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의 웹사이트 콘텐츠를 무단으로 긁어와 영업에 활용하는 것이 데이터베이스(DB) 권리를 침해한 행위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은 4월 온라인 채용정보제공 사업자 잡코리아(원고)가 경쟁업체인 사람인HR(피고)을 상대로 제기한 '웹사이트 HTML 소스코드 무단 복제 등 금지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사람인HR은 법무법인 세종을 대리인으로 선임하고 서울고법 판단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사람인HR은 원심이 조정조항의 해석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위반하고 관련 법리를 오해했다고 항변했으며, DB 제작자의 인정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사람인HR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상고인의 상고 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 제1항 각 호에 정한 사유를 포함하지 아니하거나, 제3항 각 호에 해당한다고 인정된다"며 기각했다.

◆ 잡코리아·사람인, 법정 공방 시작은 2008년

양사간 다툼은 9년 전인 2008년 사람인이 잡코리아에 등록된 기업 채용공고를 무단 크롤링해 게재한 것이 발단이 됐다. 사람인은 채용공고를 무단 복제한 사실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2010년 잡코리아는 사람인HR을 상대로 법원에 채용정보 복제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2011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사람인HR이 잡코리아의 채용정보를 무단으로 게재하지 말라고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법원의 강제조정 후 사람인HR은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등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 보였으나, 이후에도 사람인은 검색로봇을 이용해 같은 방식으로 채용정보를 무단 복제해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게재했다.

잡코리아는 법무법인 민후를 대리인으로 선임하고 사람인HR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금지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사람인HR은 법무법인 광장을 대리인으로 선임해 공방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법무법인 민후는 사람인HR이 채용정보를 지속적으로 무단 수집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 점, 몰래 크롤링을 하는 것을 숨기기 위해 가상사설망(VPN)을 사용한 점 등을 지적했다. 사람인HR의 행위가 단순한 조정조서 위반을 넘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1부(재판장 김기영 부장판사)는 사람인HR에 채용정보 396건을 폐기하고 잡코리아에 1건당 50만원씩 총 1억98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사람인HR의 행위가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함도 인정했다.

사람인HR은 1심 판결에 불복하여 대리인을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교체해 항소했다.

◆ 서울고법·대법원 "무단 크롤링, 데이터베이스권 침해" 인정

항소심에서 법무법인 민후는 DB 권리 침해를 새롭게 추가했다. 잡코리아 웹사이트는 저작권법상 DB에 해당하고 잡코리아는 그 웹사이트의 제작이나 그 소재(채용정보)의 갱신·검증 또는 보충에 인적·물적 투자를 했으므로 잡코리아 웹사이트에 대한 DB 제작자의 지위와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한 것이다.

서울고법은 잡코리아의 주장을 받아들여 DB 권리를 침해 받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는 DB에 해당하는 원고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위해 인적·물적으로 상당한 투자를 했고, 그 소재의 갱신·검증 또는 보충을 위해 인적·물적으로 상당한 투자를 한 자이므로 원고 사이트에 대한 DB 제작자에 해당한다"며 "피고의 이 사건 게재 행위에 의해 저작권법 제93조 제2항, 제1항에서 정하고 있는 원고의 DB 제작자 권리가 침해됐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피고인 사람인HR은 잡코리아 웹사이트의 채용 정보를 모두 폐기할 의무가 있다"며 "조정조서 위반으로 인한 간접강제금 2억원과 DB 권리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금 2억5000만원을 합해 총 4억5000만원을 잡코리아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사람인HR은 또다시 소송대리인을 변경하며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양측간 소송이 끝났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사용자가 주로 작성하는 콘텐츠를 소재로 하는 DB에 대해 웹사이트 운영자의 DB 제작자 지위를 인정하고, 이를 무단 복제·사용하는 행위가
DB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법원이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분석했다.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대표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사용자 제작 콘텐츠 사이트의 성격을 일부 가지는 웹사이트 운영자의 저작권법상 DB 제작자로서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고 DB 권리를 통한 법적 보호를 인정한 사례다"며 "크롤링에 대한 법적 판단의 기준을 세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