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렉트X(DirectX)는 PC 기반 게임이나 멀티미디어 애플리케이션에서 그래픽이나 사운드, 주변기기 등 하드웨어를 더욱 쉽게 제어하고 효율적인 데이터 입출력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모음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계열 OS에서만 지원하지만, 전 세계 PC 시장에서 윈도의 점유율이 가장 높다 보니 PC 기반 게임에서 가장 많이 쓰는 API이기도 하다.

다이렉트X의 최신 버전은 지난해 7월 윈도 10과 함께 등장한 ‘다이렉트X 12’다. 핵심 기술은 ▲애플리케이션이 하드웨어에 직접 접근할 수 있게 되어 불필요한 CPU 명령(오버헤드)의 낭비를 줄인 것 ▲서로 다른 브랜드의 GPU를 동시에 사용해 그래픽 명령을 분산 처리할 수 있게 된 것(멀티 어댑터) ▲CPU에서 발생하는 명령 처리 지연과 병목 현상을 줄이고 멀티 코어 CPU를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비동기식 컴퓨팅) 등이다.

이러한 신기술로 무장한 다이렉트X 12는 동일한 하드웨어에서 눈에 띄는 성능 향상을 끌어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윈도 10이 출시됐을 때만 하더라도 다이렉트X 12를 지원하는 게임이 전혀 없어 그 위력을 실제로 체험할 수가 없었다.

업계 최초로 다이렉트X 12를 정식 지원하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애쉬즈 오브 더 싱귤러리티(Ashes of the Singularity)' (이미지=옥사이드 게임즈 홈페이지)
업계 최초로 다이렉트X 12를 정식 지원하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애쉬즈 오브 더 싱귤러리티(Ashes of the Singularity)' (이미지=옥사이드 게임즈 홈페이지)
 

하지만 2016년 2분기에 접어들면서 다이렉트X 12를 정식으로 지원하는 게임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 출시됐던 게임들도 업데이트를 통해 다이렉트X 12 지원 의사를 밝힘에 따라 그 수는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다이렉트X 12 지원 게임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최근 조용했던 그래픽카드 시장에도 전운이 감돌고 있다. 지금껏 미루어졌던 ‘다이렉트X 12 환경에서의 실제 성능’이라는 이슈가 다시금 피어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AMD - 다이렉트X 12 게임을 통한 반격의 시작

다이렉트X 12 지원 게임들의 등장이 반가운 곳은 다름 아닌 AMD다. 이미 1년여 전부터 다이렉트X 12 지원을 염두에 둔 GPU들을 꾸준히 내놓고 있었지만, 지포스 900시리즈를 앞세운 엔비디아에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와 전성비(소비전력 대비 성능)에서 모두 밀리며 벼랑 끝까지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맥스웰’ 아키텍처를 도입하면서 일반 소비자들에게 거의 불필요한 고급 연산 유닛의 수를 줄이고 게임 그래픽 처리 효율은 더욱 높여 실속을 추구했다. 반면 AMD의 GCN(Graphic Core Next) 아키텍처는 기존의 방식대로 고급 연산 유닛을 그대로 둔 채 그래픽 성능 향상을 꾀했다. 그 결과 AMD의 GPU는 성능과 가격, 소비전력과 발열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힘을 쓰지 못하면서 시장에서 참패로 이어졌다.

하지만 AMD는 다이렉트X 12 시대로 접어들면서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이렉트X 12의 그래픽 성능 향상 기술이 AMD GPU의 CGN 아키텍처에 좀 더 유리하게 설계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 더욱 강력하고 복잡한 연산 성능을 요구하는 다이렉트X 12의 비동기식 컴퓨팅 부문에서 AMD의 GPU가 강점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의 유명 하드웨어 사이트에서 진행된 다이렉트X 12 지원 데모와 벤치마크 테스트에서 AMD의 GCN 1.2 아키텍처 기반 그래픽카드는 거의 전 모델이 경쟁사의 한 단계 위 모델과 경쟁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즉 AMD의 그래픽카드는 다이렉트X 12 지원 게임에 한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한 효과를 제공하는 셈이다.

AMD는 이미 차세대 아키텍처인 ‘폴라리스’를 발표했다. 10나노미터급 최신 공정과 차세대 HBM 2(2세대 고대역폭 메모리)를 탑재할 것으로 알려진 차세대 제품은 그동안 AMD의 부진을 날려버릴 기대주로 꼽히고 있다.

물론 아무리 뛰어난 기술에 좋은 제품이 나와도 수요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현시점에서 AMD에 좀 더 유리한 다이렉트X 12 지원 게임들이 속속 등장하는 가운데, AMD 그래픽카드가 어느 정도 명성을 회복하고 크게 벌어진 시장 점유율의 차이를 얼마나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이렉트X 12 로고 (이미지=마이크로소프트)
다이렉트X 12 로고 (이미지=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현상 유지와 수성이 관건

차세대 ‘맥스웰’ 아키텍처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지포스 900’ 시리즈의 유례 없는 대성공으로 전 세계 외장 그래픽카드(GPU)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한 엔비디아는 AMD에 비해 느긋한 입장이다.

비동기식 컴퓨팅 등 다이렉트X 12의 일부에서 AMD의 GPU에 비해 조금 부족한 면을 보이지만, 워낙 우수한 기본 성능과 뛰어난 가성비, 전성비 등이 그 격차를 충분히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엔비디아의 맥스웰 기반 최신 GPU들 역시 다이렉트X 12의 주요 기능을 지원하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당할 걱정도 없다.

엔비디아로서는 아직 꺼낼 수 있는 카드가 많다. 특히 지포스 900시리즈 출시 이후 거의 없었던 ‘가격 인하’ 카드는 시장 점유율을 지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다만 지포스 900시리즈도 벌써 출시된 지 1년 반이 지나면서 세대교체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이미 업계의 시선은 차세대 ‘파스칼’ 아키텍처가 적용될 것으로 알려진 ‘지포스 X(가칭)’ 시리즈를 향하고 있다. 경쟁사 AMD도 차세대 아키텍처인 ‘폴라리스’를 선보이면서 칼을 갈고 있는 만큼 엔비디아는 지금의 점유율을 최대한 지켜낼 필요가 있다.

최근 엔비디아는 ‘성능’ 외적인 부문에도 좀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전통적으로 ‘영상’에 약하다는 편견을 깨려는 듯 차세대 4K 비디오를 위한 H.265(HEVC) 하드웨어 가속 기능을 메인스트림급 제품군인 GTX 950, 960에 적용했으며, 보급형인 GTX 750 제품군에 4K 60Hz 해상도를 지원하는 HDMI 2.0 인터페이스를 적용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보인다.

고급 그래픽 부문에서도 향상된 실시간 렌더링 기술과 물리 효과로 더욱 현실적인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 ‘게임웍스(Game Works)’ 지원에도 더욱 힘을 쏟고 있다. ‘성능’에서는 소비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만큼 ‘화질’에서도 소비자들을 붙잡겠다는 의미다.

(사진=엔비디아, AMD)
(사진=엔비디아, AMD)
 

AMD와 엔비디아는 올해 3분기를 전후로 차세대 아키텍처를 적용한 신형 GPU를 차례로 선보일 예정이다. 다이렉트X 12 지원 게임들의 본격적인 등장과 그로 인해 불거질 시장 점유율 확보 경쟁은 올해 하반기 차세대 그래픽카드 시장을 앞둔 전초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