 전체를 많은 삼각뿔 모양의 조각들로 나누고 기존에 발생한 10여만 개 지진에 대한 측정자료 등 약 1000만 개의 데이터를 이용하여 지구 내부의 모습을 예측하였다. 이 과정은 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을 이용해 우리 몸을 들여다보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이에 필요한 계산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미 에너지부가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슈퍼컴퓨터가 사용되었다. 그 결과는 대성공. 지진파가 검출되고 나서 진앙의 위치는 실시간에 가까운 1000분의 1초 내에 파악할 수 있었고, 그 정확도도 26% 개선되어 CTBT에서 요구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또 슈퍼컴퓨터는 다양한 분야의 무기개발에도 활용된다. 예를 들어 미 국방부는 험비(Humvee) 등의 군사용 차량을 개발하면서 장갑을 강화하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면서 그 무게를 계속 증가시키고 있다. 이렇게 늘어난 무게 때문에 연료효율이 낮아지고 고장이 잦아져서 차량의 수명이 줄어들게 된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복합재료를 이용해 무게를 줄이면서도 보다 낮은 가격으로 보다 신뢰성이 높은 제품을 개발하려는 방안이 추진됐다. 특히 군용차량은 온도, 습도 등이 열악한 환경에서 운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 신뢰성은 핵심적인 문제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는 신뢰성 평가에는 슈퍼컴퓨터가 활용됐다. 즉, 나노 및 유한요소 해석 방법을 결합한 시뮬레이션 방법으로 미시적 규모에서 시작한 결함이 어떻게 성장하여 부품 전체의 고장으로 이어지는 지를 예측할 수 있다.

 

결합부품 “A-Arm”:  군용차량 험비에 사용될 이 부품의 신뢰성을 슈퍼컴퓨터로 예측하여 설계시간 및 비용을 대폭 단축하였다 (출처: AlphaSTAR 사)
결합부품 “A-Arm”: 군용차량 험비에 사용될 이 부품의 신뢰성을 슈퍼컴퓨터로 예측하여 설계시간 및 비용을 대폭 단축하였다 (출처: AlphaSTAR 사)


문제는 부품이 금속, 고분자 화합물, 금속 섬유 등의 다양한 재질로 이루어져 있어 해석이 복잡하다는 것이다. 또한, 개별 부품보다 이들이 결합된 조립 부품(assembly)의 평가가 보다 의미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계산용량이 필요하다. 일례로 험비에 사용될 조립부품 'A-Arm' 시제품 1개의 평가에만 2~3주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들은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이를 해결했다. 결과적으로 A-Arm의 설계시간이 1/10로 단축되었고, 그 비용도 40% 절약됐다. 또한, 보다 다양한 경우를 시험할 수 있게 되어 수명을 1.75배, 최대하중을 1.6배로 늘이면서도 무게는 31% 감소된 제품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