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는 쓰면서 완성시키는 것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나라에선 진화적 획득 못해


제3.5세대급으로 세계적 수준으로 알려진 K2 ‘흑표’ 전차. / 국방부 제공
제3.5세대급으로 세계적 수준으로 알려진 K2 ‘흑표’ 전차. / 국방부 제공
무기체계를 해외에서 사오거나 국내에서 개발해 군에서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획득(acquisition)이라고 한다. 구매 개발이라고 해도 될 말을 굳이 '획득'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쓰는 것은 그만큼 절차가 갖는 전문성에 기인한다. 어떤 무기를 만들지(또는 살지) 개념을 잡는 것부터 최종생산품이 수요자(수요군)에게 공급될 때까지 일련의 과정이다.

게다가 군용무기란 건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민간에서 만들더라도 국가만 보유가 허락된다. 해외거래가 일어나도 국가에게만 팔수 있다. 그것도 서로 믿을 수 있는 나라가 아니면 팔 수 없다. 예를 들어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정부라도 북한에게 국산 전투기나 잠수함을 팔 수 없다. 북한을 유일하게 지원하는 국가인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 / AWIC(주) 대표이사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 / AWIC(주) 대표이사
필자는 어린 시절에는 전투기나 전차니 총이니 다양한 무기를 좋아하는 '마니아'였다. 대부분의 마니아가 그렇듯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런저런 관심으로 무기체계 자체를 들여다보면서 이건 속도가 빨라서 좋고 저건 화력이 쎄서 좋고 등을 비교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키워나가게 된다. 소위 하이테크 무기를 동경했던 셈이다. 그런 하이테크 무기가 태어나기까지 과정은 별로 관심에 두지 않고서 말이다. 그러나 이제 '실무자'가 되고 나니 상황은 전혀 다르다.

일단 무기는 멋 있으라고 만드는 게 아니라 특정한 군사적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존재한다. 즉 실제 수행하는 임무의 목적이나 사용환경 등 다양한 요소를 감안해 어떤 게 필요하다고 규정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렇게 내가 뭘 살지 혹은 만들지 정하고 나면 이제는 현실과 매칭을 시켜나가야 한다. 당연히 모든 일에는 예산이든 시간이든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주어진 예산과 시간 내에 정보와 협상력, 국제관계 등을 바탕으로 구매하거나 보유한 과학기술로 개발하여 만들어 내야만 한다.
방위산업의 혁명적 발전

2006~2015년 방산물자 수출액. / 통계청 제공
2006~2015년 방산물자 수출액. / 통계청 제공
대한민국은 최단기간 내에 방위산업을 키운 것으로 유명하다. 소총하나 생산 못하던 나라가 10년도 안되어 탱크와 비행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과거 우리의 무기체계는 해외의 것을 흉내내는 수준에서 시작했다. 경험과 기술이 부족한 입장에서는 응당 잘 만들어진 것을 흉내내는 것만 잘해도 본전은 건질 수 있었다. 그래서 해외제작사에서 기술지원을 받아 면허생산을 하거나, 기술도입이 여의치 않으면 그냥 베끼기도 한다. 이는 197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된 자주국방의 절박함을 반영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은 M16소총을 면허생산하고 기관총 박격포 견인포 등을 국산화해나가는 기본무기 태동기(1970년대)에서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K1전차나 K200장갑차 K55 자주포에 더하여 울산급 호위함과 포항급 초계함을 본격 생산하는 등 국산무기로 전군을 무장시키기에 이르렀다. 1990년대에 이르면 K1A1전차와 K9자주포가 배치되기 시작하는 등 정밀무기를 완성하는 시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2000년부터는 K-2전차, K-21 장갑차, FA-50 경공격기등 첨단무기가 본격적으로 실전배치되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국내언론들과 연구소는 이러한 국산무기들을 스스로 '명품 무기'라고 부르기까지 이르렀다. 당시 정부는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방위산업'을 지적하면서 제트기 1대의 수출이 중형자동차 1150대를 판매하는 효과를 가졌다면서 치켜세웠다. 방위산업의 수출액은 2006년 2억5000만여달러 수준에서 2011년부터는 23억8000만여달러로 무려 10배 수준으로 껑충 뛰었다.

