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전세계 기업들 중 가장 많은 현금 보유액을 갖고 있다. 무려 2157억달러( 255조원)에 달하는 현금을 금고에 쌓아두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 가진 돈은 얼마되지 않는다. 대부분이 아일랜드에 있다. 애플은 아일랜드 코크 지역에 2개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구글도 현금 보유액이 731억달러(87조원)에 달한다. 이 돈 역시 미국이 아닌 아일랜드에 대부분이 모여 있다. 스타벅스, 아마존, 야후, 아마존 등의 대다수 다국적 기업들은 미국이 아닌 해외에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이들 기업이 해외에 돈을 보관하는 이유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서다. 각 국가별 조세조항과 세율이 다르다는 점을 이용했다. 때문에 탈세는 아니다.

방법도 다양하다. 대표적인 방법이 애플이 창안한 조세회피 기법 '더블 아이리시 위드 어 더치 샌드위치'다. 아일랜드에 미국 법인용과 해외 법인용 두 개의 자회사(double irish)를 만들고 네덜란드와 버뮤다 등의 조세가 없는 지역에 법인을 설립한다. 해외의 영업 수익을 도관회사인 네덜란드 법인을 거쳐 버뮤다 등 조세회피처로 몰아주는 구조다.

조세회피 사례: 더블아이리시위드더치샌드위치. / 국회예산정책처 제공
조세회피 사례: 더블아이리시위드더치샌드위치. / 국회예산정책처 제공
조금 복잡해 보일 수도 있지만 세금은 확실히 줄일 수 있다. 구글은 이 과정을 통해 전체 수입 중 80%에 달하는 해외 영업 수입에 대한 법인세를 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렇게 줄어든 다국적 기업의 총 법인세는 매년 1000억~24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에서는 유한회사를 설립해 활용하고 있다. 국내법상 유한회사는 매출 규모나 수익 등을 공시하지 않아도 된다. 때문에 한국마이크로소프트, 한국오라클, 애플코리아, 구글코리아 등은 한국에서 얼마를 버는지 알 수도 없고 세금도 내지 않는다. 또 대부분 직접 판매 방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사를 이용한 간접판매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안상민 언스트영 국제조세팀 전무는 "이런 방법은 1990년대부터 꾸준히 존재해 왔다"며 "다국적 기업들이 국제적 영업망을 이용해 '세율이 낮은 곳에서는 수익을 높이고, 세율이 높은 곳에서는 수익을 작게하는 일종의 조세회피 시스템이다"라고 설명했다.

해외 구글세 추진 동향. / 국회예산정책처 제공
해외 구글세 추진 동향. / 국회예산정책처 제공
세금을 거둬야 하는 국가 입장에서는 머리가 아프다. 세금을 거둬 들이기 위해 만든 것이 '구글세'다. G20 국가들은 구글세 징수를 위해 지난해 11월 BEPS(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소득이전을 통한 세원감식)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한국도 지난해 12월 법 개정을 통해 BEPS를 일부 추진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의 개별기업보고서와 통합기업보고서 작성을 의무화했다. 개별기업보고서는 국내에 있는 다국적 기업이 해외 특수 관계에 있는 기업과 어떤 거래를 했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통합기업보고서는 기업 전체에 대한 정보를 다룬다.

하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남아 있다. 국가별 보고서다. 국가별 보고서에는 기업의 국가별 매출과 세전이익, 법인세 납부액 등의 정보가 담겨 있다. 국가별 보고서는 현재 본사가 있는 국가만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은 본사가 있는 미국에만 국가별 보고서를 제출하면 된다. 이를 넘겨받기 위해선 다자과세당국간 협정을 맺어야 한다.

◆대기업은 신속 대응, 중소기업은 대기업 눈치, 글로벌 기업은 관망

이미 BEPS가 일부 시행되고 이르면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따라 국내 대기업들은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법안을 검토하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아직은 대기업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과 현대차 등 해외에서 많은 매출을 올리는 국내 글로벌 기업은 글로벌 조세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상민 전무는 "BEPS가 본격 시행되기까지 아직 10개월 정도가 남아 있지만 국내 대기업들은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며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외투법인은 글로벌 헤드쿼터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글로벌 ICT 기업들은 오히려 대책 마련에 여유가 있어 보인다. 일부 글로벌 기업들은 구글세라는 말 자체를 처음 듣는다는 반응도 보였다. 한국외국기업협회에서도 구글세 도입과 관련해 회원사들의 반응이 없다는 설명이다.

국내 한 글로벌 기업 관계자는 "구글세는 현지 법인들의 이슈라기보다는 본사에서의 이슈로 보인다"며 "이와 관련해 논의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IBM 관계자는 "구글세 법안의 정확한 내용이 아직은 안나온 상황이기에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라며 "다만 한국IBM은 공시를 하기 때문에 큰 대응은 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진출한 대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유한회사로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법안을 우선적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아마존 등 대부분의 ICT 글로벌 기업들이 유한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들은 기업 정보에 대한 공개 의무가 없다"며 "유한회사도 주식회사처럼 외부감사를 받아 회계 투명성을 높일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하는 것이 더 우선 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대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파트너를 통한 간접 판매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 역시 일정 부분 세금을 절감을 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