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출범한 지능정보기술연구원(AIRI) 설립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에 관여했던 대기업들이 대거 투자를 집행한 데다 원장 선임 절차와 과정도 불투명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 정부가 실체와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민간 연구원에 연간 150억원씩 5년간 총 750억원의 연구 과제를 위탁하기로 하면서 특혜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능정보기술연구원은 삼성과 LG· SKT·KT·네이버·현대자동차·한화생명 등 7개 민간 기업이 각각 30억원씩 총 210억원을 출자해 7월 설립한 연구기관이다. 연구원은 한국 인공지능(AI)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정부는 1월 미래창조과학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플래그십 프로젝트 추진과 지능정보기술에 최적화된 연구수행을 위해 기업·대학·연구소 등 민간주도의 지능정보기술연구원 설립을 발표했다. 3월에는 대통령 주재 민관합동 간담회에서 '지능정보산업별전전략'을 발표하고 추진과제로 민간공동투자에 의한 지능정보기술연구원 설립을 추진키로 했다.

◆ 7개 대기업 출자액 210억원, 자발적인가

26일 정치권 및 관련 업계에서는 지능정보기술연구원의 설립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우선 대기업의 참여 부분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연구원 설립은 정부가 주도한 것이지 민간에서 공동 출자해 연구원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적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7개 대기업이 갹출한 30억원씩 총 210억원의 출자금이 정부의 압력에 의해 나왔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 관계자가 대기업들을 돌아다니며 연구원 설립을 위한 출자를 강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은 "출자사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알아본 결과 정부가 기업들에게 연구원 설립을 위해 출자를 떠안겼다"며 "미래부가 전담기업을 지정해 떠맡긴 것으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 때와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 원장 선임 과정도 불투명…룰 만든 심판이 선수로 뛴 격

정치권에서는 지능정보기술연구원의 원장 선임 과정도 불투명했다고 지적했다. 이미 특정인을 내정한 상태에서 형식적으로 공고를 진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연구원장 결과 발표 이전부터 김진형 전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소장이 원장으로 내정됐다는 말도 흘러 나왔다.

업계 한 관계자는 "김진형 소장이 신임 연구원장으로 내정됐다는 이야기를 SW정책연구소 내부에서 들었다"고 밝혔다.

김진형 원장은 올해 3월 연구원 설립 추진단장을 맡아 연구원 설립에 관한 제반 준비를 추진해 왔다. 그는 연구원 설립에 관한 제반 요건과 절차를 마련하고 연구원장, 연구원 선발을 위한 자격요건, 진행절차 등 일체의 준비를 담당했다.

김 원장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시절 '힘찬경제추진단'에서 추진위원을 맡았다.

안정상 위원은 "링과 규칙을 만든 추진단장이 다시금 선수로 등장한 것은 자신이 수장을 맡기 위해 일련의 설립 시나리오를 만든 것 아니냐"며 "자신이 원장을 맡기 위해 형식적으로 절차를 진행한 모양새다"라고 강조했다.

원장 선임 과정도 불투명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업계에는 연구원 원장 모집 공고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추진단의 존재 여부도 몰랐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한민국 지능정보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최고의 연구원 수장을 선발하면서도 공지나 홍보가 잘 이뤄지지 않아 제대로 된 전문가가 원장으로 추대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실제 미래부가 더불어민주당 측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미래부는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 일주일 동안 원장 선임을 위한 공모를 진행했다. 이어 6일 서면심사, 8일 면접 평가가 진행됐다. 최종 면접 심사는 김진형 전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소장과 삼성종합기술연구원 출신 인사 1명 등 총 2명으로 이뤄졌으며, 면접 결과 김진형 전 소장이 원장 겸 대표이사로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미래부는 원장모집 공고문을 전문지에 광고를 1회 게재(6월 28일)하고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 홈페이지에 1주일(6월28일부터 7월 5일까지)간 배너 홍보를 진행했다. 또 지능정보기술연구원 설립추진단 홈페이지도 원장 모집 공고를 진행했다. 또 원장 선발을 위한 서류 심사는 출자 기업의 부장급이 진행했으며, 면접 심사는 출자 기업의 임원급이 담당했다.

정작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출자사 측의 전문가나 출자사가 추천하는 사람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출자사가 필요로 하는 연구를 위해 설립된 연구원이지만 출자사는 돈만 냈을 뿐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셈이다.

안정상 위원은 "전문지에 1회 광고를 진행하고 방문자가 극히 제한적인 미래부 산하기관 홈페이지에 공고문을 띄운 것은 원장 공고를 외부에 알리고자 했던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라며 "일반적으로 동일한 심사위원들이 서류심사를 거쳐 면접심사를 진행하는데, 이번 심사에서는 서류는 출자 기업의 부장급이, 면접은 임원들이 했다는 점에서 관례를 벗어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미래부, 연구원에 5년간 750억원 연구과제 지원 약속은 특혜

미래부가 지능정보기술연구원에 5년간 750억원의 연구과제를 지원하기로 한 것도 특혜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아직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경험이나 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연구원에 5년간 750억원의 예산을 주고 과제를 무조건 수행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김진형 원장은 7월 2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래부가 향후 5년간 연간 150억원씩 총 750억원의 연구과제를 연구원에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연구원 홈페이지의 채용공고문에도 경쟁력 있는 연구조직으로 성장할 때까지 정부가 국책연구과제로 지원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안정상 위원은 "대학, 기업 등 민간연구원이나 정부 출연연 연구원들은 정부과제 1억원 짜리 하나 따기도 힘든데 미래부는 갖난이 연구원에 연간 150억원이나 되는 거대 과제를 무조건 수여하려고 한다"며 "이는 특혜 중의 특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ETRI를 비롯한 기업, 대학에서 유사한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데, 이를 지능정보기술연구원에 넘기겠다는 것은 정부가 먹거리를 보장해 준다는 사전 약속을 하고 정부 주도로 대기업의 호주머니를 털어 연구원을 설립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