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의 한 메모리 반도체 업체가 애플 아이폰에 탑재할 낸드플래시 공급을 위한 협상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는 중국이 이르면 올 연말 메모리 상용 제품 양산을 시작해 2019년 본격적인 공급 과잉을 불러올 것으로 내다본다. 2017년 메모리 시장 초호황에 힘입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18년에도 설비투자를 확대하며 시장 지배력 지키기에 나선다. 10년 전 반도체 업계 판도를 바꿔놓은 '치킨 게임'이 중국의 메모리 시장 진입으로 다시 한 번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전경. /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전경. / 삼성전자 제공
20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중국 양쯔 메모리 테크놀로지 컴퍼니(YMTC)와 아이폰에 탑재할 낸드플래시 공급 협상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YMTC는 2016년 7월 설립된 신생 반도체 업체로, 2017년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이끌고 있는 칭화유니그룹에 인수됐다. 칭화유니그룹는 YMTC 외에도 푸젠진화집적회로공사, 허페이창신 등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양산 기술력을 갖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YMTC는 현재 우한에 240억달러(26조원) 규모의 설비투자를 집행했고, 이 공장은 2분기부터 시험 가동을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애플과의 협상에서 성과를 내더라도 애플이 요구하는 품질 기준 수준을 맞추려면 2020년은 돼야 실제 제품을 납품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애플과 YMTC 간 협상이 중국 정부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애플의 포석으로, 향후 중국 내수용 아이폰에만 YMTC 제품을 적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YMTC의 낸드플래시 경쟁력이 선두 기업과 비교할 때 떨어지는 것으로 본다. YMTC는 2017년 11월 32단 3D 낸드플래시를 자체 개발하고, 수율 안정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64단, SK하이닉스는 72단 3D 낸드플래시를 주력으로 생산한다. 칭화유니그룹은 부족한 기술력을 보완하기 위해 인텔과 제휴를 맺었다. YMTC가 개발한 32단 3D 낸드플래시도 인텔 라이선스를 기반으로 한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메모리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는 주요 낸드플래시 업체가 생산능력(캐파)을 대폭 확대하며 2019년부터 공급 과잉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낸드플래시 시장 1위인 삼성전자만 해도 이미 15조6000억원을 투자한 평택 반도체 공장에 2021년까지 14조원을 추가로 투입해 제2 생산라인을 건설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중국 시안 공장도 3D 낸드플래시 생산을 늘릴 것으로 알려졌다.

낸드플래시 시장 5위인 SK하이닉스도 청주 공장에 낸드플래시 신규 생산라인 M15를 건설하는데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2조2000억원의 예산을 투자했고, 2025년까지 13조원이 추가로 투입할 예정이다. 이 곳에서는 96단 이상의 차세대 3D 낸드플래시 생산을 목표로 한다. 중국 우시 공장 증설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두 곳의 신규 생산라인은 2019년 본가동에 들어갈 전망이다.

2007년 D램 시장에서는 심각한 공급 과잉으로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였던 치킨 게임으로 일본 엘피다, 독일 키몬다 등 굴지의 반도체 업체가 줄줄이 쓰러졌다. 3년간 이어진 치킨 게임의 결과 D램 시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강 구도로 정리됐다.

반도체 업계는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도 이르면 2019년 중국발 치킨 게임이 시작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한 차례 치킨 게임에서 살아남은 경험이 있어 중국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소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애플의 YMTC에 대한 초기 주문 물량이 적더라도 만약 계약이 성사되면 중국 업체로부터 메모리를 공급받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애플은 요구하는 품질 기준이 높고 공급사 선정이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중국 반도체 업체가 애플 공급사에 포함된다는 것은 중국 정부의 자국 내 반도체 산업 강화가 어느정도 성공했다고 풀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