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선보인 평창올림픽 드론쇼 환상에 반응하는 국내 산업계, 학계, 언론계, 연구기관의 반응은 서로 다른 온도차를 가진다. "우리 기술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니더라"로 시작한 미디어의 '자리펴기'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많은 사람들이 올라앉아 저마다 변명을 했다.

그들은 "우리도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자금이 없어서 못하는 것뿐이다", "인텔만큼 풍부한 연구 환경이라면 우리도 했었다", "연구현실이 이런 걸 하도록 가만 놔두지 않는다", "인텔에겐 돈을 쏟아 부은 마케팅이지만, 국내 업체는 현실이 그렇지 않다", "우리의 차세대 통신기술 위에서 드론쇼가 펼쳐졌다", "우리는,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분야가 있다"...만 쏟아내기 바빴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미디어가 연일 쏟아내던, 비꼬는 논조에 기분이 상할 법도 했을 것이다. 감정적이고 단편적인 현상에 주목하는 대중, 그들의 반응이 밥줄이자 운명인 미디어의 평균 수준은 뭔가를 기대할 만큼 높지 않다. 어쨌거나 현실이다. 드론 산업과 구체적인 기술 조건에 비전문가인 미디어가, 또 비전문가인 대중을 대상으로, 전문성이 결여된 내용을 전달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기 불편했을 테다.

언제 그랬냐는 듯 1218대의 드론이 만드는 환상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지금부터는 인텔의 슈팅 스타가 떠난 우리 하늘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앞을 내다볼 차례다.

한국인을 지배하는 정서의 바탕이 과거지향적임은 알려진 내용이다. 미래보다 과거에 치중하는 인식구조가 많은 사회적 소모 요인이라는 점을 안다. 물론 과거에서 배울 점도 존재한다. 다만 어떻게 분석해서 뜯어보느냐의 문제인데, 계획학의 기준에서 본다면 인텔 드론쇼를 바라보는 국내 미디어의 시선은 대단히 표피적이고 현상적이다.

드론 업계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어떤 현상이 일어나면 그 장면이 존재하는 메커니즘이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인데, 우리는 많은 부분을 놓친 채 '우리는 왜 못하는가?'만 찾는다. 애초에 문제의식이 잘못됐다. 고칠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바뀔 수 없는 부분을 매번 쳇바퀴 굴리듯 살펴본다.

인텔 드론팀을 이끄는 리더는 MIT출신의 나탈리 쳉이다.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관심사인 성별과 나이를 따지면 여자에, 석사과정을 졸업한 지 채 10년이 안 된 친구다. 국내 미디어들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5G, 군집비행, 딥러닝 같은 단어를 써가며 드론쇼 자체를 전달하려고만 했지, 누가 리더인지는 주목하지 않았다.

한국기준으로 보면 아직 어린 젊은 여성이 어떻게 거대 인텔의 드론쇼를 이끄는 제너럴 매니저로 활동할 수 있는 지를 주목한 기사나 공학자는 없었다. 어떤 면에선 리의 치부를 건드리는 내용이라 일부러 안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우리가 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드론쇼를 인텔에 맞길 수밖에 없었나. 인텔이 돈이 많아서? 거대 마케팅으로 생각해서? 우리 업체는 영세하고, 지원이 없어서? 현상만 놓고 보면 그럴싸한 분석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힌트는 나탈리 쳉에 있다. MIT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나탈리 쳉은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흔히 말하는 업력은 이제 10년 남짓 됐다.

구글 검색을 통해 그의 인터뷰 대부분을 읽어 봤다. 0과 1의 사고 체계를 학습하고 본인이 하는 일을 설명할 때는 공통적으로 아이와 같은 표현을 많이 쓴다. 예를 들면 '어떤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하늘에 빛으로 이야기를 그리는데, 신기술을 이용해서 디지털 불꽃 놀이를 만든다"라고 답한다. 쉽게 답하려고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어떤 일의 내용을 이처럼 표현하려면 정말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물론 쉽게 표현하는 사람이 진짜 고수다.

2011년 인텔 드론팀에 합류하고(이미 인텔 드론팀은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었고) 본격적으로 드론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그는 "정확하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기술을 개발하는 것 같은데, 엔터테인먼트 프로젝트인 것 같고, 마케팅 의도가 주요 목표인줄 알았는데, 그건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고…

속으로는 알 것 같은데 밖으로는 정확하게 어떻게 표현할지 감이 없던 시간을 보내던 중 2016년 인텔이 드론 기업인 어센딩테크놀로지를 인수하자 "뭔가 명확하게 다가온 것 같았다"고 한다.

