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면서 제품이나 서비스의 생명주기도 점점 짧아지는 추세다. 어떤 제품은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 나가는 바람에 후발 주자에게 자리를 내주고 사라지기도 하고, 어떤 서비스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문을 닫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져 지금은 사용되지 않지만, 일상 속 한 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과거의 유물도 있다. 각종 프로그램에서 여전히 '저장(Save)'을 의미하는 아이콘으로 쓰이는 플로피 디스크(디스켓)이 좋은 예다.

5.25인치, 3.5인치 등 크기로 컴퓨터에 삽입하는 외장 저장장치인 디스켓은 현재 유통되는 음원 파일인 MP3 하나도 담지 못하는 용량이지만, 과거에는 컴퓨터 이용자의 필수품이었다. 디스켓이 가진 '데이터를 저장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는 지금도 각종 프로그램을 저장하는 제품이라는 명칭을 대신한다.

많은 사람이 지금도 곧잘 쓰지만, 얼마 있지 않아 사라질 운명에 처한 제품이 있다. 익숙한 것과의 이별은 쉽지 않지만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이형기, 낙화)'는 말을 떠올리며 추억을 곱씹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33년 기본 프로그램 안방마님 '그림판', 윈도 스토어에서 명맥

MS 윈도의 기본 프로그램 중 하나로 2017년 33세를 맞은 그림판의 모습. / IT조선 DB
MS 윈도의 기본 프로그램 중 하나로 2017년 33세를 맞은 그림판의 모습. / IT조선 DB
그림판(Paint)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1985년 11월 선보인 윈도 1.0에 포함된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이다. 그림판은 당시만 해도 다양한 그리기와 색칠, 도형 등을 지원하는 그래픽 편집기로 윈도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를 대변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전문 그래픽 편집 프로그램이 대중화되면서 단순한 기능의 그림판은 점점 사용 빈도가 줄었다. MS는 윈도의 사용하지 않는 기능 목록에 그림판을 공식 분류해 넣었고, 결국 2017년 가을 윈도 10 업데이트와 함께 그림판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MS는 대신 3D 그래픽 작업을 지원하는 '그림판 3D'를 대체 프로그램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그림판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소식에 전 세계 컴퓨터 사용자가 아쉬움을 드러냈다. 인터넷상에는 그림판을 이용해 직접 그린 그림으로 그림판의 퇴출을 애도하는 물결이 이어졌다. 결국 MS는 그림판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그림판 이용을 원하는 사용자는 윈도 스토어에서 내려받아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방침을 바꿨다.

메간 사운더스 MS 3D 총책임자는 "우리는 윈도 그림판에 대한 놀라운 지지를 봤다"며 "윈도 그림판은 향후 윈도 스토어에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무료로 배포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 보안 취약점 통로 오명 '어도비 플래시', 2020년 퇴출

어도비 플래시의 로고. / 어도비 제공
어도비 플래시의 로고. / 어도비 제공
2000년대 인터넷을 화려한 멀티미디어 콘텐츠로 수놓았던 어도비의 플래시도 몇 년 후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어도비 플래시는 웹 브라우저에서 비디오·게임 등을 실행하는 애드온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플래시는 수많은 보안 취약점이 발견돼 악성코드 유입의 주요 통로로 악용됐다. 구글 크롬, MS 엣지, 애플 사파리 등 주요 웹 브라우저는 2016년부터 순차적으로 플래시 자동 재생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도 플래시를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플래시의 보안 취약점 외에도 모바일 기기에서 동영상을 재생할 때 시스템 자원을 지나치게 많이 필요로 해 배터리를 빨리 닳게 한다며 iOS 기기에서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도록 했다.

결국 최근 어도비는 2020년 말 플래시 배포와 모든 업데이트를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어도비는 플래시 배포 중단과 함께 멀티미디어 콘텐츠 제작자가 플래시 콘텐츠를 HTML5와 같은 개방형 웹 표준 기술로 바꾸도록 독려하겠다고 밝혔다.

◆ 아이폰의 팀킬…애플, '아이팟 셔플·나노' 단종 조치

애플 아이팟 셔플과 아이팟 나노. / 애플 제공
애플 아이팟 셔플과 아이팟 나노. / 애플 제공
애플의 MP3 플레이어 '아이팟 셔플'과 '아이팟 나노'도 처음 등장한 지 12년 만에 단종된다.

27일(현지시각) 애플은 아이팟 셔플과 아이팟 나노의 생산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아이팟 셔플과 아이팟 나노는 애플 스토어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자취를 감췄다.

애플은 2005년 1월 아이팟 셔플을, 같은 해 9월 아이팟 나노를 선보였다. 아이팟 셔플은 2010년 9월 4세대를 마지막으로 업데이트가 이뤄지지 않았다. 아이팟 나노는 2012년 10월 7세대가 최종 버전이다.

이로써 애플의 아이팟 라인업은 199달러(22만2400원)의 아이팟 터치 32GB 모델과 299달러(33만4100원)의 '아이팟 터치' 128GB 모델 2종만 남게 됐다.

2001년 스티브 잡스가 처음 소개한 아이팟은 특유의 인터페이스로 돌풍을 일으키며 애플의 재도약을 이끈 제품으로 꼽힌다. 하지만 2007년 아이폰 출시 이후 전통적인 인터페이스의 아이팟은 틈새 시장으로 밀려났다. 아이팟 판매량은 2008년 5480만대였으나, 2014년에는 1430만대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