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용 모니터 시장에 ‘커브드(curved)’ 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 들어 새로 출시되는 모니터 중에 화면이 안쪽으로 굽어 있는 커브드 모니터의 비중이 예사롭지 않다.

‘커브드’ 화면은 이미 TV 시장에서 한 차례 이슈가 된 기술이라 딱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삼성과 LG 등 국내 업체는 물론 에이수스, 벤큐, 필립스, 에이서, 델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디스플레이 브랜드들이 약속이나 한 듯 커브드 모니터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히 구색 맞추기나 시장 선점 등의 이유뿐만 아니라 커브드 모니터가 시장에서 통할 것이라는 근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2016년 커브드 모니터 시장이 달아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전자는 자사의 커브드 모니터 전 세계 판매량이 100만대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자사의 커브드 모니터 전 세계 판매량이 100만대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사진=삼성전자)
 

 

커브드 화면의 작동 원리와 TV에서의 실패

일반적인 평면 디스플레이는 시청자 기준으로 화면 중앙부까지의 거리와 주변부까지의 거리가 조금씩 다르다. 화면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리고 시청자와 화면 사이의 거리가 짧을수록 그 차이가 벌어진다. 이는 미세하게나마 시각적인 정보가 달라지는 시차(視差, parallax)를 일으키며, 무의식적으로 화면 중앙부보다 주변부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려 전체적인 정보 전달력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된다.

커브드 디스플레이의 기본 원리는 시청자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고, 그 원호(圓弧)에 맞춰 디스플레이를 휘어지게 함으로써 시청자와 화면의 거리를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화면 중앙부와 주변부의 정보가 시차 없이 동시에 전달되기 때문에 화면 전체에 대한 집중력도 높아지고, 정보 전달력도 그만큼 높아진다. 커브드 디스플레이 제품들이 ‘몰입감’이 높은 이유다.

하지만 먼저 ‘커브드’ 기술이 도입됐던 TV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비싼 가격도 걸림돌이지만, 커브드 화면과 주로 TV를 사용하는 환경이 서로 맞지 않은 것도 한몫한다.

일반적인 TV 시청 환경(주로 거실)은 화면과 시청자 사이의 거리가 적어도 3m 이상 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100인치 이하의 화면에서 거리가 벌어지면 화면 중앙부와 주변부의 시차는 거의 무의미하다. 즉 커브드 화면의 효율이 그만큼 떨어지는 셈이다.

게다가 TV는 보통 3~4명 이상 여럿이 함께 시청하는 경우가 많다. 커브드 디스플레이는 구조적으로 화면 정면 중심축 방향의 시청자 1~2명에 최적화되어 있다. 중심축을 벗어난 위치의 다른 시청자에게는 일반 평면 디스플레이보다 더욱 왜곡된 영상이 보일 수 있으므로 오히려 불편하다.

 

커브드 모니터가 ‘뜨는’ 이유… TV와 모니터의 환경 차이

반면, PC용 모니터에서는 TV에서 발생하던 커브드 화면의 단점이 대부분 해소된다.

PC용 모니터는 TV에 비하면 평균적인 화면 크기는 작은 대신 시청 거리가 보통 1m 이내로 짧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모니터의 평균 크기가 23~24인치를 넘어 27인치급으로 점차 커지면서 더욱 큰 화면을 가까이서 보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만큼 커브드 화면이 유리한 환경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PC가 전통적으로 1:1로 사용하는 기기인 것도 커브드 모니터에 유리한 점이다. TV의 사례에서 언급한 대로 커브드 화면은 1~2인 시청차에 최적화된 형태다. 대부분 PC는 한 사람이 단독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TV처럼 여럿이 함께 시청할 때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처럼 TV에서 발생한 커브드 화면의 단점들이 해소된 데다, 기존 평면 모니터보다 더 우수한 몰입감까지 제공하다 보니 소비자들의 관심과 수요도 자연스레 늘고 있다.

특히 일부 마니아 외에는 수요가 적었던 21:9 극장 화면 비율 모니터도 커브드 화면을 채택하면서 수요가 살아나고 있다. 일반 16:9 모니터보다 좌우 길이가 약 30% 더 넓은 21:9 와이드 모니터는 커브드 화면의 장점을 더욱 잘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21:9 화면 비율의 커브드 모니터 라인업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사진=LG전자)
LG전자는 21:9 화면 비율의 커브드 모니터 라인업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사진=LG전자)
 

 

마케팅 요소로 탄생한 커브드 화면, '더 나은 것' 찾는 소비자들에게 어필해

사실 커브드 디스플레이 제품들이 등장하게 된 이면에는 ‘화면크기’와 ‘해상도’, ‘화질’ 등의 요소로는 더이상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워지자 차별화된 기술력을 마케팅 요소로 활용하려는 제조사들의 계산이 담겨있다. 실제로 커브드 기술이 상충하는 요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규모가 엄청나고 경쟁도 치열한 TV 시장에 먼저 적용된 것도 그런 이유다.

하지만 커브드 화면은 사용자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TV보다 PC용 모니터에 더 잘 어울리는 기술인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제품의 수와 종류가 늘어나고 가격 경쟁력을 갖춘 커브드 모니터의 수가 늘어나자 소비자들의 수요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가격비교사이트 다나와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으로 커브드 모니터의 가격은 1년 전 동기 대비 30% 가량 하락했으며, 시장 점유율도 5%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사들의 연이은 신제품 출시와 라인업 강화도 소비자들의 구매 성향과 시장 분위기를 읽어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지난 1년여간 커브드 모니터 시장 점유율 변동 추이 (자료=다나와)
지난 1년여간 커브드 모니터 시장 점유율 변동 추이 (자료=다나와)
 

물론 고급 제품으로 갈수록 같은 크기의 일반 모니터에 비해 비싼 가격과 기존 평면 모니터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거부감은 향후 커브드 모니터 보급의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또 커브드 화면이 TV 수신기능이나 3D 기능처럼 한 철 유행으로 반짝하고 끝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기존의 일반 모니터에 비해 ‘더 나은 경험’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제품이라는 점에서 2016년 한 해는 커브드 모니터의 해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