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수행형 조직의 R&D 성과와 시사점

역사상 NASA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미국항공우주국) 만큼 인류에게 꿈을 주고 인류의 위대함을 증명한 조직은 없을 것이다. 최초로 인간이 지구 밖의 우주라는 공간에 발을 내디딘 달 착륙 이후 NASA는 전세계인들에게, 특히 청소년들에게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줄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계로 젊은 인재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또한 NASA의 위대한 업적은 NASA 만큼 우리 일상에서 쓰이는 많은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을 개발한 조직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류 평화의 상징과 같은 NASA는 사실 미국과 소련(구 러시아) 간의 치열한 냉전의 산물이었다.

1957년 10월 소련이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Sputnik, 러시아어로 '꼬마 여행 친구'라는 뜻) 1호를 쏘아 올리자, 미국은 이 발사체(로켓)가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는 충격에 대대적인 대책을 모색한다. 이때 나온 대응책 중의 핵심이 우주개발이라는 명분과 기존의 국방연구 역량을 넘어 과학기술계의 역량 결집을 위해 군이 아닌 민간주도로 1958년 10월에 설립된 NASA 였다. 물론 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4년에 정부, 산업계, 학계의 항공 및 무기 관련 프로젝트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된 NASA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NACA (National Advisory Committee for Aeronautics, 국가항공자문위원회)가 있었으나, 자문위원회의 성격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미국 정부는 미증유의 사태에 직면하여 NACA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로켓개발 기관, 육군 탄도미사일국 등 분산된 조직과 예산을 하나로 합치는 결단을 한다.

NASA, 대담한 미션으로 우주개발 역량 결집에 성공
곧이어 소련이 1961년 우주인(유리 가가린)을 지구 궤도에 보내자 NASA는 소련을 넘어서는 우주역량을 개발하기 위하여 1960년대 안에 우주인을 달에 보낸다는 미션을 공식적인 목표로 내걸었다. 1961년 5월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의회에서 "미국은 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보내 무사 귀환시켜야 합니다. 다른 어떠한 우주 계획도 인류에게 이보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이는 또한 장기적인 우주 탐사 계획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며, 이를 위해 온갖 어려움과 막대한 비용을 감수할 것입니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한다. 이와 같이 NASA의 미션은 공식적으로는 우주개발이지만, 진짜 목적은 당시 미국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소련의 군사력과 과학기술력을 넘어서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었다.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NASA는 1969년 7월 최초로 아폴로 11호 우주인을 달에 착륙시키는 미션(아폴로 계획)을 완수한다. 당시 미국 정부가 NASA에 투입한 예산이 최대였을 때(1966년) 연방정부 예산의 4.41%, GDP의 0.75%를 차지(현재는 예산 비중이 1/10 정도로 감소)하였으며, 최대 인원 또한 41만명(내부직원 4만명, 외부직원 37만명)에 달했다. 전체 아폴로 계획에 투입된 예산은 총 250억 달러에 달했으며, 아폴로 계획은 실패한 우주선 2개(아폴로 1호, 13호), 사망자 3명(아폴로 1호)에 불과한 대성공을 달성하며 1972년 17회로 조기 종료(원래는 20호까지 계획)된다. 이후 아폴로 계획은 스카이랩 우주정거장 계획으로 전환된다.

이와 같이 미국이 먼저 달에 인류를 보낸다는 미션을 달성하고 우주기술(로켓 등 제반 미사일 기술)에서 소련을 압도하게 되면서 NASA의 목표는 군사적 성격에서 순수 민간 우주과학 연구(화성 등 심우주탐사, 우주망원경 등) 중심으로 변하고, 예산과 조직 축소의 길을 걷게 된다. 이는 소련의 유인 달탐사 계획 포기와 우주정거장 계획으로의 전환, 이후 소련의 붕괴로 NASA의 임무가 국가의 절박한 목표에서 멀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NASA는 여전히 우주개발 경쟁력에서 부동의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2012년 예산은 127억 달러(국민 1인당 135.9 달러 부담)로 GDP 대비 0.283%, 정부 R&D 대비 29.4%를 차지하고 있다. 인력은 NASA 소속(본부와 11개 센터)이 18,170명(2012년), 협력 기관 참여 인력이 242,724명(2011년)으로, 대학과 산업계를 포함한 국제적인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NASA를 중심으로 한 정부 주도의 우주개발이 줄어들면서 SpaceX(Tesla), Boeing, Blue Origin (Amazon), Virgin Galactic 등 민간 기업에서 우주화물선, 우주여객선 개발 경쟁이 시작되는 등 우주개발이 민관 경쟁 및 협력 체제로 바뀌고 있다.

