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3일간 부산에서 드론쇼가 열렸다. 많은 국내외 기업, 대학, 연구소, 공공기관이 전시장을 채웠다. 작년과 비슷한 규모, 큰 변화 없는 레이아웃이라 분위기는 익숙했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드론산업의 한 귀퉁이에 걸쳐있다 보니 드론쇼 자체를 바라보는 입장이 한없이 낭만적이지는 않다. 전시회 결과보고는 한참 후에 나올 것이고, 나온다 하더라도 일정부분 포장되어 있을 테니 그 자료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으로 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올해 드론쇼는 숫자와 상관없이 흥행에 실패했다. 드론의 인기가 시들었다기보다 전시회 자체의 상품성이 부족했다.

수렴되는 플랫폼이 던지는 메시지

작년에 비해 우선 눈에 띈 점을 꼽으라면, 기체 플랫폼이다. 각 업체들이 내놓은 기체형상이 특정한 형태로 수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작년에는 실험적인 모델이 많았다. 콘셉트 단계에서 표현된 기체가 다수였던 탓도 있겠지만,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발전시키다보니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찾아진 것이다. 업체들끼리 약속을 하진 않았겠지만 '스탠다드'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특정한 형상으로 수렴하는 것은 드론개발의 현실성이 일정부분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기존 항공업계가 콘셉트만 가지고 비행하는 것이 아니듯, 드론업계도 표준이라 부를만한 형상체계가 자리 잡았다는 신호다.

특정한 형상이라 함은,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몇몇 대표적인 컨슈머 제품인데, 거기서 어떤식의 최적화를 만들어 낼 것인지가 당분간 업계에 던져진 숙제다. 이미 FC를 포함한 각 단위 부품은 시장선도제품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범위를 빠져나와서 상품성을 만들어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소프트웨어 역시 상품성이 높은 다양한 아키텍쳐와 강력한 오픈소스까지 보편화를 이룬 만큼 그런 것들의 틈새를 비집고 만든 독자적인 개발품을 글로벌 시장에 안착시키기란 무척 어렵다.

그러다보니 국내 드론업계는 '자의반 타의반', '알게 모르게' DJI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세력이 장악한 컨슈머 시장을 피해서 맞춤형 생산이 가능한 산업분야를 택할 수밖에 없다. 강요된 결정이기도 하거니와 남은 선택지가 그것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출발과 선택이야 어찌됐던 간에, 결과적으로 집중하는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면 쓸데없는 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는데, 따져보면 그렇지 않아서 문제다. 대다수가 큰 차별점이 없는 기술 수준에서 아슬아슬하게 선긋기로 버티는 모습은 나만 느낀 것이 아니다.

전시장에 머무는 동안 독자적인 연구개발의 배경 위에서 앞선 기술력을 가진 해외 업체의 도움으로 상품화에 집중하는 중소기업을 만났다. 처음엔 몇 마디 말로 시작했지만 3일을 연달아 마주치니, 쉽게 꺼내지 못하는 속내와 미래비전까지 들을 수 있었다. '이런 기업이 왜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을까?'를 다시 생각해 봤다. 앞서 기술민족주의를 잠깐 언급했었는데, 최근의 몇몇 정부지원책과 지자체 협력사업은 국내기술, 국내기업, 지역기술, 지역기업이라는 울타리가 명확해서 해외기업과 연결되어 있거나 핵심기술의 국산화가 아니라면 애초에 기회조차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국경을 넘나들며 기술력을 확보하는, 이른바 중간지대에 있는 국내기업은 그런 정책범위에 들어오질 못한다. 진보적인 관점에서 '국내기술'이라는 단어의 산업적 정의를 새롭게 해야 될 필요성이 느껴졌다.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단위 산업을 하나의 정책으로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국내 산업을 육성한다'는 좋은 취지가 또 다른 역효과를 낳고 있는 듯해서 아쉽다.

