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요청을 거절했을 때 피해가 우려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재계 2위 현대자동차그룹이 검찰의 최순실 게이트 중간수사결과 발표 내용을 사실상 인정했다. 과연 현대차는 이번 최순실 게이트의 피해자일까, 동조자일까.

현대차는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 현대차는 차은택씨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에 62억원 상당의 광고를 밀어주고 최순실씨 지인 회사 KD코퍼레이션에 11억원 상당의 물품을 납품받았다. 현대차는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검토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현대차는 앞서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128억원을 내 삼성(204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금액을 출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검찰은 지난 12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참고인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현대차는 범죄에 대한 동조 사실을 대다수 인정하면서도 사과나 반성 대신 "강요 때문이었다"며 피해자 코스프레에 급급한 모습이다.

현대차는 "플레이그라운드의 광고 수주는 경쟁 입찰을 통해 선정했다"며 "62억원 가운데 대부분은 언론 광고료이며, 실제 지급된 금액은 13억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어 "KD코퍼레이션으로부터 11억원 상당의 물품을 납품받은 건 사실이나 이 업체의 제품이 기존에 사용했던 제품보다 24% 비용절감 효과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신생업체에 광고 일감을 몰아주고도 경쟁 입찰에 의한 결과였다거나 강압으로 특정업체의 제품을 납품받고도 비용절감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형법상 우대를 받거나 적어도 불이익을 피하고자 돈을 줬다면 뇌물죄에 해당한다. 아울러 플레이그라운드, KD코퍼레이션처럼 제3자로 하여금 재산상 이득을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재산상 손해를 입히는 것은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가 특정 업체에 광고 몰아주기나 납품하도록 해놓고도 피해 금액이 적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란 식의 해명을 내놓은 것은 어불성설이다.

20여년전 사법부도 비슷한 사건에 대가성을 인정했다.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당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은 성금을 냈다고 주장했지만, 사법부는 대가성을 인정했다. 당시 혐의를 받은 대다수 총수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과거처럼 경제발전에 기여한 점을 들어 대기업과 총수들을 봐줘도 된다는 식의 논리로는 수십 년간 지속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검찰은 현대차를 비롯한 관련 대기업에게도 뇌물죄와 배임죄 등의 혐의를 철저히 밝혀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