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가 오는 11월 1일부로 프린터 및 PC사업부가 포함되는 ‘HP Inc.’와 기업용 HW와 서비스 부문인 ‘HP 엔터프라이즈’ 등 두 개 회사로 분리된다. 76년간 IT 세계를 군림했던 IT공룡은 이제 둘로 나뉘는데, 그래도 몸집은 줄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HP의 거대한 두 개의 기업이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편집자주>

[IT조선 유진상] 지난 2014년 10월 HP는 두 개의 회사로 분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그동안의 매출 부진 등 악재에서 벗어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실제 멕 휘트먼 HP CEO는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분사를 통해 민첩한 조직을 만들고 사업 분야를 선택해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며 “각 사업 부문이 각자의 목표에 따라 자본 구조를 달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HP는 지난 7월 분사를 위한 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으며, 자사 4분기(8~10월)부터 회사를 나눠 운영했다. HP 엔터프라이즈는 멕 휘트먼 CEO의 지휘하에 기업용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서비스에 집중한다. PC와 프린터 부문을 맡는 HP Inc.는 디온 와이즐러가 이끌며, 지주회사의 역할을 한다.
 

멕 휘트먼 HP CEO(사진=HP)
멕 휘트먼 HP CEO(사진=HP)


한국HP 관계자는 “HP의 4분기는 두 회사로 나뉜 HP가 잘 운영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테스트 기간이었다”며 “새롭게 시작하는 회계연도인 11월 1일부터 완전히 나뉜 두 회사로 새롭게 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HP는 비용구조를 개선하고 몸집을 가볍게 해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지난 9월에는 마지막 구조조정이라며 분사에 앞서 최대 3만여 명을 추가 감원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연간 27억 달러(약 3조 2000억 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회사는 지난 10년간 핵심 사업이었던 서버와 PC 대신 클라우드 컴퓨팅 등 신성장동력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과정에서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HP는 지난 몇 년간 애플과 아마존 등이 클라우드 컴퓨팅과 모바일 사업 등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서버와 PC 매출은 감소했고 SW와 모바일 기기로 미래를 개척하려던 노력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결과 HP의 실적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지난 2010년 매출액 1260억 달러, 순이익 87억6000만 달러의 실적으로 고점을 찍은 후 2014년에는 매출액 1115억 달러, 순이익은 50억 달러로 감소했다.

던져진 주사위, 기회 찾을까

HP는 이번 분사를 통해 새롭게 도약할 것을 자신하고 있다. 신설될 HP엔터프라이즈가 오는 2016년 10월 마감되는 회계연도에 주당순이익을 85센트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다. 특히 향후 몇 년간 클라우드 관련 사업 매출이 연간 20%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HP Inc 역시 3D 프린팅 등 신성장 사업을 확장해 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특히 HP엔터프라이즈는 플래시 스토리지, 클라우드 컴퓨팅,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킹 등 새로운 사업에 적극적으로 매진할 계획이다.

현재로썬 HP 분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올해 초 인수한 아루바네트웍스를 통해 다소 부진했던 네트워크 사업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이를 통해 기업용 무선 네트워크 시장에서 시스코시스템즈도 추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한, 3PAR를 통한 플래시 스토리지 시장 공략과 힐리온을 앞세운 퍼블릭 클라우드 시장 공략에 거는 기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우려의 시선도 만만찮다. HP가 분사한다 해도 여전히 두 개의 거대기업으로 남아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하더라도 민첩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HP엔터프라이즈가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x86 서버 사업 역시 갈수록 줄어드는데, 이를 타개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IBM은 이 점을 들어 x86 서버 사업 부문을 중국 레노버에 매각한 바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부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지난달 멕 휘트먼 CEO는 “HP 엔터프라이즈의 초기 사업에서 중심은 클라우드 컴퓨팅”이라며 “하이브리드 클라우드가 올해 30억 달러의 매출을 일으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한 애널리스트는 “HP가 주장하는 30억 달러의 매출은 서버에서 나온다는 것인가. 과연 어디서 그 매출이 나올 수 있다는 건지 알 수 없다”며 “아마존과 MS, IBM 등이 클라우드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HP가 이 시장을 공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HP, 물리적 분리 완료

한국HP의 경우 지난 8월 1일부터 PC프린터 사업부와 엔터프라이즈 사업을 각기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물리적 공간은 완전히 분리했다. 법무, 인사, 총무, 회계조직 역시 각 사업 부문별로 운영할 뿐 아니라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한국HP 여의도 사무실 11개 층도 나눴다. 2개 층을 PC프린터 사업부가 사용하며 엔터프라이즈 사업부가 나머지를 사용하고 있다. 또 HP엔터프라이즈 한국대표에는 함기호 한국HP 사장이 이끌며, HP Inc.는 김대환 부사장이 맡았다.
 
한국HP 관계자는 “HP Inc.는 기존 두 개의 사업부에서 PC, 프린터, 서비스 솔루션 등의 세 개의 사업부로 나뉘어진 반면, HP엔터프라이즈 쪽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며 “물리적 분리 외에 큰 변화는 없다”고 전했다.

유진상 기자 jinsan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