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이 주전산기(OS) 메인프레임을 교체하는 2500억원 규모의 차세대 프로젝트 구축 사업을 본격화한다.

서울 여의도 소재 KB국민은행 본점 전경. / 조선일보 DB
서울 여의도 소재 KB국민은행 본점 전경. / 조선일보 DB
KB국민은행의 차세대 시스템 구축 사업은 올해 금융권에서 진행되는 단일 프로젝트 중 규모가 가장 크다. KB국민은행이 이번 프로젝트 추진을 본격화함에 따라 국내 시중은행에서 운영 중인 마지막 메인프레임의 시장 퇴출도 머지않은 것으로 전망된다.

KB국민은행은 3월중 관련업계에 차세대시스템 개발 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할 예정으로, 이달 중장기정보화전략계획(ISP) 완료 보고회를 진행하기로 했다. 또한 3월 열리는 이사회에서 차세대 프로젝트 추진 계획을 확정할 계획이다.

현재 관련업계에서는 KB국민은행이 운영 중인 주전산 시스템인 'IBM 메인프레임'을 '유닉스'로 교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메인프레임은 단일 시스템 중 가장 속도가 빠르고 안정적이지만, IBM의 폐쇄적인 운영정책으로 금융 신상품 등을 신속하게 개발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코어당 30억원에 육박했던 높은 유지보수 비용도 메인프레임 운영의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유닉스 서버의 빠른 기술 발전 속도도 메인프레임의 시장 퇴출을 가속화한 요인으로 작용했고, 이후 IT 인프라가 클라우드 서비스 환경으로 전환되면서 IBM 메인프레임의 설자리가 사라졌다.

메인프레임의 퇴출은 단순한 주전산기 교체를 넘어 '관치 금융' 시대의 종말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 2014년 9월 당시 KB금융지주 수장이었던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KB국민은행장은 메인프레임 주전산기 유지를 놓고 극명한 입장차이를 보였고, 결국 두 사람의 이견은 감정싸움으로 심화돼 결국 두 수장 모두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2014년 4월 24일 KB국민은행 이사회는 IBM 메인프레임을 유닉스 시스템으로 교체하기로 의결했다. 이후 이건호 행장과 정병기 상임감사위원은 교체 결정의 근거가 된 보고서에 오류가 있다며 전산사고 등을 예방하려면 메인프레임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은행 사외이사들은 이건호 행장의 이 같은 주장을 거부했다.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 이건호 행장과 은행 사외이사의 갈등으로 보였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은행 사외 이사를 장악한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행장의 대립이었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의 극심한 대립은 결국 KB금융의 경영악화로 이어졌다. KB국민은행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 결국 금융감독원이 나서 임 회장과 이 행장 모두에게 중징계를 내리는 것으로 당시 상황은 종결됐다. 당시 KB사태는 재무관료 출신인 임 회장과 연구원 출신의 이 행장이 대립한 것으로, 사실상 정권의 낙하산 회장과 연피아(연구원+마피아) 출신 행장의 처절한 밥그릇 싸움이라 할 수 있다.

공정하지 못했던 한국IBM의 영업방식도 KB사태를 격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셜리 위 추이 전 IBM 지사장이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에게 자사 메인프레임을 계속 써 달라고 청탁한 이메일이 세간에 공개되면서, KB국민은행의 메인프레임은 단순한 IT인프라가 아니라 납품 비리의 상징물로까지 인식됐다.

권 관계자는 "KB금융의 차세대시스템 도입은 단순히 IBM에서 유닉스로 교체하는 차원을 넘어 담고 있는 의미가 남다르다"며 "주전산기 교체는 그동안의 트라우마를 완전히 벗어던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인프레임 사태로 휘청거린 KB금융그룹은 업계 1위 자리를 신한금융그룹에 내주는 굴욕도 감수해야 했다. 후임으로 선임된 윤종규 회장은 KB금융지주 회장과 KB국민은행장을 겸하며 조직내 갈등을 봉합하는데 주력했고, 약 3년 만에 업계 선두자리를 놓고 신한금융그룹과 경쟁하는 수준으로 조직을 정상화시켰다.

현재 KB국민은행은 IBM과 2020년까지 메인프레임 사용계약을 체결한 상태로, 매달 90억원 상당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에 맞춰 국민은행의 차세대시스템 개발 사업도 오는 2020년 개통을 목표로 추진될 전망이다.

한편, KB국민은행 차세대 구축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LG CNS와 SK주식회사 C&C사업의 수주전에도 관련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올해에는 KB국민은행 프로젝트를 포함해 금융권에서 총 10여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들 프로젝트 중 SK주식회사 C&C사업은 올해 초 2300억원 규모의 산업은행 차세대 프로젝트를 수주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