비리와 피로감에 제 일 못하는 업계


2014년부터 시작된 방산비리 의혹으로 대한민국 방산은 멈춰서고 있다. / TV조선 제공
2014년부터 시작된 방산비리 의혹으로 대한민국 방산은 멈춰서고 있다. / TV조선 제공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은 그야말로 일대 혁명이자 진화를 거듭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다. 빠른 발전이 있으면 그에 따르는 문제들도 동반되기 마련이다. 특히 '명품무기'들이 속속 실전배치되는 2010년 이후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불거졌다. 파워팩 문제로 5년이나 전력화가 지연되었던 K2 전차, 조준경에 해당하는 사통장치가 문제를 반복하는 K11 복합소총, 시험평가과정을 생략함으로써 성능을 보장하지 못한 청상어/홍상어 등등이 언론에서 부각되었다. 한마디로 아직 기술이 무르익지 않은 분야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런 와중에 통영함 비리로 촉발된 방위사업비리로 인하여 여태까지의 모든 사업이 도마 위에 올랐다. 2014년 11월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이 발족되어 100명이 넘는 수사팀이 투입됐다. 전직 총장을 포함해 수십명의 전현직 군간부이 기소되었으며 비리사업 총액은 1조원 대에 이르는 것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황기철 전 총장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무죄가 선고됐으며, 심지어는 클라라 회장님으로 유명한 이규태조차 최근 1심에서 방산비리는 무죄, 100억원대 횡령은 징역 3년 4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런 과정에서 방위사업비리와 방위산업비리가 동일시 되어버렸다. 즉 비리로 수사를 받고 유죄를 선고받은 사업의 상당수가 해외로부터 구매하는 과정에서 오퍼상의 농간에 의해 생긴 비리다. 그런데 방산비리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마치 국내에서 무기체계를 생산하는 방위산업이 비리 덩어리라는 인식이 심어지게 되었다. 결과 이제 국산무기 개발상의 조금의 지연이라도 생기면 방산비리라는 인식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문제가 생기면 사업은 멈춰서기 일쑤다. 이제 방위산업체들은 제 일하기조차 어렵게 되었다.

멈춰선 수리온


알래스카에서 시험평가 중인 수리온 헬기. / KAI 제공
알래스카에서 시험평가 중인 수리온 헬기. / KAI 제공
최근 사업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가 KUH-1 '수리온' 기동헬기다. 수리온은 우리 기술로 만든 헬기로 이미 2012년 6월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고, 2013년부터 전력화를 선언했다. 그런데 최근 수리온 헬기가 기체결빙시험결과가 불합격이라면서 전력화의 중단이 결정됐다. 실전배치를 시작한 지 무려 4년만의 일이다. 언론에서는 마치 새로운 방산비리라도 포착했다는 듯이 '엔진결빙문제를 숨겨' '수리온 겨울엔 못뜬다' 등의 원색적인 헤드라인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애초에 수리온을 '명품 무기'로 선전했다면 이는 잘못이다. 수리온은 대한민국이 처음 만든 헬기다. 헬기에 관해 아직 우리 기술력이 그렇게 100% 헬기에 관해서 축적됐다고 하기 힘든 상황이다. 심지어는 유로콥터(現 에어버스 헬리콥터)로부터 받은 도면을 참조해 기술지원을 받아가면서 만든 기체다. 낡디 낡은 UH-1H를 대체할 헬기가 다급해지자 73개월 만에 개발과 양산을 마치라는 말도 안되는 요구를 실현시킨 게 수리온이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이를 명품 헬기라고 일컫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러나 결빙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차분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정부도 업체도 은폐하려고 한 바 없다. 수리온의 결빙시험은 미국에서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가 올해 7월에 나온 것이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당연히 결빙지역 비행제한을 전제로 '조건부 적투적합' 판정을 받은 것이다. 결빙조건도 저온다습한 상황에서의 결빙으로, 건조한 한국의 겨울과는 상황이 다르다. 개마고원을 비행하는게 아니라면 시험의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도 낮다. 또한 결빙테스트의 101개 항목 중 29개를 충족하지 못했다는데, 대부분 해결이 가능한 부분이다. 단 엔진흡입구에서 허용량 이상 결빙이 생긴 문제는 이후 흡입구 등의 형상변경을 요구할 수도 있어 다소 큰 작업이지만 해결 불가능한 문제도 아니다. 헬기를 처음으로 만들어 보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있을 수 있는 문제다. 굳이 생산중단이나 전력화 중단으로까지 가야 할 문제인지 걱정이다.


