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ITC 업계에서 'GPU(Graphics Processing Unit, 그래픽 처리 유닛)'가 화제다. 인텔이나 애플 같은 내로라하는 IT 기업들도 GPU에 관심을 두고 관련 사업에 뛰어들거나 투자 비중을 높이고 있다.

엔터프라이즈 컴퓨팅 시장에서도 메인프레임이나 서버 등 다양한 분야에 GPU 기술이 투입되고 있다. 산업계에서 또 다른 화제가 되는 자율주행차 분야에도 GPU가 언급된다. 대체 GPU가 뭐길래 시장에 뛰어드는 걸까.

다양한 인공지능 플랫폼에 도입되고 있는 엔비디아의 GPU 기반 ‘테슬라 V100 GPU 가속기(NVIDIA Tesla V100 GPU accelerators)’의 모습. / 엔비디아 제공
다양한 인공지능 플랫폼에 도입되고 있는 엔비디아의 GPU 기반 ‘테슬라 V100 GPU 가속기(NVIDIA Tesla V100 GPU accelerators)’의 모습. / 엔비디아 제공
'그래픽 처리 유닛'이라는 이름 그대로 GPU는 컴퓨터에서 그래픽 이미지를 처리해 화면으로 볼 수 있게 하는 프로세서의 일종이다.

본래 그래픽 처리용 프로세서는 제조사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지만, 엔비디아(NVIDIA)가 '지포스(GeForce)' 시리즈 그래픽카드의 차별화를 위해 이미 널리 쓰이던 'CPU'와 비슷한 'GPU'라는 용어를 만들었고, 현재는 업계 전반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GPU가 주목받는 이유는 막강한 연산처리 능력 때문이다. 초창기 GPU는 CPU에 비교해 할 수 있는 일도 적고, 성능도 대단하지 못했다. 그러나 게임을 비롯해 각종 멀티미디어 콘텐츠의 그래픽 품질이 날이 갈수록 정교하고 복잡해지면서 GPU는 이미지 데이터를 더욱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연산성능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CPU는 단순 연산 처리뿐 아니라 애플리케이션과 하드웨어를 오가는 각종 명령어와 데이터 등을 동시에 처리하는 다목적 프로세서다. 그 때문에 최신 제품 기준으로 단순 연산처리 성능만 보면 오히려 GPU보다 떨어진다.

전문가들은 게임이나 멀티미디어 그래픽 처리에만 주로 쓰이던 GPU의 잠재력이 아깝다고 보고, 이를 전문적인 분야의 연산 가속에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한다. 이것이 오늘날 전문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GPGPU(General-Purpose computing on Graphics Processing Units)' 기술의 시작이다.

GPGPU 기술은 CPU에만 의존하던 고성능 컴퓨팅 시장을 크게 뒤흔들었다. 기존에는 CPU를 여러 개 사용해 복잡한 연산 작업을 처리했지만, CPU보다 크기도 작고 저렴한 GPU를 연산 가속용으로 사용하니 시스템 구축 비용을 크게 낮추면서도 작업 시간을 대폭 단축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GPU의 효용성은 복잡한 연산을 반복해 결과를 예측하는 각종 시뮬레이션 분야에 도입되면서 빛을 발했다. 제조, 설계, 디자인, 의료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GPU 가속 기술이 도입되면서 각종 신기술 및 신제품 개발을 돕고 있다.

지난 1년간 엔비디아 추가 변동 추이 그래프. / 테크크런치 갈무리
지난 1년간 엔비디아 추가 변동 추이 그래프. / 테크크런치 갈무리
결정적으로 GPU 기술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분야에 도입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GPU를 이용한 연산 가속은 기존의 슈퍼컴퓨터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머신러닝, 딥러닝 등의 인공지능 학습 기법이 짧은 기간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실제로 2016년 3월 인간을 뛰어넘는 바둑 실력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알파고' 역시 GPU 연산 가속을 바탕으로 하는 인공지능 학습 능력이 있었기에 등장할 수 있었다.

처음 GPU라는 용어를 만들고 GPGPU 기술의 확산에 앞장선 엔비디아가 오늘날 인공지능 연구개발 분야에서 선도주자로 떠오른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미 2015년 즈음부터 인공지능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한 엔비디아는 관련 시장이 호황을 누리면서 매출과 주가가 껑충 뛰었다.

엔비디아의 최근 실적 보고에 따르면 2015년 3분기 13억 달러였던 매출 규모는 2017년 3분기 26억 달러로 배로 증가했다. 지난해 11월 14일 기준 70달러 선이었던 엔비디아의 주가는 올해 11월 7일 기준으로 212달러로 무려 3배로 치솟았다.

뒤늦게 인공지능 시장에 뛰어든 인텔과 애플 등도 GPU에 주목하고 있다. 인텔은 자사의 주력인 CPU 기반의 인공지능 기술 개발과 더불어 최근 인수·합병을 통해 확보한 비주얼 컴퓨팅 부문을 위해 GPU 쪽에도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오랜 맞수인 AMD의 GPU를 탑재한 통합 프로세서를 발표하는 한편, AMD에서 그래픽 부문의 수장으로 최신 GPU 개발에 앞장서온 라자 코두리(Raja Koduri)를 수석 부사장 겸 수석 설계자이자 자사 그래픽 부문의 책임자로 영입하는 등 최신 GPU 기술 확보를 위해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들어가는 프로세서를 직접 개발하는 애플 역시 최근 모바일 GPU의 외부 의존도를 낮추고 독자 개발로 방향을 선회했다. 외부 기술 사용으로 인한 로열티를 줄이려는 목적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GPU 기술이 필요한 인공지능과 가상현실(VR) 및 증강현실(AR)을 구현하기 위한 자체 기술 확보가 더 크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현재 GPU 기반 인공지능 기술은 자율주행차와 빅데이터 분석, 차세대 시뮬레이션 및 연구 개발 분야에 집중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양자 컴퓨터와 같이 현재의 기술을 훌쩍 뛰어넘는 차세대 컴퓨팅 기술이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GPU'와 관련 기술이 ICT 업계 전반에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