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트리 4.0을 추진하면서 기본소득을 논의하지 않는 독일

우리 사회에서 4차산업혁명을 둘러싸고 여러 논의가 많다. 4차산업혁명의 동력을 만드는 문제에서부터 규제개혁, 기본소득 등 여러 주장이 많은데, 정작 국민이 우려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는 빠져있다. 국민의 가장 큰 걱정은 지능화, 자동화로 미래에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일 것이다. 특히 청년 실업과 고용 불안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일)'에 대한 불안이 높다. 그러나 이 문제는 사회적 공론이 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다.

지난 4월 초에 한국노동연구원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한국사무소가 공동 주최한 '노동 4.0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제목의 국제회의에 참석했었다. 많은 주제를 독일 노동조합 간부들과 대학교수들이 발표했다. 발표 후 한 청중이 독일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되고 있냐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독일에서 온 교수는 독일 노동계와 학계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다. 독일의 기업체 CEO 모임에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독일 노조에서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기본소득 논의조차 반대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간단히 답변을 요약하면, 기본적으로 노동은 신성하며, 인간에게 주어진 소명이기 때문에 노동 없는 사회를 생각하지 않는다. 독일 노조도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이에 대한 대책은 우선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들에 대한 다른 직업으로의 전직 훈련(교육)이다. 두 번째는 새롭게 생길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학교 등에서 키워주는 것이다. 물론 노동 시간 단축이 병행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래도 일자리가 부족하고 실업자가 생긴다면 기본소득이 필요할 수 있다고 본다는 취지의 답변이었다. 즉 사회복지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독일에서 기본소득 정책은 맨 나중에 검토할 수 있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물론 작년에 세계 최초로 스위스(국민소득 1인당 9만달러의 고소득 사회복지 국가)에서 기본소득 월 300만원을 지급하는 국민투표가 부결됐지만, 노사정 협력이 잘되는 사회민주주의 국가인 독일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없다는 것은 필자에게 의외의 충격이었다. 우리 사회는 국제적인 흐름에서 뭔가 순서가 바뀐 논의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른 독일 발표자는 독일 노조들이 2000년 초 슈뤼더 총리의 노동 개혁에 반대해 어려움에 부닥쳤는데, 당시도 자동화로 일자리가 감소하는 시대였고, 이에 대한 노조의 저항은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4차산업혁명(Industry 4.0)에 따른 자동화에 대해서는 다르게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즉 시대적인 대세에 따르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노사가 서로 발전할 수 있는 질 좋은 노동을 추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인더스트리 4.0과 동시에 노동 4.0을 추진하면서 사회 발전을 꾀하는 독일

4차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은 독일 정부가 추진한 Industry 4.0에 기원을 두고 있다. 독일은 저출산 고령화라는 숙련된 노동력 감소의 문제와 독일의 제조 경쟁력을 위협하는 미국 주도의 디지털화에 대응해 몇 년간의 논의와 준비를 거쳐 전 국가적인 전략으로 Industry 4.0을 추진하고 있다. Industry 4.0이라는 자동화의 고도화에 대응한 사회적 논의 결과가 Work 4.0이다. Industry 4.0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Work 4.0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양질(좋은)의 노동, 디지털 시대의 전문인력, 새로운 일자리를 위한 교육 등 Industry 4.0의 성공을 위한 한 축으로서 노동의 역할을 새롭게 모색하고 있다. 그리고 그 논의의 결과를 올해 초 'Work 4.0 백서'로 발간했다.

디지털화되어가는 사회구조 속에서 근로의 수준을 높게 유지하기 위한 생산이익의 분배, 플랫폼형 대기업들의 이윤에 대한 세금 부과 문제, 공공재와 서비스의 현대적 인프라 구조 구축 등 거시 경제적인 차원에서 틀을 만들고 그에 따라 노동정책을 짜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노동정책과 사회정책이 긴밀히 연결하는 노력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우리의 최종 목표는 국민 100%의 근로라는 것을 천명하고 있다.

물론 독일의 노동 4.0의 논의 배경과 상황이 우리나라와 아주 다르겠지만, 이 '노동 4.0 백서'는 직업 세계, 노동시장 내에서 일어나는 변화들과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결과들을 축약해 다루고 있다. 오늘날 정상으로 간주하는 현상뿐 아니라 미래를 위한 전망과 시나리오들, 그리고 가능성, 즉 인간에게 유용한 이익을 가져다주며 우리의 경제를 성큼 앞으로 나가게 해 줄 '노동'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백서는 2년에 걸친 독일 사용자들과 노동자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대화와 연구의 결과다.

