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반도체 사업부문 자회사 '도시바메모리' 매각 입찰에서 우위를 점한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이 미·일 연합 컨소시엄에서 발을 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WD는 대신 자회사 샌디스크와 도시바가 요카이치 공장을 공동 운영하기 위해 설립한 조인트 벤처에서의 지위를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바메모리 지분에 집착하기보다 낸드플래시의 원활한 수급을 추구하는 실리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로이터는 5일(현지시각) 이번 매각 협상에 정통한 두 소식통을 인용해 WD가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위한 컨소시엄에서 빠지는 안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도시바메모리 핵심 생산 거점인 미에현 소재 요카이치 공장 전경. / 도시바 제공
도시바메모리 핵심 생산 거점인 미에현 소재 요카이치 공장 전경. / 도시바 제공
미·일 연합은 기존 우선협상 대상자인 SK하이닉스 포함 한·미·일 연합을 제치고 도시바메모리 매각 협상에서 우위를 점했다. WD는 미국 사모펀드 콜버스 크래비스 로버츠(KKR)와 일본산업혁신기구(INCJ), 일본정책투자은행 등과 미·일 연합을 구성해 도시바메모리 인수금 174억달러(22조원)를 출자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양측은 협상 과정에서 WD의 경영권 지분과 이에 따른 독점금지법 문제를 두고 원만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WD는 지분 15%로 시작해 도시바메모리 기업공개 직후 지분을 최대 3분의 1까지 높이겠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반면, 도시바와 일본 정부는 독점금지법을 이유로 향후 10년 동안은 WD의 지분 확대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협상이 난항에 부딪쳤다.

WD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해 컨소시엄에서 빠지는 대신 도시바와 조인트 벤처 지분을 더 요구하는 안을 제시했다. 낸드플래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생산설비 지분을 더 확보하는게 실리 측면에서 낫다는 판단에서다. WD가 컨소시엄에서 빠지면 각국의 독점금지법 심사를 좀 더 쉽게 통과할 수 있게 된다는 명분도 생긴다.

도시바와 WD는 도시바메모리 핵심 생산 거점인 미에현 소재 요카이치 공장 설비를 공동 투자하고, 생산된 제품을 지분에 따라 분배하는 조인트 벤처를 바탕으로 오랜 협력 관계를 이어왔다. 도시바 입장에서는 대규모 투자 부담을 줄이고, 독자 설비를 갖추지 않은 WD는 도시바의 설비를 임차하는 셈이다. 지분 비율은 도시바 65%, WD 35%쯤이다.

요카이치 공장은 현재 건설 중인 팹6(Fab6)를 포함해 총 6개 팹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주요 제품을 양산하는 3~5팹은 도시바와 WD가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다. 공장·토지 등 유형자산과 운용 인력은 도시바 소유지만, 내부 반도체 전공정 설비 투자는 도시바와 WD가 공동으로 투자한 결과물이다.

WD는 도시바메모리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에서 한·미·일 연합에 밀리자 도시바에 매각 협상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과정에서 요카이치 공장에 대한 권리를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도시바는 이에 대응해 8월 초 요카이치 공장 신규 설비투자에 WD를 배제하고 단독으로 집행하겠다며 맞불을 놓기도 했다. WD도 원활한 낸드플래시 수급을 위해서는 요카이치 공장의 생산능력 확충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신규 생산설비 역시 공동 투자를 원하는 입장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도시바 이사회는 6일 WD의 새로운 제안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일 연합 구성원 간 향후 회담에서도 WD가 컨소시엄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두고 첨예한 논쟁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