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IT스타트업 리걸인사이트 정재훈 대표 변호사의 리걸톡이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리걸톡은 IT관련 분야의 법률 이슈를 내용으로 월 2회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얼마 전 의뢰인과 함께 공공기관을 방문해 사건 회의를 했다. 담당 직원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 갖게 된 회의였지만, 해당 사실관계에 대한 구속력 있는 의견을 구하는 자리가 아닌지라 회의는 대체로 가벼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그럭저럭 회의를 마치고 나와 인사를 하고 자리를 파하려고 했는데, 배석했던 분 중 한 분이 녹음기를 보여주며 오늘 대화 내용을 모두 녹음해서 안심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갑갑해지면서 회의 내용을 되돌아보게 됐다. 혹시 내가 잘못 말한 것이 있었는지, 대화 내용 중 일부가 외부로 유출되는 경우 곤란해질 사람은 없는지, 아니면 담당 직원이 녹음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 사건에 불리한 영향은 없을 것인지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크게 문제될 만한 내용은 없었지만, 내 발언이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이 임의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요즘 부쩍 당사자 사이의 대화를 녹음하는 경우를 많다. 민사소송이나 형사소송 과정 중에서도 당사자들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과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 후 이를 증거로 사용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고,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정중하게 대화 내용을 녹음해도 좋겠냐고 하면서 회의에 참석한 분들에게 동의를 구한 후 회의 내용을 녹음하는 경우도 있었다.

영화에서도 심심치 않게 주인공들이 상대방과의 대화를 녹음해서 사건을 반전시키는 장면이 적지 않게 나올 정도로 당사자 간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경우는 보편화됐다.

화자(話者) 간의 대화를 일방 당사자 모르게 녹음하는 것은 적법한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 대법원은 대화에 참여한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 모르게 대화내용을 녹음한 경우에는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하지 않아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한다(대법원 2006. 10. 12. 선고 2006도4981 판결 등). 반면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대화 당사자 모르게 대화내용을 녹음하는 것은 '타인 간의 대화'를 허락 없이 녹음한 것이 되어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한다(대법원 2016. 5. 12. 선고 2013도15616 판결 등). 결국 대화 내용을 녹음한 사람이 녹음 대상인 대화에 참여하는지 여부가 행위의 적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일을 겪어보니, 단순히 대화에 참여한 것을 기준으로 녹음행위의 적법성 여부를 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형식적인 판단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대화 당사자의 사적인 발언도 엄연히 사생활(privacy)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고, 이러한 면에서 사적인 발언을 발언자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녹음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의 측면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화 당사자의 발언을 화자(話者)의 의도와 달리 이용하는 것은 자신의 발언을 자신의 의도대로 사용할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측면도 있고, 일방 당사자가 다분히 왜곡된 발언을 녹음할 목적으로 대화를 유도하는 경우, 대화 내용이 진정성이 있는지 여부도 문제가 된다(물론 민사 또는 형사 재판 과정에서 그러한 대화 내용의 신빙성 여부는 법관의 자유심증으로 결정될 것이지만 말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에 따라 현행 대법원 판례가 변경될 가능성이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 봤지만, 통신비밀보호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대화의 참여 여부에 따라 녹음행위의 가벌성 내지 불법성 여부가 결정된다는 내용의 대법원 판례는 변경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쯤되면, 나의 대화 내용이 언제, 어디서, 어떠한 방식으로 녹음이 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우리는 항상 말조심을 하며 사는 것이 역시 정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낮말도 녹음되고, 밤말도 녹음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재훈 리걸인사이트 대표 변호사는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제41회 사법시험 합격 및 31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습니다. 법무법인(유)태평양(2005~2011)에 재직했으며, 플로리다 대학교 SJD in Taxation 과정을 수료하고 현재는 법무법인 리걸인사이트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한변호사협회 스타트업규제특별위원회 위원,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한국교통안전공단 등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든 지금, 법률(legal)과 기술(technology)의 조화를 고민하며 기술을 통해 효과적인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합니다.