어센팅테크놀로지의 기술력이 더해져 50대로 시작한 군집 비행은 곧이어 100대를 제어하는 수준으로 올라갔다. 그는 200대, 300대를 제어할 수 있게 되면서 "기술이 아니라 꿈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나탈리 쳉은 가족에게 조차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하기 곤란해 하다가, 디즈니월드로 그들을 데리고 갔다고 한다. 환상적인 크리스마스 라이트쇼를 본 가족들은 단박에 그이 직업이 뭔지,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알게 됐다고 한다.

자, 이제 우리 스스로 생각해볼 차례다. 인텔 드론쇼는 우리가 할 수 있음에도 안 한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먹고 살 여유가 없는 국내 기업 사정상 정부의 자금 지원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말은 그만하자. 우리가 경쟁구도를 가져가야 될 시장이 아니라서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말은 그만하자. 그런 상황이 모두 주어져도 지금의 국내 드론 산업과 연구 문화에서는 해내기 어렵다.

동화의 수식어로 첫 줄이 설명된 프로젝트를 믿고 승인해 줄 조직이나 책임자가 있는 지부터 되물어보자. (절차나 시스템이라는 구조론적 한계를 빌려다 쓰는 뻔한 핑계말고) 동화와 같은 이야기로만 설명하는 그런 팀원이 있다고 치자, 그를 믿고 지원해주기는 커녕 남들과 맞추라는 핀잔을 하지 않는지 생각해보자.

자꾸 큰 돈이 드는 프로젝트 핑계를 대는데, 자금이 있다한들 밑도 끝도 없는 성과가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프로젝트에 10년씩, 20년씩 연구지속성을 유지시킬 자신은 있는지 물어보자.

감사 때문에? 국민의 세금이라 밑 빠진 독에 물붓기는 어렵다? 그럼 세금이 아니라 자산으로 할 자신은 있는지? 본인이 소속된, 본인 책임 하에 있는 동료나 직원이 인텔에 버금가는 드론쇼 할 테니 10년만 양해해 달라면 해줄 수는 있는지 물어보자.

결과적으로, 인텔의 드론은 국내 드론 산업과 연구문화의 정곡을 찔렀다. 반드시 정곡이 나쁜 것은 아닌데, 이번에 찔린 정곡은 치부라서 문제다. 이번 비판을 이어가면 결국 끝에는 "다른 나라는 비슷하다"라는 핑계가 나온다. "아니면 당신이 해봐라"라는 말도 나온다. 그때부터는 논의의 테이블이 아니라 감정 싸움으로 변질된다.

인텔 드론팀은 세계의 하늘에 꿈과 환상은 잠깐 뿌려 놓고, 범접하기 힘든 그들의 연구 문화와 드론 산업의 지향점을 보란 듯, 짙은 그림자로 남겨 놓았다. 인텔이 지나간 하늘을 되찾는 길은 우리 내부에 있다.

실험적인 드론 프로젝트를 두고 성공과 실패로만 평가하는 시선을 던지고 "다음 단계로 나갈 가능성을 찾았다"고 응원하는 문화가 하루 빨리 정착해야 한다. 디즈니월드 쇼를 보는 것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드론산업 연구문화가 일어나면 좋겠다. 원래 연구문화에는 평범함이란 없는 개념이다. 우리 드론 산업계는 평범한 대상만 골라내고 있는 않은가. 드론연구는 기존 산업과 융합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플랫폼 산업으로 진화 중이다. 이종 분야가 융합하는 과정을 겪어야 될 산업 구성원들이 기존의 틀에 묶이고, 강요당하고, 그렇게만 움직이게 되면 드론 산업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다.

슈팅 스타가 평창에서 일으킨 한 줌의 바람이 끝없이 맴돌며 국내 드론 산업과 연구문화의 발전에 영감으로 작용하길 기원한다. 우리에게도 10년, 20년을 열어놓는 드론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 연구가 경쟁력의 거대한 플랫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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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근 드론 전문가는 외신 기자 출신으로 국내 학계에 드론 저널리즘을 주제로 최초의 논문을 썼습니다. 드론으로 알려지기 전까지 다큐멘터리 사진가, 수중사진가로서 활동했습니다. 2015년 네팔 지진 당시, 국제구호단체와 협력해 드론을 활용한 구조현장지원팀을 이끌었습니다. 한국연구재단 무인기핵심기술사업 평가위원으로 활동중이며 드론 컨설팅을 제공하는 SM9 SkyTech를 설립해 드론활용 기술개발과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