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으로 회전하는 디스크가 아닌 반도체 메모리에 데이터를 읽고 쓰는 SSD(Solid State Drive)는 지난 2007년 저장장치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빠르게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를 대체하고 있다.

특히 HDD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SSD의 검색속도와 데이터 읽기·쓰기 속도는 시스템의 전체적인 퍼포먼스를 큰 폭으로 향상할 수 있어 고성능 PC의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했다. 기업 시장에서도 성능을 중시하는 시스템을 중심으로 SSD의 도입이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SSD 시장은 큰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기존 SATA 인터페이스보다 수 배~수십 배 이상 빠른 PCI익스프레스(PCIe) 인터페이스의 도입과 더불어 TLC(Triple Level Cell) 방식의 낸드(NAND) 플래시메모리를 탑재한 제품들이 대거 늘어난 것이다.

최근 출시된 최신 TLC SSD 제품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인텔 540s, 플렉스터 M7V, 마이크론 크루셜 BX200, 조텍 T500) / 각 제조사 제공
최근 출시된 최신 TLC SSD 제품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인텔 540s, 플렉스터 M7V, 마이크론 크루셜 BX200, 조텍 T500) / 각 제조사 제공
 

 

초창기 TLC SSD, 떨어지는 성능과 비싼 가격이 보급 발목 잡아

TLC 방식 낸드 플래시는 하나의 메모리 셀에 3비트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초창기 SSD에 사용된 SLC(Single Level Cell) 방식은 하나의 셀에 1비트의 데이터를, 본격적인 SSD 보급을 주도했던 MLC(Multi Level Cell) 방식은 2비트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즉 TLC 낸드 플래시를 탑재한 SSD는 기존 방식의 제품들에 비해 단위 면적당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고 읽을 수 있어 더 많은 저장공간을 제공한다. SSD의 가장 큰 단점인 비용 대비 용량 문제를 대폭 개선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초창기 TLC SSD에는 문제가 많았다. 기존 MLC 낸드 플래시와 비교하면 기록속도가 느리고 수명이 짧은 TLC 낸드의 고질적인 단점으로 인해 기본 성능과 안정성, 내구성이 크게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TLC SSD만의 장점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시장에 먼저 출시됐던 초창기 TLC SSD 제품 중 일부가 장기간 사용 시 성능 저하, 데이터 증발 등의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면서 여론이 크게 악화된 것도 초기 TLC SSD 시장 확대의 발목을 잡았다.

단점 개선된  TLC SSD, 용량 커질수록 가격 더 내려가

그런 TLC SSD가 다시금 시장의 주력 제품으로 떠오른 것은 기존에 드러난 단점들이 대부분 개선됐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큰 이슈였던 수명 문제는 여러 개의 메모리 셀을 골고루 돌아가면서 사용하는 웨어 레벨링(Wear Leveling) 기술의 보편화로 상당 부분 개선됐다. 특히 TLC 방식의 도입과 제조 공정 개선으로 인해 기존 MLC 방식보다 더 많은 여유 메모리 셀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웨어 레벨링 기술의 효율도 상승하면서 TLC SSD의 수명은 MLC 방식 제품과 비슷한 수준으로 늘어났다.

현재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최신 TLC SSD는 하루에 수십 GB(기가바이트)의 데이터를 매일 쓰고 읽어도 거의 3년 가까이 사용할 수 있는 수명을 제공한다. 실제 PC 사용 환경에서 하루에 읽고 쓰는 데이터의 평균 용량이 수 GB도 채 되지 않는 것을 고려하면 평균 5년 이상의 기대 수명을 제공하는 셈이다. 이는 평균 PC 교체 수명인 3년보다도 긴 기간이다.

또 다른 단점인 성능 문제도 낸드 플래시에 데이터를 읽고 쓰는 작업을 수행하는 컨트롤러 기술의 발달로 많이 개선됐다. SATA 방식 SSD를 기준으로 최신 MLC 제품들의 평균 읽기·쓰기 속도는 500~550MB/s 정도인데, 최신 TLC SSD의 읽기 성능은 MLC 제품과 거의 같은 수준이며 쓰기 성능도 MLC 제품의 거의 80~85%까지 따라잡아 격차가 많이 줄었다.

기존의 단점이 개선되자 TLC만의 장점도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 특히 비용 대비 용량 부분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2016년 4월 현재 일반 소비자용 SSD 중 주력인 240~256GB 용량에서 MLC 제품들은 평균 12만~13만 원대의 가격인데 반해, 같은 용량의 TLC 제품들은 약 20% 저렴한 10만 원 안팎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가격 차이는 SDD의 용량이 늘어날수록 더욱 커질 전망이다. 10nm급 최신 공정과 3D 낸드 구조 등 최신 기술이 TLC 낸드 플래시 제조 공정에 먼저 투입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대용량 TLC 낸드 플래시의 공급이 늘어나고 가격은 더욱 내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력 SSD의 용량이 480~520GB, 1TB급으로 늘어나면 TCL SSD는 기존 MLC 제품의 3분의 2에서 최저 절반 수준으로 가격 차이를 더욱 벌릴 것으로 보인다.

TLC 기반 SSD가 진출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던 기업 시장으로의 진출도 활발하다. 기존 MLC 방식보다 성능과 내구성은 떨어지지만, HDD보다는 뛰어난 성능과 MLC 방식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안정성을 중시하는 제조사 중 하나인 인텔조차도 최근 기업 시장용 TLC SSD 제품군을 선보이며 시장 점유율 확대에 나서고 있을 정도다. 그 대상은 주로 저렴한 비용으로 SSD 기반 고성능 시스템을 요구하는 중견 기업과 SMB 시장이다.

TLC SSD는 제조사 입장에서도 유리한 제품이다. 하나의 셀에 더 많은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는 TLC 메모리는 단위 면적당 더 많은 저장공간을 제공한다. 바꿔 말하면 같은 용량을 더 적은 수의 메모리 모듈로 구성할 수 있어 제조원가를 더욱 낮출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제품 가격을 낮춰도 수익은 극대화할 수 있다.

여전히 일반 소비자와 기업 시장에 남아있는 TLC 메모리 제품에 대한 불신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초창기 SSD가 SLC에서 MLC로 넘어갈 때도 시장 상황이 비슷했던 것을 고려하면 연내로 TLC SSD가 시장의 대세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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