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작권법 위반이라면서 손해를 배상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이 유행이다. 프로그램 개발회사들은 처음에는 어떤 프로그램을 무료 배포한다. 이후에 버전 업데이트를 하면서, "'비상업용, 개인용'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무료지만, 상업용, 기업용일 때는 유료 구매해야 한다"는 안내를 한 후에 기존 이용자들이 업데이트 후에도 계속 무료로 사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위반이라면서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프로그램들은 개인적으로 이용되기보다는 회사 업무를 볼 때 주로 사용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라서 이용자들의 대부분은 위 안내를 보고서도 평소대로 무료사용을 계속하게 된다. 이때 프로그램을 실행하려면 어쩔 수 없이 메모리인 RAM에 잠깐 저장되는 '일시적 저장'이 불가피하다. 개발회사는 이러한 점에 착안해 이렇게 유료화된 프로그램을 구매하지 않고 '복제'하는 행위는 저작권법 위반이라면서 내용증명을 보내고 이에 반응하지 않는 회사에 대해 형사고소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이다.

실제, 이러한 내용증명을 받는 회사들 80개가 연합해 프로그램 개발사를 상대로 저작권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소송(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한 사례가 있다. 1심에서는 저작권 위반이 맞다고 해서 패소했으나, 2심에서는 저작권 위반이 아니라고 하여 승소했고, 현재 3년째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아직 대법원 판결은 선고되지 않았다.

개발사는 인터넷 화면을 캡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오픈캡처를 2003년부터 무료로 배포했지만, 9년 이후 2012년 버전 업데이트 과정에서 '비상업용·개인용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단서를 포함해 안내했다. 업무용으로 사용하려면 기업 등에 별도의 라이센스를 구매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80개 기업 직원들이 무단으로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자 오픈캡처 측은 내용증명을 보내 사용료 지급을 요구했으나, 기업들은 돈을 줄 수 없다며 채무부존재확인소송으로 맞섰다.

소송의 핵심 쟁점은 무료였던 소프트웨어가 유료로 전환된 경우 프로그램을 실행할 때 불가피하게 메모리에 잠깐 저장되는 '일시적 저장'을 저작권법에서 금지한 '복제'로 볼 수 있는지였다.

프로그램을 단순히 실행만 해도 임시저장장치(RAM)로 불러와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일시적으로 저장되는 일이 발생하는데, 프로그램을 단순 실행한 것만으로 저작권 침해가 성립하는지가 문제 됐다. 1심은 일시적 저장도 어쨌든 복제되는 것이므로 저작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은 "(프로그램 실행 시 일시적 저장은) 업무용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한 계약을 위반한 것에는 해당할 수 있어도 저작권 침해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고, 이어 "저작권법에서는 원활하고 효율적인 정보 처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 저작물을 컴퓨터에 일시적으로 복제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 사건의 경우 이러한 면책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서울고등법원 2014나19631 판결).

다만 "업무용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정한 약관을 무시한 데 대한 계약상 책임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저작권자가 계약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을 별도로 제기할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위 고등법원 판결에 대하여 피고인 개발회사가 대법원에 상고해 현재 3년째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고 있지만, 위 고등법원 판결은 1심의 판단을 뒤엎고 일시적 복제에 대한 예외적 면책조항인 저작권법 35조의 2를 적극적으로 적용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2011년 12월 2일 개정된 저작권법 제2조22호에서 '복제'의 개념을 정의하고, 35조의 2에서 '일시적 복제'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규정을 두게 됐다.

즉 동법 제35조의2(저작물 이용과정에서의 일시적 복제)에서는 "컴퓨터에서 저작물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원활하고 효율적인 정보처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 그 저작물을 그 컴퓨터에 일시적으로 복제할 수 있다. 다만, 그 저작물의 이용이 저작권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여, '저작물을 이용하는 경우, 원활하고 효율적인 정보처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는 프로그램을 일시적으로 복제하는 것이 저작권 위반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단서 조항에서는 '다만, 그 저작물의 이용이 저작권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저작권 위반이라고 하고 있다.

결국, 위 조문의 단서에서 '원 저작물의 이용이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일시적 복제를 허용하고 있으므로, 업데이트된 이후 무료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 자체가 위 단서조항에 해당하는지가 중요 쟁점이다.

위 고등법원 판결은 "저작권법 제35조의 2 단서에서 정해진 그 저작물의 이용이 저작권을 침해하는 경우라고 함은, 일시적 복제의 주체가 하는 저작물의 주된 이용이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이용 행위에 해당함에도 저작권자로부터 이용 허락을 받지 아니하였거나 저작권법에 의해 허용된 행위(저작권법이 정하고 있는 사적 복제 등 각종 제한 규정에 해당하는 행위)에 포함되지 아니하는 이용 행위로서 저작권법상의 복제권 등의 저작 재산권의 지분권을 침해하는 경우 또는 프로그램의 사용을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 침해로 간주하고 있는 행위(저작권법 제124조 제1항 제3호)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면서 "개별 사용자가 피고와의 사용 허락 계약을 위반하여 오픈캡처 유료 버전을 컴퓨터에서 실행해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저작권법상의 복제권 등의 저작 재산권의 지분권을 침해하는 상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따라서, "저작권법 제35조의 2 단서가 적용되지 않고, 개별 사용자가 피고와 사용 허락 계약을 위반해 오픈캡처 유료 버전을 업무용으로 실행하면서 그에 부수해 일시적 복제가 이루어진 상황에 해당해 개별 사용자들이 피고에 대해 사용 허락 계약 위반에 따른 채무불이행 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별도로 하더라도 그와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컴퓨터 내의 램에의 일시적 복제 행위는 저작권법 제35조의 2 본문에 따라 면책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정리하자면, 고등법원은 프로그램을 실행하면서 일시적으로 램에 복제되는 행위는 계약에 위반된 행위이기는 하지만, 저작권법을 침해한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계약위반으로 민사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저작권법 위반은 아니므로 형사적으로 구속이나 벌금 등의 형벌을 부과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많은 프로그램 개발 회사들이 저작권위반이라 하여 많은 기업에 무차별 내용증명을 보내어 처벌하겠다고 겁을 주는 것이 유행인데 본 판결은 유료화된 프로그램의 단순 실행은 저작권위반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로서 기존의 관행을 상당 부분 바로잡을 수 있는 의미 있는 판결이었으며, 곧 있을 대법원에서는 어떠한 판결을 내릴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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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 변호사는 사법고시 42회, 사법연수원 33기로 서울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의 ASP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15년간 법무법인에서 기업분쟁 관련 업무를 담당했으며, KBS라디오 이영권의 경제포커스에 경제법 분야 패널로 고정출연했고 현재 서울변호사회 위촉 변호사 조정위원, 서울 강서경찰서 법률자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서울토지공사 및 LH공사를 자문했고, 제약회사, IT기업, 신용정보회사, 저작권 관련 기업, 코스메틱 기업, 영농법인, 수입이륜자동차협회를 비롯한 각종 협회 등의 법률고문을 담당하는 문장종합법률사무소의 대표변호사이며 인터넷에 직접 최근 판례의 동향을 분석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