농업용, 택배용, 환경감시용, 재난관재용 등 그럴싸한 이름을 달고 있지만 이번 드론쇼에서 선보였던 대부분의 시스템은 큰 차별점이 없었다. 철저하게 사용자 중심으로 다듬어진 제품도 없고 오직 성능에 집중한 '매니악'한 제품도 없었다. 왠지 비슷비슷한 지점에서 신사협정을 맺고 있는 듯 보였다. 그게 현실이라면 이번 드론쇼는 국내 드론업계의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선택 가능한 돌파구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자리가 됐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그런 부분을 반영하는데 역량 발휘를 못한 운영위원회의 존재감이 조금 아쉽다. 운영위원회는 업체와 연사를 섭외해서 데려다 놓는 일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어떤 비전으로 스스로를 어필하라고 주문하며 잔칫상을 차리는 전권을 가지고 있다. 분초를 다투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구도에서 느긋한 입장으로 관망하며 따라가는 작전만 쓰다가는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조차 놓쳐버린다.

빈약한 콘텐츠와 불명확한 콘셉트

누구라도 만족시킨다는 뜻은 그 누구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뜻과 같다. 이번 드론쇼의 가장 아쉬운 점은 "그 누구"가 빠졌다는 것이다. 전시회라는 특성이 포괄적이라고 하지만, 해마다 집중해야 될 대상을 찾아 심도 있는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 옳다. 보통 그해 컨퍼런스의 주제가 해당 전시회가 주목하는 아이덴티티다. 이번 주제는 '드론의 진화와 확장'인데 그럴싸한 타이틀에 비해 전시장 어디에서도 '진화'와 '확장'은 볼 수 없었다. 그간의 내부 진행사정을 모르는 입장에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나,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드론쇼를 준비했고, 그 점을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결과가 이랬다는 것은 주어진 책무에서 '눈 가리고 아웅'만 한 것으로 보여 진다. 그게 아니라면 운영위원회의 구성원리와 운영방식에 문제가 있는지 의심할 차례다. 운영위원 개개인의 역량이야 다 높겠지만, 뭉쳐서 시너지를 만드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의견이 충돌하고 이해관계를 고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섞이면서 배를 어디로 보낼지 고민만 하다가 항구에 묶어두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내년 드론쇼가 겨우 방어전을 치른 올해 성적을 뒤집으려면 기획과 운영에서 의미 있는 결정을 해야 된다. 재치 있고 신선한 감각을 수혈하지 않으면 아이들의 관심도 사로잡지 못하는 힘 빠진 전시회를 또 치러야 한다.

운영위원회의 역량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분야가 컨퍼런스다. 현장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정리하면 "올해 드론쇼는 경찰이 살려준 것과 마찬가지"인데, 내년에도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컨퍼런스에 참석했다가 예상보다 실망이라며 중간에 빠져나온 모 업체 대표는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였겠지만 아리송한 표정으로 "컨퍼런스보다 컨퍼런스책자를 그럴싸하게 잘 만들었다"고 했다. 작년에 컨퍼런스의 틀을 만들었으면 올해는 내용에 신경을 더 써야 하는데 인터내셔널프리미어는 고사하고 이미 공유된 이야기의 반복이라 "새로울 것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한국 드론산업의 민낯이 살짝 보인 셈이다. 다들 말은 뻔지르르하게 잘하지만 실상을 까보면 차별화된 기술이나 킬러콘텐츠가 없다. 이 대목에서 운영위원회의 역할이 다소 아쉽다. 국내 드론산업의 한계와 역량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작년과 다름없는 무난한 판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한 것 같다. 혹시나 해외 컨퍼런스와 비교해 보고 싶다면 로 가서 대표적인 전시회의 컨퍼런스 내용과 비교해 보길 바란다. 5월 미국 달라스에서 열리는 AUVSI의 컨퍼런스 내용도 좋은 참고자료다. 대표적으로 Mapping & Surveying 섹션만 비교해 봐도 차이가 선명하다. 우리 드론쇼의 컨퍼런스는 아직까지 현황, 미래, 방안, 활용성 등 해당 분야의 수면에서 맴도는 수준이다. 반면에 해외 주요 전시회의 컨퍼런스는 상당히 구체적, 분석적, 실증적인 내용으로 구성된다. 드론쇼의 수준을 높이려면 반드시 따라 잡아야할 부분이다.

