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R&D센터는 LG전자 주방가전의 '브레인'이 총집결한 곳이다. 단순히 새로운 연구소가 아니다. 냉장고, 오븐, 정수기, 식기세척기 등 제품군별로 흩어진 주방가전 R&D 조직을 한데 모으고 시너지를 내기 위해 지은 최첨단 기지다.
6일 오전 10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내려와 오후 1시쯤 다시 30분을 버스로 이동해 도착한 장소는 경남 창원에 있는 LG 창원R&D센터였다. 쌀쌀한 날씨에도 LG전자의 글로벌 주방가전 시장 공략을 위한 고민의 흔적을 엿보기 위해 74명의 취재진이 참석했다.
최초로 공개하는 창원R&D센터 내·외부는 촬영을 금지하는 등 철통보안으로 꽁꽁묶여있어 사진으로 담을 수 없었다. 하지만 현지 직원의 입으로 전해듣는 생생한 소개와 현장 분위기는 연구원 1500명의 열정과 창의력이 실제로 한데 모여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LG전자는 2015년 3월 창원R&D센터를 착공해 2년 반 만인 10월 26일 완공했다. 연면적 5만1000㎡(1만5427평)에 지하 2층, 지상 20층 규모다. 창원국가산업단지 내 연구시설로는 가장 크며 연구원은 1500명쯤이 근무한다.
창원R&D센터는 LG전자의 새로운 주방가전 제품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곳으로 여기서 개발된 제품은 전 세계 170개국에 공급된다.
창원R&D센터 연구원은 국가별 혹은 지역별로 다양한 형태를 갖는 주방 공간, 고객이 주방 공간에서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패턴, 다양한 융복합 기술 등을 연구한다. 각 제품이 전달하는 고객 가치를 넘어 제품을 실제로 사용하는 '주방 공간'의 관점에서 고객에게 더 큰 가치를 전달한다는 LG전자 생활가전의 철학을 반영한다.
◆ 세계최고 수준 R&D 인프라…750개 시료 구축·3D 프린터 모형 제작
세계최고 수준의 R&D 인프라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먼저 지하 1·2층에 위치한 시료보관실로 향했다. 냉장고, 오븐, 식기세척기 등 주방가전의 시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일반적으로 대형 건물 지하에 주차장이나 기계실이 자리 잡은 것과 비교하면 이색적인 위치였다.
현장 직원에 따르면 지하 1·2층 시료 보관실은 총 2440㎡(738평) 규모로 750대의 시료를 보관할 수 있다. 창원R&D센터 개관으로 시료 보관 규모는 기존 대비 50% 더 커졌다. 연구원이 1500명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라는 설명이다.
현장 한 직원은 "이곳은 연구원에게 도서관과 같은 곳이다"라며 "최근 개발된 1년 이내 제품만 비치하고 출시되지 않은 개발 단계 모델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송대현 생활가전(H&A)사업본부장(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이곳에서 경쟁사 제품 샘플을 분석한다고 언급했다.
송 사장은 "(경쟁사들이) 어떤 기술로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 파악하기 위해 (샘플을) 가져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LG전자의 앞선 R&D 수준을 자세히 보여주는 곳은 3D 프린터실이다. 건물 4층에는 비싼 가격으로 보이는 3D 프린터 4대가 쉼없이 움직였다. 2대는 액화한 플라스틱을 판 위에 흘려 특정 형태로 층을 쌓는 방식, 2대는 자외선을 사용해 플라스틱을 원하는 모양으로 깎아 층을 쌓는 방식이다.
창원R&D센터에서 신제품 개발에 필요한 부품 모형 중 80%쯤은 이곳에서 생산한다. 실제 부품 대비로도 마이크로미터 범위의 오차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가격은 큰 제품이 각 8억원, 작은 제품은 각 7000만원 수준으로 3D 프린터가 2개, 그보다 작은 프린터가 2개 놓여 있다.
현장 한 직원은 " 2014년부터 이 3D 프린터를 활용해 모형 부품을 제작했다"며 "기존에는 외주를 통해 제작해 비용과 시간, 보안 문제가 있었지만 도입 이후 모형 제작 시간은 30%쯤 줄었고 제작 비용도 연간 7억원 줄였다"고 말했다.
송승걸 LG전자 쿠킹·빌트인BD 담당(전무)에 따르면 제품이 기본으로 탑재한 130개 조리 코스 외에 스마트폰 전용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내려 받을 수 있는 142개 코스를 추가하면 누구나 총 272가지의 요리가 가능하다.
최근에는 저온에서 음식을 밀폐시켜 익히는 '수비드(sous-vide)' 조리 방식을 적용시킨 빌트인 오븐도 출시했다.
이고은 LG전자 쿠킹·빌트인 선임은 "전 세계의 다양한 메뉴를 개발 중이며, 중동·아프리카 등 생소한 지역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이태원을 방문한 적도 있다"며 "맛·외관·레시피·조리시간 등에서 경쟁사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 '감성 품질' 높이는 워터 소믈리에·레시피 전문가·김치 연구가
LG전자는 주방가전이 고객의 식생활과 직결된다는 점을 착안해 제품 성능뿐 아니라 감성 품질을 높이는 데에도 노력하고 있다. 실제 R&D센터에는 워터 소믈리에, 요리 레시피 연구원, 김치 유산균 연구원 등 이색 업무 연구원들이 근무하는데 이들과 만나는 자리도 마련됐다.
이병기 선임연구원은 한국수자원공사가 자격을 인정한 물 감별 전문가다. LG전자 정수기BD(Business Division) 정수기QE(Quality Engineering)파트에서 근무하며 정수기에서 나오는 물의 맛과 품질을 평가하는 업무를 맡는다.
이 연구원은 정수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물맛이나 냄새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수질과 관련한 불만이나 문의가 들어오면 직접 고객을 찾아가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설명해줘야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글로벌 고객의 경우 물맛을 느끼는 기준이 달라 이 부분을 고민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연구원은 "외국인은 한국의 생수를 심심하다고 느끼는 반면 한국은 해외 생수를 쓰고 떫은 것으로 느낀다"며 "정수기 및 정수기 냉장고의 글로벌 진출을 위해 수질 및 물 맛 감별을 위해 여러 가지 검토를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이외 박소영 쿠킹·빌트인신뢰성QE팀 선임연구원은 글로벌 고객들의 다양한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세계 각국의 조리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은정 냉장고RD·ED(Research/Engineering Division) 책임연구원은 김치 맛을 전담해서 연구하는 김치의 달인으로 소개됐다. 디오스 김치냉장고 고유 기능인 'New 유산균김치+'는 김 연구원의 작품임을 알게 됐다.
◆ '모듈러 디자인 기반' 창원 스마트공장과 시너지 기대
LG전자는 2023년까지 6000억원을 투입해 창원1사업장을 스마트 공장으로 재건축할 방침이다. 이에 창원1사업장은 공정의 모듈화, 지능형 자율 생산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기술과 품질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송대현 사장은 간담회를 통해 창원R&D센터가 창원1사업장이 스마트 공장으로 변화하는 첫 단추를 끼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연신 강조했다.
송 사장은 "창원R&D센터는 1500명 연구원이 창의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는 곳이다"라며 "자부심을 갖고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송 사장은 또 "창원R&D센터는 주방가전 제품 간 시너지를 보다 강화하고 미래 사업을 준비하는 전진기지다"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 인프라를 바탕으로 글로벌 주방가전 시장을 선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