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9일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를 통해 진행된 인간과 인공지능의 바둑 대결은 ICT 업계 전반에 걸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직 인간을 따라잡기에 벅찬 것으로 보였던 인공지능(AI) 기술이 머신러닝 및 딥러닝 기술에 힘입어 어느덧 인간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수준까지 성장했음을 증명하는 일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세돌 9단을 상대로 4승 1패의 성적을 기록한 '알파고'는 2016년 한 해 동안 폭발적으로 관심이 높아진 인공지능 기술의 대명사로 통할 정도로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랬던 알파고가 더욱 강력해진 '알파고 2.0'으로 업그레이드되어 또 한 번 세계적인 무대에 나서게 됐다. 2017년 5월 23일 세계 랭킹 1위 바둑기사인 중국의 커제 9단과 또 한 번의 세기적인 대결을 펼치게 된 것이다.

구글은 인공지능 연산에 특화된 TPU(사진)라는 새로운 프로세서를 개발했다. / 구글 제공
구글은 인공지능 연산에 특화된 TPU(사진)라는 새로운 프로세서를 개발했다. / 구글 제공
'알파고 2.0'이 기존의 알파고와 가장 다른 점은 인공지능의 핵심 연산을 담당하는 '두뇌'부터 다르다는 점이다. 1920개의 CPU와 280개의 GPU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기존 알파고와 달리 새로운 알파고는 TPU(Tensor Processing Unit)라는 새로운 프로세서를 인공지능 연산 및 예측의 새로운 도구로 사용한다.

지난해 5월 구글이 공개한 TPU는 '벡터와 행렬(tensor)을 처리하는 유닛'이라는 이름 그대로 벡터/행렬 연산의 병렬처리를 통한 데이터 분석 및 딥러닝에 최적화된 새로운 종류의 프로세서다.

현재 인공지능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CPU와 GPU는 강력한 컴퓨팅 성능으로 인공지능뿐 아니라 일반적인 연산과 시뮬레이션 등에도 사용되는 '범용' 프로세서다. 실제로 CPU는 본래 컴퓨터의 '중앙 처리 장치'로 단순 연산뿐 아니라 컴퓨터 내에서 오가는 각종 명령어를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본래 기능이다. GPU는 '그래픽 프로세서 유닛'이라는 이름 그대로 원래 정교하고 사실적인 3D 그래픽을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구글이 개발한 TPU는 기존의 CPU와 GPU만 사용한 인공지능 컴퓨터에 비해 더욱 뛰어난 ‘소비전력당 성능’을 제공한다. / 구글 제공
구글이 개발한 TPU는 기존의 CPU와 GPU만 사용한 인공지능 컴퓨터에 비해 더욱 뛰어난 ‘소비전력당 성능’을 제공한다. / 구글 제공
하지만 구글이 직접 개발한 TPU는 처음부터 '인공지능 전용'으로 특화되어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들어가는 트랜지스터의 숫자는 CPU와 GPU보다 훨씬 적지만, 주 기능을 인공지능 연산과 예측에만 집중함으로써 오히려 '효율'을 높였다는 것이 구글 측의 설명이다.

구글에 따르면 신경망 기반 추론을 사용하는 인공지능 작업에서 TPU는 최신 GPU 및 CPU보다 15배에서 30배 빠르면서 소비전력(1W)당 인공지능 연산 성능은 30배에서 80배까지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같은 크기의 컴퓨터나 같은 소비전력으로 TPU를 사용한 컴퓨터는 기존 CPU나 GPU만 사용한 컴퓨터에 비해 훨씬 뛰어난 인공지능 성능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TPU가 탑재된 알파고 인공지능 컴퓨터의 모습. / 구글 제공
TPU가 탑재된 알파고 인공지능 컴퓨터의 모습. / 구글 제공
이렇게 인공지능에 특화된 새로운 두뇌를 탑재한 알파고 2.0은 학습 방식도 다르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의 말에 따르면 10만여 개의 바둑 기보를 학습하고 자기 자신과 수많은 대결을 통해 바둑 실력을 키운 기존의 알파고와 달리, 알파고 2.0은 기존의 바둑 기보 없이 처음부터 스스로 바둑을 배우고 실력을 키운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러한 학습 방식은 인간의 사고에 가까운 인공지능을 기대할 수 있지만 그만큼 더 많은 시간과 강력한 인공지능 연산 성능이 요구된다. 구글은 알파고 2.0에 TPU를 적용함으로써 새로운 학습 방법에 필요한 시간을 기존의 3개월에서 1개월로 3분의 1수준으로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구글에 따르면 이세돌과 대결을 펼쳤던 이전 알파고에도 이미 TPU가 사용됐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학습 방식이 기존 GPU와 GPU만 사용하던 때와 큰 차이가 없어 TPU의 장점이 바로 드러나지 못했다.

23일부터 커제 9단과 맞붙는 알파고 2.0은 TPU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것이 차이점이다. 승패를 떠나 더욱 진화한 인공지능이 어떠한 수준에 도달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이번 대국의 진짜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