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對 인공지능 두뇌전쟁]
사람처럼 흔들리더니… 실시간 승률 70%서 급격히 무너져

"알파고, 79수 때도 잘한다 생각… 87수 두면서 뒤늦게 실수 깨달아"
알파고의 아버지 허사비스
"이세돌 묘수에 알파고 실수 나와… 중앙에서 李 9단에게 많이 밀려"

13일 알파고와의 네 번째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이 둔 '신의 한 수'는 78수였다. 알파고는 이 수가 나오기 전까지는 자신이 유리하게 대국을 이끌고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9단의 78수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뒤, 혼란을 일으키며 특유의 승률 예측에 애를 먹기 시작했다. 알파고는 승률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면 좋은 수를 둘 수 없다. 뒤늦게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알파고는 판세를 뒤집을 방법이 없다고 판단, 결국 180수 만에 돌을 던졌다. 이세돌이 3패 끝에 귀중한 1승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 측은 경기가 끝나기 1시간 10분 전에 알파고가 패색이 짙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난 10일 진행된 두 번째 대국에서 패한 이세돌이 돌을 던지기 1시간 20여분 전에 승리를 확신했다고 밝힌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승패를 정확하게 내다본 것이다.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대국이 시작된 지 3시간 반쯤 지난 시점에 자신의 트위터에 "이세돌이 대단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알파고는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87수에서 혼란을 겪으며 위기에 처했다"고 적었다. 허사비스는 이어 "79수 때 70%였던 승률이 87수 때에 급격히 떨어졌다"면서 "알파고는 79수의 실수를 87수를 두면서야 깨달은 것"이라고 적었다. 알파고가 이 9단이 둔 78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87수가 돼서야 파악한 것이다.

허사비스 CEO가 이처럼 판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국의 결과를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알파고의 작동 방식 덕분이다. 딥마인드 팀이 지켜보는 화면에는 알파고가 한 수 한 수를 둘 때마다 승리할 확률을 통계적으로 예측한 숫자가 표시된다. 알파고는 돌을 두기 전에 미리 여러 가지 경우의 수와 승리 확률을 계산해본 뒤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수를 선택한다.

알파고의 이런 작동 방식은 이날 대국 초반 진행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9단이 지난 10일의 2국과 같은 순서로 돌을 두자 알파고 역시 자신이 뒀던 곳에 돌을 놓으며 대응했다. 11수까지는 2국과 진행이 똑같았다.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알파고는 현재 두고 있는 대국이 이전에 둔 바둑과 진행 순서가 같다는 인식을 하지 않고, 현재 가장 승률이 높은 수만을 찾는다"면서 "이 9단의 수에 대응해 그때그때 가장 승률이 높은 수를 계산한 결과가 2국과 같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12수에 이 9단이 2국과 다른 곳에 돌을 놓자, 그때부터 대국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 알파고의 작동 방식은 대국이 중반 이후로 넘어갈수록 더 정확하게 승률을 예측할 수 있다. 계산해야 할 경우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허사비스 CEO와 딥마인드 팀은 87수 이후 알파고가 예측하는 승률 수치가 급격히 떨어진 것을 보고 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았다.

알파고는 승률이 급격히 떨어진 87수 이후 전세를 뒤집지 못했다.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이 버그(프로그램 오류)라고 판단 할 정도의 악수(惡手)를 연발하다가 결국 180수 만에 "resigns" 팝업창을 띄우며 돌을 던졌다. 허사비스는 대국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알파고는 승률 예측 수치가 일정 수준 밑으로 떨어지면 패배를 선언하도록 돼 있다"고 밝혔다.

허사비스는 경기가 끝난 후 트위터에 "알파고가 결국 실수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축하한다"고 적었다.

박건형 기자 defyi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