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빠른 인터넷 속도와 높은 스마트폰 사용률을 자랑한다. 하지만 세계에서 눈에 띄는 한국의 최첨단 벤처 기업은 손에 꼽는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에 대해 "한국이 첨단 기술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개발에 뒤처진 것은 관공서에서 요구하는 불필요한 서류작업(red tape)과 위험 회피성 문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16일(현지시각) FT는 "한국의 기술 기업을 좌절시키는 규칙과 관습"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빠른 인터넷 속도, 매우 높은 스마트폰 사용률을 나타내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통신 환경에서도 고부가 가치를 가진 혁신이 나오지 않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특히 "핀테크 뿐만 아니라 사물인터넷(IoT), O2O, 인공지능(AI), 데이터 분석 등 첨단 기술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개발에 뒤쳐져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가 한국에 혁신 기업이 부족한 이유로 불필요한 서류작업과 위험회피성 문화를 꼽았다. / 조선일보 DB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가 한국에 혁신 기업이 부족한 이유로 불필요한 서류작업과 위험회피성 문화를 꼽았다. / 조선일보 DB
지난해 블룸버그 통신이 발표한 '블룸버그 혁신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연구개발능력, 기술 집약도, 특허 활동과 같은 지표에서 독일과 일본을 앞질렀다. 하지만 미국 통신장비업체 퀄컴이 조사했을 때 다수의 한국인은 기술 혁신을 육성하고 보호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FT는 IT산업이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로 옮겨가고 있는데도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이 하드웨어에 집중하면서 한국이 혁신에서 우위를 상실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FT는 "한국 정부는 정책적으로 벤처 기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국제 사회에서 손꼽히는 벤처 기업은 거의 없다"며 "현 정부에서 중소기업에 수십업 달러를 투자하고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의 사업 분야에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대기업 또는 재벌의 그림자 안에서 성장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FT는 또 벤처 기업이 글로벌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언어와 문화 장벽을 꼽았다. 예를 들어 1999년 페이스북 등장 이전 한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싸이월드'는 원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꼽힌다. 하지만 언어와 문화 차이로 인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지 못했고, 이용자정보 해킹 사건,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신규 서비스의 등장으로 결국 SK커뮤니케이션즈는 싸이월드를 분사했다. FT는 "한국의 주요 메신저인 '카카오톡'도 해외 진출을 꿈꿨지만 성과가 변변치 못하다"고 말했다.

FT는 또 한국의 체제 순응적인 문화가 독창적인 생각을 가로막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 공동창업자인 이택경 매쉬업 엔젤스(Mashup Angels) 대표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정말 혁신적인 서비스를 가진 벤처 기업은 거의 없으며 상당수의 벤처 기업은 해외에서 검증된 모델을 한국에 도입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FT는 이외에도 정부의 규제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차단한다고 비판했다. 전 세계 최대 차량공유서비스업체 우버(Uber)는 규제에 발이 묶여 승용차 공유서비스 '우버X' 서비스를 중단했고 숙박공유서비스 에어비앤비(Airbnb) 역시 규제와 씨름하고 있다는 것이다. FT는 "자율주행기술 및 드론 비행, 인터넷 은행 도입도 엄격한 규정에 묶여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