다시 느껴지는 개와 늑대의 시간

몇몇 협회는 드론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로 연합을 발표하고 드론쇼 자리를 빌려 광고하는 데만 열중했다. 그들의 거대한 취지와 실행의지를 의심하진 않는다. 뜻과 힘을 모음으로서 또 다른 지점이 제시된다면 환영할 일이다. 다만, 시장선점을 이유로 서로가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한 채 덥석 손을 잡으면, 조만간에 '한국 드론판은 몇몇 단체나 특정 인물이 휘젓고 다닌다'는 볼맨 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 중에는 진짜 인물도 있겠지만 가짜 인물이나 단체도 섞여 있어서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 어렵게 변한다. 가짜는 얼른 진짜가 되기 위해 진짜 옆에 붙어서 체취를 훔쳐 바르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드론산업계를 포기하진 않을 테니 어떤식으로든 드론쇼와 계속 엮이게 된다. 드론쇼 주변에 진짜로 변장한 가짜들이 많아지면 흥행은 더 어려워진다. 그럴 바에 차라리 부산을 떠나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전시회를 넘겨버리는 것이 낫다. 우선 드론관련업체의 절반이상이 서울과 수도권에 포진하고 있는 만큼 그들 안방에서 내실을 채우라는 발전을 위한 양보로 포장이 되고, 시퍼렇게 눈을 부릅뜬 비판의 시선이 부산보다 많기 때문이다. 지금 부산에는 서로 눈치만 보고 말을 아끼고 있을 뿐 날이 선 비판과 애정으로 드론쇼를 살피는 시선이 턱없이 부족하다. 판이 작아서 그런지 한 두 다리 건너면 다 아는 구조에서 입 바른 소리를 던지는 용기도 부족하다. 고질적인 한국병이 드론쇼만 비켜갈리 만무하지만 손을 쓸 수도 없을 만큼 곪기 전에 어느 정도 대비하는 건 가능하다고 본다.

어찌됐건 전시회를 준비하느라 고생이란 고생은 진탕하고, 싫은 소리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은 벡스코 관계자들이 안쓰럽다. 애써 판을 벌렸는데, 잘되면 공(功)은 엉뚱한 사람들한테 돌아가고, 안되면 덤터기를 써야 되는 그들의 입장은 이런 기회를 통해 거론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모두가 드론을 중심으로 "잘 해보자"고 뭉치는 곳이 드론쇼 아니던가. 불과 두 번째 전시에서 '형만 한 아우 없다'는 소리가 나왔다. 첫 번째 전시를 두 번째 전시가 넘지 못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냉철하게 점검할 시점이다. 남의 잔치에 이러쿵저러쿵 입을 여는 나도 불편하다. 문을 나서면 다 아는 입장이고 싫은 소리했다고 미운털 박히는 건 일도 아닌 세상이 아닌가. 생뚱맞게 링컨을 빌려보겠다. 모두의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드론쇼를 위하여 진심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모아지길 기대해 본다.

박승근 드론전문가는 외신기자 출신으로 사진학,석사,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드론저널리즘, 영상인류학을 중심으로 경성대, 부경대 등에서 외래교수로 활동 중이다. 드론으로 알려지기 전까지 다큐멘터리사진가, 수중사진가로서 활동했으며, 국내 현존 사진가로는 최초로 박승근의 해양다큐멘터리사진 938점은 국립해양박물관에 기증돼 기록적 가치와 미학적 가치 등을 인정받아 국가유물로 지정 받았다. 2015년 네팔지진 당시, 국제구호단체와 협력해 드론을 활용한 구조현장지원팀을 이끌었으며 이는 대규모 재난지역에서 드론이 활용된 최초의 사례로 UN에 보고됐다. 당시 드론촬영을 통해 확보한 영상데이터를 현장에서 스펙트럼분리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붕괴된 건물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과 철근상태를 구조팀에 제공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공공수요무인이동체핵심기술개발사업 자문위원, 한국연구재단 무인기핵심기술사업 평가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드론컨설팅을 제공하는 SM9 SkyTech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