NASA의 기술이전: 검증된 첨단 기술로 민간 시장을 개척
우주개발이라는 표면적 목적 뒤에 미사일 등 군사력 강화라는 내심의 목적으로 출발하였지만 NASA가 미친 사회경제적 효과는 지대하였다. NASA에 따르면 전신인 NACA부터 100년 동안(1915~2015) 연간 예산은 185억 달러에 달했지만, 경기부양효과는 1,230억~2,460억 달러로 추정하였다. NASA에 1달러씩 투자할 때마다 7~14달러의 경기부양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주로 NASA 예산의 45%가 투입되는 R&D와 제품화로 개발된 기술의 spin-off(기술이전)에 따른 것이다. 연간 민간에 이전된 NASA의 주요 50개 기술을 기반으로 1,600 여건의 새로운 제품이 개발되었으며(2012년 기준), 이전된 기술당 연간 100만 달러의 매출이 창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소프트웨어 사용계약, 특허(지적재산권) 라이선스, 산업계 기술이전 계약 등 매해 약 2,000건의 기술이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정수필터, 무선 청소기, 메모리폼, 에어쿠션 운동화, 핸드폰용 카메라, 공기정화기, 귀 체온계, 인공심장, 라식수술, 투명 세라믹, 냉동 건조식품 등 많은 제품이 NASA의 기술에서 나온 것이다.

[ NASA 기술이전 사례 ]
-정수필터: 아폴로 우주선에서 사용하기 위한 이온정수 시스템 기술
-무선 청소기: 월석채취용 휴대용 드릴 기술을 무선청소기 기술로 활용
-메모리폼: 우주인 보호를 위한 충격흡수성과 복원성이 좋은 소재 개발
-나이키의 에어쿠션 운동화: 우주인의 무릎관절 보호를 위한 신발 안창 기술
-핸드폰용 카메라: 우주 카메라 기술 응용
-라식수술: 무기발사 제어용으로 개발한 레이더기술을 안구 움직임 추적에 활용
-형상기억합금: 브래지어용으로 사용된 뒤틀려도 원래의 모양을 항상 유지하는 형상기억합금은 달 탐사 아폴로 우주인을 위한 통신 안테나 재료
-귀 체온계: 항성과 행성의 온도를 측정하기 위해 개발된 적외선 센서 기술
-소형인공심장: 우주왕복선의 연료 펌프 기술
-투명 세라믹 소재: 치아교정기, 열추적 미사일 안테나 보호에 이용
-비행기 보조수직날개: NASA와 미공군의 합작폼, 항공기 연료절감에 기여
-어군탐지기: 우성탐사 기술을 응용, 수온-엽록소로 어군 탐지
-허블 우주망원경의 시간관리 기술: 병원 의료관리 시스템에 활용
-내스크래치성 렌즈: 우주인용 헬멧 코팅 기술의 응용
-연기 감지기: 우주선 내에서 우주인 안전을 위한 일산화탄소 탐지 기술
-공기정화기: 우주에서 식물을 재배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
-장거리 통신: 우주탐사때 장애없이 지구와 통신하기 위해 개발
-냉동 건조식품: 우주인들이 우주선에서 바로 조리해서 먹을 수 있게 개발
-말하는 식물: 센서 통해 목마르면 '물줘요' 메시지

NASA에서 개발된 기술이 이렇게 민간분야에서 큰 파급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군이 아닌 민간주도로 조직을 구성하였다는 것과 동시에, 출범 4년 후인 1962년에 기술활용계획(Technology Utilization Plan: TUP)을 수립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기술의 상업적 활용을 지원하였기 때문이었다. NASA는 기술 확산을 위하여 주로 4가지 방법을 사용하였다. 첫째, NASA가 개발한 기술, 관련 특허를 상업용으로 판매한다. 둘째, NASA가 기존 기술을 발전시켜 산업 성장을 돕는다. 셋째, NASA가 기업과 계약을 맺고 필요한 기술을 공동 개발한다. 넷째, NASA 연구원들이 민간 전문가들과 상업용 기술을 개발한다.

