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대기업 계열사 간 내부거래 관행에 강력한 제재 의지를 내비친 가운데, 삼성 그룹 내에서 사업 연관성이 적은 에스원이 최근 3년간 내부거래에 의존해 매출 규모를 키운 것으로 확인됐다.

에스원 로고가 부착된 건물 외벽의 모습. / 조선일보 DB
에스원 로고가 부착된 건물 외벽의 모습. / 조선일보 DB
삼성 그룹이 관련 법의 허점을 이용해 에스원에 일감을 몰아주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현행 공정거래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 지배구조 개편 위해 떠맡은 그룹 내부거래 사업이 매출성장 견인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에스원은 최근 3년(2014~2016년) 동안 개별재무제표 기준 매출이 6582억원 증가했는데, 이 중 3921억원이 계열사 내부거래로 늘린 매출이다. 에스원의 최근 3년간 매출 증가분에서 내부거래 매출의 기여도는 60%에 달한다.

2012~2016년 개별재무제표 기준 에스원의 총 매출 중 순매출과 내부거래매출 추이(단위: 억원).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자료
2012~2016년 개별재무제표 기준 에스원의 총 매출 중 순매출과 내부거래매출 추이(단위: 억원).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자료
에스원은 보안 시스템과 경비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삼성 그룹 주요 계열사 사업장에 보안경비 서비스를 제공하며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했다.

2013년까지만 해도 에스원의 삼성 계열사 내부거래 비중은 20%쯤이었다. 에스원의 2013년 개별재무제표 기준 매출 1조1601억원 중 삼성 계열사 내부거래 매출은 2343억원이었다.

하지만 에스원의 내부거래 매출 비중은 2014년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로부터 부동산 시설 및 수익 관리, 중개, 컨설팅 등을 제공하는 건물관리 사업을 양수한 후 빠르게 늘었다.

에버랜드의 건물관리 사업을 떠맡은 첫 해인 2014년 에스원의 내부거래 비중은 단숨에 34.6%로 껑충 뛰면서 5598억원의 내부거래 매출을 기록했다. 에스원의 2014년 매출은 전년 대비 4597억원 증가했는데, 이 중 3255억원이 내부거래로 늘어난 매출이었다.

에스원의 내부거래 매출은 이후로도 2015년 6048억원, 2016년 6264억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에스원은 2016년 매출이 전년 대비 295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는데, 그나마도 내부거래 매출이 작년보다 216억원 늘어난 덕분이었다.

에스원의 2016년 국내외 내부거래 매출 6264억원 중 최대 고객은 삼성전자(2809억원)와 삼성생명보험(763억원), 삼성디스플레이(478억원), 삼성화재해상보험(468억원) 등이다.

반면, 물리보안 시장 3위 사업자인 KT텔레캅의 경우 2016년 개별재무제표 기준 내부거래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KT텔레캅의 연간 매출은 에스원의 6분의 1수준이지만, KT가 38개의 자회사와 전국 지사를 운영 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출 규모 대비 내부거래 비중은 많지 않은 편이다.

에스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에스원의 삼성 계열사 대상 내부거래 매출 비중은 전체 매출 대비 3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라며 "에스원은 공정위의 이번 대기업 계열사 간 내부거래 조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라고 말했다.

◆ 총수 일가의 간접 보유 지분은 OK?…최대 주주 日 세콤만 '好好'

삼성 그룹이 에스원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으나, 현행 공정거래법상 에스원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 총수 일가가 에스원의 지분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 다른 계열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 그룹이 법망을 피해 에스원에 일감을 몰아주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14년 에버랜드가 에스원에 건물관리 사업을 넘긴 배경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지목된다. 하나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 회피 수단이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집단에서 총수 일가 지분 30% 이상인 상장사(비상장사는 20%)의 내부거래 비중이 30%를 넘으면 총수 일가에 증여세를 부과하는 방침을 정했다.

에버랜드는 2012년 기준으로 매출 3조37억원 중 특수관계자 매출이 1조4172억원에 달해 내부거래 비중이 47.2%나 됐다. 당시 에버랜드 지분 구조는 이재용 부회장 25.1%를 비롯해 총수 일가 보유 지분이 46.04%에 달했다. 따라서 지분 구조에 변화가 없다면 총수 일가는 상당한 세금을 내야 했다.

에버랜드는 2013년 12월 내부거래 비중이 낮은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를 인수하고, 2014년 1월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급식 사업과 건물관리 사업을 각각 삼성웰스토리와 에스원에 떠넘기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삼성웰스토리도 지난해 기준 전체 매출 중 내부거래 비중이 36.4%로 에스원(34.6%)과 비슷한 수준이다.

에스원은 삼성 계열사로 분류되지만, 엄밀히는 삼성이 일본 세콤(SECOM)에 로열티를 주고 합작해 만든 회사로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상 연결고리가 약하다. 에스원의 최대 주주도 삼성 총수 일가가 아닌 세콤이다. 세콤은 에스원의 지분 25.65%를 보유했다. 삼성 계열사의 지분은 삼성SDI 11.03%, 삼성생명 5.24% 등 총 20.57%다.

일본 세콤 본사 입구의 모습. / 세콤 제공
일본 세콤 본사 입구의 모습. / 세콤 제공
에스원이 내부거래로 수익을 올리면 에스원 지분을 갖고 있는 삼성 계열사의 이익도 증가한다. 하지만 최대 수혜자는 단연 최대 주주인 세콤이다. 에스원은 여기에 매년 100억원이 넘는 배당금을 세콤에 꼬박꼬박 지급하고 있다. 보안시스템 서비스 일부 매출액의 0.65%도 기술지원 명목으로 세콤의 주머니에 들어간다.

에스원은 2012년에도 당시 보안 자회사였던 시큐아이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에스원은 시큐아이를 2015년 삼성SDS에 매각했다. 삼성SDS의 지난해 내부거래 비중은 87.8%로 IT 서비스 빅 3(삼성SDS·LG CNS·SK C&C) 중 가장 높았다.

정치권에서는 대기업의 이러한 꼼수식 일감 몰아주기를 제재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 등 11명은 2016년 8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법인의 지분율 요건 판단 시 오너 일가가 다른 법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유하는 지분도 포함시키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상조 신임 공정거래위원장도 대기업 계열사의 비상식적인 내부거래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밝힌 만큼 관련 법 개정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채이배 의원실 관계자는 "현행 공정거래법은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개선하지 못하고, 총수 일가가 사업 조정이나 지분의 일부 매각만으로도 손쉽게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허점이 있다"라며 "규제 대상이 되는 계열사의 지분율 요건을 상장·비상장 구분 없이 20%로 단일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계열사를 매개로 하는 간접 지분도 포함되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