▲수리온 개발과정에 관한 홍보영상. / 방위사업청 제공

차분한 접근이 필요하다

K2 소총도 신형에 레일이 장착되면서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위가 기존의 K2소총, 아래가 개량형으로 레일이 장착된 K2C1 소총이다. / public domain 제공
K2 소총도 신형에 레일이 장착되면서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위가 기존의 K2소총, 아래가 개량형으로 레일이 장착된 K2C1 소총이다. / public domain 제공
얼마 전에 K2소총의 개량형인 K2C1 소총이 연사 후에는 뜨거워서 피카티니 레일을 잡을 수 없다는 보도가 나간 바도 있다. 피카티니 레일이란 총열덥개 부분 등에 전술조명이나 레이저 조준기 등 각종장비를 장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구로 보통 금속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사격 후에 총열이 달아오르면 금속제인 레일에도 열이 전달된다. 그래서 보통 레일은 손잡이를 잡고 사격한다. 그러나 K2C1은 100발 사격 후에 표면온도가 최대 60.3도까지 올라갔으며, 이는 손으로 잡고 사격하기 어려운 정도라고 평가된다. 이러한 일은 모든 총에서 마찬가지인 것이라서 특수부대가 사용하는 독일제 HK416도 발사 후 최대 59.5도까지 올라간다고 방위사업청은 밝혔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지적할 부분이 있다.

우선 과거 미군도 처음 레일을 채용했을 때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레일이 뜨거워져 잡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일부 제품에서는 열 발산이 잘 이뤄지지 않아 화상의 위험까지 생겼다. 그리하여 2가지 방향으로 해결되고 있는데, 우선 레일 자체의 설계변경이다. 즉 총몸에서 열이 전도되는 부분을 최소화하거나 해당부위에 열차폐 수단을 강구해 레일 자체의 열기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둘째가 총열의 변경이다. 더욱 강화된 총열을 채용하면 발열문제도 상당부분 해결되고 총기 자체의 신뢰성도 올라간다.

현재 K2C1의 경우 어떠한 부분이 문제인지 필자는 모른다. 과거에 K2C로 사격했을 때 그러한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레일의 설계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열배출 등의 요소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장기적으로 총열을 강화하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발열의 문제로 총기 전체를 문제삼는 것은 타당한 접근이 아니라고 본다. 다만 정부나 제작사의 문제진단과 개선의지가 어떠한 지는 앞으로도 지켜볼 일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문제도 비리나 부실의 문제가 아니라 정상적인 개발과정에서 생기는 기술진화의 문제라고 본다.

우물가에서 숭늉 안나온다
어떤 나라든 어떤 회사든 첫 제품이 나오면 완벽할 수는 없다. 갤럭시노트7의 발화문제처럼 심지어는 잘 만들던 회사도 실수하는 경우가 있다. 첫 사양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 생산해서 운영하면서 성능을 검증하고, 그 다음에 성능을 다시 개량해서 생산한다. 이렇게 다양한 배치 또는 블록 생산을 거쳐서 제품이 점점 완벽해져 나간다. 소위 진화적 획득의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여유가 없다. 애초에 수리온의 개발과 완성에 걸린 시간이 73개월이다. 말도 안 되는 시한을 일단 잡아 개발하고,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일단 그 해외에 있는 기술을 많이 들여와서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해외기술을 들여와서 만들다 보면 내 걸로 소화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음에도 계속적으로 일을 진행하고 밀어붙이고 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들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여유가 없다. '니들이 제대로 만들지 못 했으니까 페널티 받아야 돼, 손바닥 맞아야 돼. 분명히 비리가 있을지 모르니 조사해 볼 거야' 이런 인식들이 팽배하다. 물론 잘못한 게 있으면 그에 따른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처음 하는 일이고 그로 인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하면 정상적으로 기술이 진화하도록 할 수 있을까 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고는 앞으로 우리나라 방위산업에 발전은 없다. 이렇게 성급하게 접근할 것이라면 국내개발은 앞으로 포기하자. 그냥 해외 나가서 사오는 게 속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