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는 20일 메모리 사업부문을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에 매각하기로 최종 결정하고 빠르면 2주일 이내에 계약서를 작성할 예정이다. '엎치락뒤치락' 혼전을 거듭한 인수전은 막판 뒤집기에 나선 SK하이닉스 측의 승리로 마무리 되는 분위기다.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의 '일등공신'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평소 경영성과를 내려면 경영진이 직접 글로벌 현장을 뛰어야 한다는 신념을 강조한 최 회장은 실제로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를 위해 4월 직접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날아가 도시바 경영진을 만났다.

왼쪽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 각 사 제공
왼쪽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 각 사 제공
SK하이닉스는 인수자 선정 과정에서 장래 취득할 도시바 의결권 지분 비율을 15% 이하로 가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유출 방지와 전략산업 유지를 이유로 해외기업으로 매각을 반대하는 일본 내부 여론을 고려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일본 측이 의결권 지분 과반을 차지해야 하는 사정을 살펴 최 회장이 먼저 도시바 측에 이런 맞춤형 제안을 한 셈이다.

최 회장은 2011년 SK하이닉스 인수를 시작으로 2016년 반도체용 특수가스 개발 전문업체인 SK머티리얼즈와 2017년 초 SK실트론을 잇달아 SK그룹으로 편입시키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동안 보여준 과감한 결단력이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에서도 발휘된 것이다.

최 회장이 인수에 전사적 역량을 기울일 적임자로 박정호 사장을 선택한 것도 주효했다. 박 사장은 2000년 신세기 통신과 2011년 하이닉스를 인수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는 등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킨 공이 있는 M&A 전문가로 통한다. 그는 4월 최 회장의 도시바 경영진 면담 당시 동행해 머리를 맞댔다.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은 6월 베인캐피털과 SK하이닉스가 KKR 대신 일본 산학혁신기구와 손을 잡은 후 승기를 잡았다. 하지만 7월 초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익명의 소식통을 통해 SK하이닉스가 베인캐피털의 지분 일부 또는 모두를 가져가는 이면계약을 했다는 보도가 나온 후 상황이 반전됐다. 도시바의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며 일본 정부가 불편한 심기를 보였기 때문이다.

KKR은 WD과 손잡고 새로운 미일 연합을 결성했고, 8월 도시바 메모리 인수와 관련한 우선협상권을 따냈다. 인수전은 WD 측에 유리한 국면으로 기울었다.

박정호 사장은 끝까지 도시바 메모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표명했다. 박 사장은 가장 최근인 6일 기자와 만나 도시바 인수 진행 상황에 대해 "도시바가 이사회를 할 텐데 결과를 봐야 할 것 같다"면서 "(이사회 결과에 따라) 또 일본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와 베인캐피털은 KKR 대신 애플을 섭외하며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한미일 연합은 2조엔(20조2400억원)에 이르는 인수비용과 별도로 4000억엔(4조501억원)의 연구개발비를 별도 제공하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도시바 측에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메모리 인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향후 도시바의 낸드플래시를 공급받지 않겠다는 뜻을 전한 것도 결정적인 배경인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 메모리 인수를 통해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됐던 낸드플래시 기술력 미비 문제와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숙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D램 분야 세계 2위는 물론 4위 수준인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2위권을 겨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