매트릭스 조직으로 R&D와 엔지니어링을 결합한 조직 운영에 성공
한편 방대한 조직과 예산을 가진 NASA가 어떻게 관료주의에 빠지지 않고, R&D와 엔지니어링 기능을 통합한 효율적인 조직이 될 수 있었을까? 이것은 당시 이론으로만 존재하였던 매트릭스(Matrix) 조직을 NASA가 처음으로 구현해 낸데 있었다. NASA는 설립 초기부터 기존에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각종 연구소(센터) 등의 전문 조직을 묶어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여러 프로젝트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결국 NASA는 기획, 프로젝트 관리, 행정을 담당하는 본부와 전문 기능의 센터로 구성된 매트릭스 조직(프로젝트 조직과 기능 조직을 절충한 조직 형태)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찾았다. 우주선 발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비행 추진체, 연료, 재료공학, 비행 시뮬레이션, 로봇 공학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참여와 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들 전문가들을 분야별로 묶어 다양한 센터(NASA에서는 Centers of Excellence로 부름)를 설립하고, 이 센터들의 전문가들이 여러 프로젝트(연평균 80여개의 프로젝트를 수행)에 참여하는 조직운영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와 같은 매트릭스 조직은 연구소(Center)의 전문성을 유지하면서(지식과 경험의 축적), 임무 수행의 효과성(시너지 효과)을 높이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NASA가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R&D 중심의 연구소 보다는 프로젝트 구현 중심의 엔지니어링 조직 같이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NASA는 미션 달성을 위해 PDCA(Plan – Do – Check – Action) 사이클(시스템 엔지니어링)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즉, 수요(임무, 목적) → 기획(Top-down) → 설계/제작 → 시험/발사 → 활용/기술이전으로 업무를 통합하여, 프로젝트 관리에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NASA가 엔지니어링을 중시한다는 것은 구성원의 대부분이 학사, 석사 출신들이고 기술자가 많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국가적인 거대 미션 중심으로 R&D 조직 거버넌스 개편 필요
이상에서 살펴본 봐와 같이 NASA는 미국 정부의 미션수행 조직이면서도 R&D 조직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적인 R&D 조직보다 더 파급력이 큰 신기술 개발과 상용화의 성과를 내고 있다. 물론 많은 예산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바탕이 되었지만, 불가능한 미션을 달성하기 위하여 기존에 없던 방안을 고안해 내고, 이를 구현하기 위하여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기술적 방법을 찾거나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NASA의 성공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션 완수를 위하여는 기술의 완성도가 높아야 하고, 특정의 극한 상황(우주 공간과 우주선이 사용자 중심의 혁신적 실험 공간인 Living Lab의 역할을 함)에서 사용된 첨단기술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민간과 산업계로 이전되는 선순환 피드백이 작동하고 있다. 결국 이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방법, 기술에 대한 고안과 도전, 실현이라는 혁신적 기술(원천기술, 선도기술)의 등장을 촉진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한편 미국은 연방정부가 국가의 명확한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범위 내에서 과학기술을 적극 지원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임무중심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R&D 활동은 뚜렷한 임무를 가진 부처나 기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분권적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전후 미국의 가장 큰 임무는 국방 및 질병 극복이었고, 이에 따라 연방정부 R&D 예산 및 조직은 국방부(DOD), 국립보건원(NIH) 및 에너지부(DOE)에 집중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정부 R&D의 문제점은 탑다운(Top-down) 방식의 국가적 미션이나 실행(문제 해결) 중심으로 조직이 통합되어 있지 않고, 세분화된 기능 중심의 연구소들이 용도가 불분명한 작은 기술 개발이나 지식창출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선진국과 비슷한 기술을 개발되었다고 하지만 실용화 하기에는 완성도가 낮거나, 실용화의 주체가 없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 또한 연구자들이나 기술자 등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가장 창의적으로 새로운 방안과 발명이 가능하도록 하는 프로젝트 운영시스템의 강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는 근본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몇 년 전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미국의 NASA와 같은 조직으로 개편하는 논의가 있다가 수그려 들었던 적이 있다. 이제는 미국의 NASA(항공우주), NIH(보건의료) 처럼 연구를 바탕으로 국가의 근본적인 미션을 수행하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몇 개의 그룹으로 재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국민의 안전이 중요해진 이때 국민안전청(가칭)을 신설하여 소방, 방재, 안전, 구조 등의 기능과 관련 R&D 조직을 산하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최근 IoT, 자율주행차, 에너지, 환경, 스마트도시 등 도시관련 이슈가 커지고 있는데 4차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여 미래도시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교통(자율주행차와 이에 따른 교통시스템의 변화)과 생산양식(4차산업혁명 시대의 산업의 변화)의 변화는 근본적인 도시의 변화를 가져온다. 또한 에너지와 환경 등 지속가능성의 문제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를 대비한 미래도시의 모습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 미래도시와 관련된 기술을 종합적으로 연구개발하고 미래도시 건설을 기획, 추진하는 미래도시연구계획청(가칭) 같은 조직을 만드는 것을 제안해 본다.


[정부 R&D 혁신 시리즈]
1편. 왜 정부의 R&D 정책은 방향을 잃었는가

이명호는 연세대학교 공대를 졸업하고 KAIST에서 IT MBA, 기술경영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삼성SDS 미국지사(실리콘밸리)의 컨설턴트, 농림수산정보센터 사장, 충남도립청양대학 산학협력교수 등 기업, 공공, 학계에서 IT와 관련된 일을 하였다. 최근에는 민간 싱크탱크인 (사)창조경제연구회 상임이사를 거쳐 (재)여시재 선임연구위원으로 디지털사회, 과학기술, 미래산업, 벤처, IT 정책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미래학회 이사를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