독일은 또한 시민들과의 대화를 이끌기 위해 '미래(Futurale)'라는 명칭의 영화 시리즈를 독일 전역의 18개 도시의 극장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이때 시민들에게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다 : 디지털화되어가는 사회적 변동 속에서 '좋은 노동'이라고 하는 이상은 어떻게 유지되고 강화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사회에서도 4차산업혁명에 대한 준비는 디지털 시대에 미래의 산업과 노동에 대한 사회적인 컨센서스를 마련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그런 취지에서 필자가 일하고 있는 여시재에서는 독일 Work 4.0 백서를 요약 번역해 발간했다. 독일 Work 4.0 백서가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기 위해 백서를 발간한 독일연방정부 노동사회부 장관의 서문을 여기에 옮겨 본다(서문은 여시재 객원연구위원인 최재정 차의과학대학교 교수가 번역했다). 요약 번역본은 여시재 사이트에서 받을 수 있다(http://yeosijae.org/projects/84).

독일연방정부 노동사회부 장관이 쓴 Work 4.0 백서 서문

하루 8시간 1주일 36시간 노동, 직장(공장) 내 위생 상태와 근무 보장 조건의 개선, 아동노동의 금지. 이상과 같은 사항들이 '미래의 노동'이 지향해야 할 이상향으로 그려졌던 때가 있었다. 오늘날의 이상향은 완전히 다르다. 시원한 바닷가에 편안히 앉아 노트북을 무릎에 놓고 일하는 창의적인 지식노동자, 혹은 컴퓨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다음 주 원하는 작업스케줄을 계획하는 생산직 노동자 등이 현재 우리의 이상향이다.

미래의 노동시장은 오늘날과 상당히 달라질 것이 분명한데, 과연 오늘날의 상황보다 더 나을 것인가? 우리는 더욱 자율적으로 우리의 노동을 결정하고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한 노동 환경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인가? 50대에 다시 한번 대학을 다니거나 새로운 직업을 갖기 위한 교육을 받게 될 것인가? 기계들은 우리의 직장을 앗아갈 것인가, 아니면 기계가 다양한 개선을 가능케 하고 생산력을 높이게 되어 새로운 직군을 창출하게 될 것인가?

'노동 4.0 (Arbeiten 4.0)'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우리는 이상과 같은 질문들을 녹서(Grünbuch)의 형태로 던졌으며, 사회 각계각층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토론이 이루어졌다. 공기업, 협회, 일반 기업, 학문 분야의 전문가, 일반 시민들이 이 토론에 참여했다. 토론에 참여해 주시고 좋은 의견들을 내주어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준 모든 분에게 깊이 감사를 드린다.

녹서를 통해 질문을 던졌으니, 이제 그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을 담은 백서를 발간해야 할 차례다. 이 백서에는 상기한 녹서를 통해 시작된 대화들로부터 도출된 결론들이 요약, 정리되어 있다. 이로써 우리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벌어진 사회적 논쟁들에 대해 기록하고자 하는 것이며 연방정부와 이를 넘어서는 영역에서 노동, 직업 세계의 미래를 사회적으로 형성하기 위한 동력을 얻고자 한다.

독일을 위한 디지털 전환이 무척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 연방정부의 '디지털 아젠다'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다양한 플랫폼들 속에서 '수단, 도구(ressort)'와 관련된 주제가 다루어진다. 광대역망의 구축, 인터넷 접속 가능성의 확대, 철저한 개인정보 보안, 새로운 생산 개념인 'Industry 4.0'의 실현 등이 현재 우리가 세우고 있는 경제적 기준이다.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노동 4.0'의 대화 프로세스가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이미 현시점에서도 디지털화로 인한 변화들, 특히 노동시장을 바라볼 때의 변화들이 양극화되고 있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 이와 같은 변화는 미래의 가능성을 여는 계시이자 새로운 삶의 느낌이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 이와 같은 변화는 불안감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다양한 대화들에 귀를 기울여 본 나의 개인적인 결론은 이렇다. 우리는 디지털화로 인해 비롯되는 기회를 경제, 직업, 좋은 노동을 위해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일자리가 사라지고 현재 통용되는 자격증들이 무효가 되며, 인간들 간에 생길 계급 격차, 관계의 상실 등과 같은 문제들에 대한 걱정들을 미래를 위한 밝은 전망으로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기회가 새롭게 창출되는 영역이 어디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우리의 미래가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디지털화 현상은 물론 이 백서의 가장 중요한 주제다. 최근 세상 어디에서나 모든 일에 있어서 매우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지털화 현상만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유일한 요소가 아니다. 이 백서는 단지 한 주제만을 다루고자 하지 않는다. '노동 4.0'은 전체 직업 세계, 노동시장 내에서 일어나는 변화들과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결과들을 축약해 다루고자 한다. '노동 4.0'은 오늘날 정상으로 간주하는 현상뿐 아니라 미래를 위한 전망과 시나리오들, 그리고 가능성, 즉 인간에게 유용한 이익을 가져다주며 우리의 경제를 성큼 앞으로 나가게 해 줄 '노동'을 주제로 삼고 있다.

