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초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에 따른 중국의 무역보복으로 산업군이 직격탄을 맞았지만, 반도체 만큼은 끄덕없었다. 2017년 반도체 시장은 오히려 유례없는 초호황(슈퍼사이클) 국면을 맞았다. 반도체 시장 호황의 중심에는 D램과 낸드플래시로 대표되는 메모리 반도체가 있다.

삼성전자가 미세공정 한계를 뛰어넘어 선보인 2세대 10㎚급 8Gb DDR4 D램과 이를 이용한 D램 모듈의 모습. /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미세공정 한계를 뛰어넘어 선보인 2세대 10㎚급 8Gb DDR4 D램과 이를 이용한 D램 모듈의 모습. / 삼성전자 제공
메모리 반도체는 2016년 하반기부터 가격이 오르기 시작해 2017년 내내 큰 부침 없이 상승세를 이어갔다.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큰 호재를 맞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2017년 들어 잇달아 분기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갈아치웠고, 연간 실적도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에 이견이 없다.

◆ 삼성전자·SK하이닉스, 슈퍼사이클 타고 매 분기 실적 '퀀텀 점프'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 조짐은 2017년 1분기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에서 드러났다.

삼성전자는 1분기 매출 50조5500억원, 영업이익 9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이 기간 반도체 부문에서만 6조31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반도체 부문 분기 영업이익으로는 사상 최대 실적이며, 전체 영업이익도 2013년 3분기 10조1600억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 기록이었다.

SK하이닉스도 출발이 좋았다. SK하이닉스는 1분기 매출 6조2895억원, 영업이익 2조4676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기존 최대치였던 2014년 4분기 1조6671억원보다 8000억원이나 뛰어넘은 수치다.

2분기부터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모든 수치가 퀀텀 점프(대약진)를 했다. 삼성전자는 2분기 매출 61조원, 영업이익 14조700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8조300원으로 한 분기 만에 사상 최대 실적 기록을 다시 썼다.

SK하이닉스는 2분기 매출,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모두 사상 최대 기록을 달성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의 2분기 매출은 6조6923억원, 영업이익은 3조507억원이었다. 당기순이익은 2조4685억원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3분기에도 양사의 새 역사 쓰기는 이어졌다. 삼성전자의 3분기 매출은 62조500억원, 영업이익은 14조5300억원이었다. 반도체 부문에서만 9조9600억원으로 10조원에 조금 못 미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반도체 영업이익률은 무려 50%에 달해 제조업으로서는 이례적인 기록까지 남겼다.

SK하이닉스는 3분기에도 재차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3분기 SK하이닉스 매출은 8조1001억원, 영업이익은 3조7372억원이었다. 이로써 SK하이닉스는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 9조2555억원을 달성해 연간 영업이익 10조원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증권업계는 삼성전자가 4분기 원달러 환율 하락 영향으로 기존 전망치보다는 하향 조정이 필요하지만, 15조원대 영업이익을 무난히 넘어설 것으로 내다본다.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도 최초로 1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한다. 예측대로라면 삼성전자는 2017년 매출 240조원 안팎, 영업이익은 54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SK하이닉스 역시 4분기에도 다시 한 번 신기록을 달성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증권업계 추정치는 매출 9조원, 영업이익 4조5000억원이다. 이 예상대로라면 SK하이닉스는 2017년 연간 영업이익 13조원을 훌쩍 넘어 14조원대까지도 바라볼 수 있을 전망이다.

◆ "내년이 더 좋다" vs "여기까지다"…메모리 호황 언제까지?

SK하이닉스의 4세대 72단 3D 낸드플래시 메모리와 이를 이용한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모습. / 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의 4세대 72단 3D 낸드플래시 메모리와 이를 이용한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모습. / SK하이닉스 제공
세계반도체시장통계(WSTS) 집계에 따르면, 2017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16년보다 20.6% 늘어난 4086억달러(442조15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전체 시장 성장세를 주도한 것은 단연 메모리 반도체다. 2017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60.1% 성장한 반면,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10.8% 증가하는데 그쳤다.

특히 D램 시장은 한국의 텃밭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2017년 3분기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44.5%의 시장점유율로 독보적인 1위를 달렸고 SK하이닉스가 27.9%의 점유율로 그 뒤를 쫓았다. 한국 기업이 전체 D램 매출의 72.3%를 독식한 것이다. 뒤이어 미국 마이크론이 22.9%의 점유율로 3위를 차지했다.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도 삼성전자는 39.0%의 시장점유율로 1위를 수성했다. 이어 도시바 16.8%, 웨스턴디지털 15.1%, 마이크론 11.3% 순이었고 SK하이닉스가 10.5%로 5위를 차지했다.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을 합치면 49.5%로 거의 절반에 이른다.

반도체 업계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 산업을 이끌 새로운 분야에서의 반도체 수요 증가에 따라 시장 성장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서버 출하량 증가, 스마트폰의 고용량화, 빅데이터 분석을 위한 고성능 컴퓨팅(HPC) 수요 증가 등이 지속적인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견인할 것으로 내다본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2018년 중순이면 한풀 꺾일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온다. 모건스태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이 주도하는 메모리 반도체 업황을 단기적인 호황으로 본다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놔 삼성전자의 주가가 한때 급락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공격적인 D램 시설투자로 2018년 공급 과잉을 염려한다는 내용이었으나, 이를 둘러싼 국내외 애널리스트의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일각에서 D램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차세대 극자외선노광(EUV) 장비를 도입하기 전 단계에서의 미세공정이 한계에 달한 만큼 기술적 난이도를 고려하면 2018년에도 수급은 전반적으로 타이트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낸드플래시는 공급 부족이 완화되는 추세나, 주력 제품이 2D에서 3D로 옮겨가면서 수익성 개선에 기여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