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새 ‘이재용 유죄·기아차 패소’…숨막힌 재계

이광영 기자
입력 2017.08.31 15:5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유죄 선고와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까지 일주일 사이 잇따라 터진 악재에 재계가 불안감에 떨고 있다. 전 산업계가 주목한 두 판결에서 모두 기업에 부담을 되는 결론이 나오면서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판사 권혁중)는 31일 가모씨 등 노동자 2만7424명이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낸 1조926억원의 임금 청구 소송에서 "2011년 사건의 노동자 2만7000여명에게 원금 3126억원과 이자 1097억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기아차는 이 같은 판결결과로 실제 부담할 잠정 금액이 총 1조원쯤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판결 즉시 충당금 적립의무가 발생하는데 기아차의 2017년 상반기 영업이익이 7870억원에 불과해 3분기 영업적자가 불가피하다. 기아차가 충당금을 쌓아 손실을 내면 기아차 지분 33.88%를 보유한 현대차도 지분법 평가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전경 / 현대차그룹
◆ '상여금=통상임금' 인정되면 기업 38조 추가 부담

이번 판결로 산업계 전반에 미칠 파장은 어마어마할 전망이다. 다른 기업들이 진행하는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통상임금 관련 대법원 선고를 앞둔 기업은 아시아나, 현대차,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이다. 대유위니아, 대한항공, 두산모트롤BG,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 볼보건설기계코리아, 현대다이모스, 현대로템, 현대모비스, 현대비앤지스틸, 현대오일뱅크,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SK에너지 등도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2013년 3월 내놓은 '통상임금 산정 범위 확대 시 경제적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면 기업이 부담할 추가 비용 규모는 최대 38조5509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과거 3년간 임금 소급분(24조8000억원), 통상임금과 연동해 늘어나는 각종 수당 및 간접노동비용 증가분 1년치(8조8000억원), 퇴직급여 충당금 증가분(4조8800억원)을 합한 금액이다.

소급분(24조8000억원)과 퇴직급여 충당금 증가분(4조8846억원)을 빼도 정기상여금과 각종 수당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한해 8조8000억원의 비용이 더 늘어나는 셈이다.

박재근 대한상공회의소 기업환경조사본부장은 "이번 통상임금 판결은 대법원이 제시한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상급심에서는 더 심도 있게 고려해 판단해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박 본부장은 또 "통상임금 소송은 노사 당사자가 합의해온 임금 관행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고 노사 간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앞으로 노사 간 소모적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통상임금의 개념과 범위를 명확하게 정하는 입법 조치를 조속히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결심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재판부는 25일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 조선일보 DB
◆ "대기업에만 불리한 판결…경제 활력 잃는다"

25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실형선고는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 신호탄으로 평가받는다. 기아차가 31일 통상임금 소송에서도 패소하면서 재계는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게 됐다.

재계에서는 법이 시대 상황만을 반영해 대기업에 불리한 판결을 남발하면 경제가 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새정부의 국정 과제인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수 없을 것이란 판단이다.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정책의 큰 그림이 복지와 양극화해소에만 집중되고, 법의 판단도 대기업에 불리한 쪽으로 가고 있어 걱정이다"라며 "정부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여파를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업 한 관계자도 "법의 잣대가 대기업을 옥죄는 일방통행에만 머무르고 있다"며 "일주일 새 재판부가 내린 결론은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일자리 창출에는 역행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16년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 당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대기업 준조세를 입법으로 막아달라"고 주문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준조세를 없애고 법인세를 늘려(정경유착을 없애는) 효과가 난다면 찬성이지만 이뤄질지는 의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기업인들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항상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법정에 서왔다. 관련법을 만들어 정경유착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의견도 매순간 등장했지만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기업인만 유죄를 받아 온 것이 현실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반기업 정서로 흐르고 있는데 결국 기업이 스스로 적응하고 극복해야하는 상황이라 씁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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