우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고용주들이 요구하는 노동 유연성에 대한 요구와 노동자의 요구 간에 정당한 협상이 이루어지길 원한다. 또한 직업 재교육과 관련된 정당한 단체협약도 필요하다. 이 단체협약의 결과가 노동현장에서의 활동들을 이전과 차별화된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시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에의 참여, 투명하고 정당한 임금체계의 구축도 우리의 목적에 포함된다. 가정 친화적이며 개인의 취향과 필요에 따라 특성화된 시간 활용을 인정하는 노동시간의 자유로운 선택, 혁신적인 노동시간 체계가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미래의 직업 세계에서 노동자의 사적 영역이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개인정보보호의 문제도 중요할 것이다. 인간의 노동, 노동 부담을 줄여주는 기술의 활용, '건강한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노동자 권리 보호법의 구축, 노동자의 경영 참여 시스템, 공동결정제의 도입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자영업자들의 사회보장제도도 개선되어야 하며, 플랫폼 경제 내에서의 정당한 노동조건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다양한 삶의 형태와 급속한 사회 변동들을 소홀히 다루기보다는 진지한 태도로 수용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가운데 함께 구성해 나가고자 하는 명실상부한 사회국가(사회민주주의 국가를 의미하는 독일 표현_역자주)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노동 4.0'을 통해 우리는 사회 내 모든 분야와 수준에서 노동을 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그 과정이 잘 진행되어 나가도록 도와야 하며, 이를 위해 우리가 이제 새로운 길을 걸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명료하게 깨닫게 됐다. 나는 우리가 택한 이 방식, 즉 범사회적, 범국가적 협력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모델이야말로 독일이 '좋은 노동(Gute Arbeit)'을 형성해감에 있어서 선구자 역할을 하도록 하는 최선의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미래의 노동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와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 백서는 2016년 11월 '노동 4.0'의 대화 과정을 마무리하는 콘퍼런스 개최 시 앞으로 전개돼야 할 후속적인 토론을 이끌기 위해 제공됐다. 이 백서는 이제까지 이루어진 대화들을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그로부터 결론을 도출해 낸 결과다. 어떤 부분은 구체적으로 정치 분야와 관련되어 있고, 몇 개의 테마는 정치와 공기업 간의 협업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또 다른 몇 가지 테마는 사기업들과 개인 자영업자들(소규모 상공업자들)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모든 문제을 다룸에 있어서 주도적으로 작용하는 시각은 독일연방 노동사회부가 지향하고 있는 '노동세계 4.0'에서 마련될 전망이다. 이 전망은 또한 독일 연방정부의 여타 부서들의 영역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이 부분들에서 상호 이해와 입장 조율도 앞으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앞으로 이 모든 문제에 있어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독일 Work 4.0 백서 요약 번역본은 여시재 사이트에서 받을 수 있다: http://yeosijae.org/projects/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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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 연구위원은 연세대 공대를 졸업하고 KAIST에서 IT MBA, 기술경영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삼성SDS 미국지사(실리콘밸리)의 컨설턴트, 농림수산정보센터 사장, 충남도립청양대학 산학협력교수 등 기업, 공공, 학계에서 IT와 관련된 일을 했습니다. 현재는 민간 싱크탱크인 (사)창조경제연구회 상임이사를 거쳐 (재)여시재 선임연구위원으로 디지털사회, 과학기술, 미래산업, 미래도시, 벤처, IT 정책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미래학회 이사를 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